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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500주년

(1517-2017)

- 고신레포Refo500 -

 

 

 

 

 

“2017년은 하나님께서 1517년에 루터와 같은 말씀의 종들을 세우셔서 거짓되고 부패한 교회를 순수한 말씀을 통해 새롭게 하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세계교회와 더불어 과거 종교개혁의 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재의 우리를 성찰하며 미래 세대에게 잘 전수하려고 합니다.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 이것이야말로 종교개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구호입니다.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참된 교회 건설은 불가능합니다. 종교개혁500(고신레포500)성경교리역사라는 세 가지 큰 영역에서, ‘상관성유익성지속성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변화와 갱신의 운동으로서 종교개혁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구호: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 (The Church on the Word Alone!) (디모데후서 3:14-17)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자

교회를 새롭게 하자

교회를 성장시키자


방향

 

첫째, 상관성: 500년 전 종교개혁이 현재 종교개혁의 후손인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를 제시한다.

둘째, 유익성: 무엇보다 개체교회의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유익, 나아가 교회의 직분자들과 일반 교인들 특히 청소년들의 유익까지 염두를 두면서 이를 위한 적절한 교육과 필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셋째, 지속성: 20171031일로 고신레포Refo500’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계속되는 개혁이라는 과제를 가지고서 새롭게 무장하여 계승한다.

 

취지문

 

1. 16세기 종교개혁의 의의

 

16세기 종교개혁은 일종의 대중적 운동이었다. 그것은 지배자들의 개혁인 위로부터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피지배자들의 개혁인 아래로부터의 개혁이었다. 또한 그것은 교회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개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기독교 교리의 개혁이면서 동시에 제도와 관습과 도덕적인 삶의 개혁이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은 기독교가 국교였던 중세 유럽 사회 전반의 총체적 개혁운동이었다.

 

혹자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다섯 가지의 오직’(five solas)으로 요약하는데, 이것은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요약이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모두 구원의 문제와 연관된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네 가지 구호는 첫 번째 구호인 오직 성경로부터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하는 기독교의 기본 원리들이다. 마지막 구호는 구원 받은 자에게서만 발견되는 삶의 태도와 내용이다.

 

오직 성경이란 구호는 성경이 기독교 교리와 삶의 유일한 바로미터이므로 교회와 교황의 권위 위에 있는 최고의 권위임을 천명했다.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는 오직 은혜라는 구호와 함께 중세의 잘못된 공로사상과 연옥교리를 타파했다. 오직 그리스도라는 구호는 중세교회가 높였던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중보적 성인들을 다시 그들 자신의 자리로 내려 앉혔다. 마지막 구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은 하나님 한 분만이 인생 속에 나타나는 모든 영광의 알파와 오메가시라는 신앙고백이었고 거듭난 인생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삶의 목표였다.

 

이 다섯 가지 오직은 모두 오직 말씀(solum verbum)이라는 것으로 통한다. 종교개혁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와 사회와 국가 전체를 지배하는 최고의 통치자 교황을 대신하는 최고의 권위였다. 종교개혁자들에게 말씀이란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인 성경뿐만 아니라,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와 교회의 중추신경인 교리까지도 모두 내포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인간적 전통 아래 파묻혀버린 말씀을 본래의 자리인 최고 권좌에 올려놓고, 허물어진 중세교회를 이 말씀으로 다시 세우기 위한 운동이었다.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고 말씀이 돌아서는 곳에서 돌아설 줄 아는 교회와 성도,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목표였다.

종교개혁자들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의 바른 해석과 적용을 위해 몇 가지 장치를 마련했다.

 

첫 번째는 자국어 성경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이 소수, 즉 성직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성도들의 책이 되도록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에 주력했다. 종교개혁 이전에 권위 있는 유일한 성경은 라틴어 번역 성경, 즉 불가타(Vulgata)역본이었다.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을 수용한 지역들에서는 유럽 각국어로 번역된 자국어 성경이 불가타성경의 권위를 대신 차지했다. 그리고 16세기 자국어 번역 성경은 1516년에 에라스무스가 편집 출판한 헬라어 성경과 같은 성경 원문을 참고했기 때문에 최초의 본문 비평적 역본들이었다.

 

두 번째는 자국어 예배와 설교였다. 자국어 설교는 13세기 탁발수도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타지를 순례하던 탁발수도사들의 자국어 설교는 예배와 무관한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라틴어 미사를 자국어 예배로 개혁했다. 물론 이러한 예배 개혁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예배는 자국어로 집례 되었고, 설교 역시 자국어로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본문을 연속적으로 설교하는 강해설교(lectio continua)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문맹인 청중들까지도 성경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세 번째는 신앙고백과 신앙교육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위해 신앙고백서와 신앙교육서, 즉 교리문답서를 작성하여 모든 성도들을 동일한 신앙을 고백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를 원했다. 교리교육을 통해 문맹 성도를 지식인 성도로 거듭나게 함으로써 성경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루터파 교회는 아이들이 자기 멋대로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대신에 교육받은 사람들에게서 신앙고백적인 교리교육을 받도록 제도화했다. 반면에 개혁파 교회는 성경을 마음대로 읽도록 하면서 동시에 가정과 학교와 교회에서 신앙고백적인 교리교육도 함께 받도록 했다. 이것은 학교교육의 개혁으로 이어졌다.

