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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직 성경인가?
본문: 시편 19:7-14; 누가복음 12:1-5

안재경 목사(온생명교회)

어떤 목사가 교회 청년부를 담당하게 되면서 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요셉을 아는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라고 했더니 몇 명밖에 손을 들지 않더라는 겁니다. 깜짝 놀라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애굽의 바로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생했는데, 요셉을 모르는 청년부 친구들 때문에 자신이 고생이 심하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말씀이 제대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왜 성경만이라고 하느냐는 소리가 교회 안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입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공중에서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꿈으로 계시하시기도 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성경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느냐고 묻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음성을 들어야 할까요? 누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 줄까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셔서 주님의 변함없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오늘 시편에 나와 있는 모든 말씀을 성경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말씀은 완전하기에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말씀은 충분합니다. 다음으로, 말씀이 우리에게 늘 경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1. 말씀은 충분합니다
시편 19편은 시인이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두 가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입니다. 시인은 특히 하늘을 노래합니다. 가을이 되어 훌쩍 높아진 하늘을 보면서 우리 마음이 시원해지지 않습니까? 시인은 그 하늘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노래합니다. 낮과 밤이 서로 소곤거리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읖조리고 있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에 해를 매달아 놓으셨다는 표현이 시적인 표현만은 아닙니다. 시인은 하늘에 떠있는 해는 신랑과 같고, 장사와 같다고 노래합니다. 시인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달은 무엇에 비유될 수 있을까요? 수줍은 신부와 같다고 할까요?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지혜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핑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몰랐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로마서 1장 19절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우주만물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라면 두 번째 책이 있습니다. 사실, 이 책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대해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율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다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특권이요 자랑이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다’고 말씀합니다. 이후에는 이 율법을 증거로, 교훈으로, 계명으로 바꿔 부릅니다. 율법의 다양한 역할을 보여줍니다. 율법을 증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교훈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징계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계명인 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인도합니다. 율법은 낙심한 영혼을 소성케 하고,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고, 침울한 마음을 기쁘게 하고, 희미하고 침침했던 눈을 밝혀서 현실과 이치를 제대로 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주의 백성들을 섬세하게 인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기록으로 남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조차도,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다음에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음성들을 잊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 음성을 왜곡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잘 아는 바가 아닙니까? 예전에 들었던 말이 어느 순간에는 가물가물해지고, 현재 자기 상황에 맞게 그 소리를 바꾸어서 말하는 것 말입니다. 전혀 다른 말을 들었던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기 세뇌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말씀을 기록으로 남기셨습니다. 기록이 있으니 표준이 됩니다. 무슨 음성을 들었다는 것은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감동을 받았다는 것도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66권을 정경, 즉 카논(Canon)이라고 부릅니다. 이 카논이라는 말은 ‘자’라는 뜻입니다. 길이를 재는 자 말입니다. 자를 들고 재어보면 길이가 드러나지요. 성경이 기준입니다. 모든 것을 재는 기준이 성경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성경입니다.         

우리 장로교회가 받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이 성경에 관한 고백입니다. 이 1장에서는 성경이 왜 필요한지를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신구약 성경이 66권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믿음과 생활의 법칙’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6항에서는 우리에게 이 성경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상세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광과 사람의 구원 그리고 믿음과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모든 일들에 관한 하나님의 협의 전부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거나, 합당하고 필연적인 추론을 통하여 성경에서 이끌어낼 수 있다.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이든 사람의 전통이든 어떤 것이라도 어느 때에라도 덧붙여서는 안된다.” 성경으로 충분한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정말 성경으로 충분합니다. 성경은 완전합니다.  


2. 말씀이 경고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해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오해하는 것인데 이사야 34장 16절 말씀에 보면 성경을 살펴보면 다 짝이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짝이 없는 것이 없다는 말씀은 모든 들짐승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워한 에돔의 죄악을 보복하실 것인데, 에돔이 황폐화되어서 모든 들짐승들이 짝을 이루어서 왕궁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짐승들을 불러 모으실 것이고, 그 모든 짐승들이 짝을 이루어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이 거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살던 곳이 들짐승들이 사는 곳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심판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빠진 것이 하나도 없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위협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려 줍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이 보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발가 벗깁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신자는 말씀의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의 경고를 잘 받아야 합니다. 교통신호등을 무시하면 사고를 당하지 않습니까? 교통신호등과 같은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성경은 우리가 감추어 두었던 것도 드러냅니다. 남은 결코 알 수 없는 우리 마음에 있던 것을 다 드러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죄와 허물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지요. 그런데 자기보다 더 악한 사람을 보면서 자기는 잘못이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허물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숨겨진 모든 죄와 허물마저 다 드러냅니다.     

오늘 두 번째 본문인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이 말씀을 듣고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연상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숨길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라고 하신 다음에 이 말씀을 하셨거든요. 겉 다르고 속 다른 외식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내십니다. 어릴 때에 시골의 집 우물 옆에 구정물 통이 있었습니다. 음식찌