 

2. 종교개혁의 유산

 

종교개혁의 핵심을 잘 요약한 다섯 가지 오직은 종교개혁을 단순히 교회의 개혁으로만 규정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범위와 대상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였다. 또한 개혁은 단순히 기독교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삶의 문제요, 사회적인 관습과 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영향과 유산을 통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이후 유럽 사회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이것은 소위 패러다임(paradigm)의 전환으로 불리기도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지형 변화 역시 종교개혁의 후폭풍이었다. 종교개혁을 수용한 지역과 천주교를 유지한 지역 사이의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을 통해 일단락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국가들의 독립과 여러 영토의 정치적 독립을 인정함으로 신성로마제국은 산산 조각났고 국가주의가 빠르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도 변했다. 유럽은 중세까지만 해도 이론적으로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대리자로 인정되어 교회와 국가 모두의 최고 통치자였으므로 종교개혁 이후 급속히 성장한 국가주의는 교회를 국가에 종속적인 한 기관으로 만듦으로써 국가교회의 탄생을 알렸다. 종교개혁자들의 이상은 국가가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었고, 16세기에는 실제로 세속 통치자들도 동의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관계로 변질되었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유산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서 세상 권세와 교회 권세를 구분함으로써 교회 권세의 독립성을 추구한 것이다. 16세기 이후 개신교 진영에서는 국가교회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국가주의의 영향으로 교회는 국가에 종속되었고, 이로 인해 17세기 이후 국가와 정부의 강제와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적인 교회 운영을 모색하기 위해 교회는 국가와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항쟁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개혁교회는 이미 16세기 칼빈의 제네바에서부터 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교회의 독립성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두 번째 유산은 신앙의 자유이다. 개인적인 신앙의 자유라는 개념은 16세기에 잉태되었다. 16세기 이전에는 이러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물론 16세기 신앙의 자유 개념은 개인의 자유로 인식되기 보다는 도시 전체나 지역 전체의 선택에 달린 것이었지만, 최소한 용기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선택했고,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 없이는 불가능한 순교적 선택이었다.

 

종교개혁의 세 번째 유산은 성경의 사유화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약 70년 전에 인쇄술이 발명되었고, 그 결과 성경 보급이 대대적으로 확대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했고, 이 번역 성경은 라틴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개인이 성경을 소장하고 각 가정마다 성경을 읽는 풍경이 정착하게 되었다. 각 가정의 개인적인 성경읽기는 자의적인 성경해석에 의한 의미의 혼란과 혼동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성경해석의 유익한 다양성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종교개혁의 네 번째 유산은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의 결과물로써 신앙고백과 신앙교육이다. 때론 신앙고백서들이 너무 많이 양산되어 교회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각각의 신앙고백은 보다 더 성경적인 신앙을 추구하도록 자극했다. 특히 무지한 사람들과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앙교육은 문맹률을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결과를 낳는 근대적 교육제도의 모체가 되기도 했다. 오늘날 초등, 중등, 고등학교 등과 같은 교육제도는 종교개혁의 열매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신앙교육인 교리문답교육은 기독교 이단을 방지하는 최선의 무기였다. 교리교육을 잘 한 교회와 교단일수록 이단 발생의 빈도는 낮았다.

 

종교개혁의 다섯 번째 유산은 빈민구제와 사회복지제도이다. 오늘날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모든 국가적 사회복지제도의 원형은 16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시대에도 빈민구제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부유한 개인들이나 일부 단체의 일이었다.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사회복지제도를 정부가 주도하든지, 아니면 정부와 교회가 공동으로 주도하도록 유도했다. 정부 주도적 사회복지제도는 주로 루터파 지역에서 나타났고, 정부와 교회가 때로는 각각 주도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협력하여 주도하는 형태의 사회복지제도는 개혁파 지역에서 나타났다. 오늘날 정부 주도적 사회복지제도나 교회 주도적 사회복지제도, 또는 정부와 교회의 협력적 사회복지제도는 모두 16세기 종교개혁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종교개혁의 여섯 번째 유산은 직업의 천직 개념과 근대적 경제 개념이다. 직업의 천직 개념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의식을 강화했다. 중세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이자놀이 자체를 죄악시했는데, 성경이 그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네바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는 적당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보았다. 칼빈도 고리대금업 즉 터무니없이 비싼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개인이든 단체든 적당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오히려 노동력을 향상시키고 개인의 일시적 가난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돕는 행위로 간주했다. 이것을 근거로 칼빈을 자본주의의 창시자로 보는 베버(Weber)의 평가는 분명 지나친 것이지만, 그렇다고 칼빈의 경제 개념이 후대의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개념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3. 오늘날 종교개혁의 의미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 지상교회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이 지상교회의 더 나은 모습을 지향하는 노력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개혁교회는 말씀이라는 표준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세우는 훈련을 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자기성찰과 훈련이 바로 개혁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다. 개혁교회는 한 마디로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 ‘말씀 중심의 교회이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생명력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말씀에 의해 살고 말씀에 의해 죽는다. 기독교 신앙의 탄생은 말씀의 들음에 달렸다. 즉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태어난다. 말씀이 잘못 선포되고 가르쳐진다면 거기서 태어나는 믿음은 사생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바른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야 한다. 온갖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의 어두운 곳 깊숙이 파묻힌 말씀의 권위를 다시 회복하고 높이 쳐들어야 할 시간과 장소는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곳이다. 종교개혁의 심장은 엄동설한의 세상 한 복판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뛰고 있다. 그 심장 소리를 듣고 들려주자.

 

종교개혁은 죽어가는 교회를 살렸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사회까지도 변화시킨 말씀 회복 운동이었다. 교회는 부정부패로 신음하는 세상 한복판에서도 살아 숨 쉬는 심장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세상의 등불이요 희망이다. 한국교회도 대한민국의 희망이길 바란다. 대한민국의 부패지수만큼 한국교회의 부패지수도 높은 절망적인 상태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희망의 불씨는 언제나 교회 속에 남아 있다. 종교개혁시대처럼 오늘날 고신교단도 말씀으로 개혁하여 한국교회를 살리는 심장이 되기를 바란다. 말씀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오직 말씀위에 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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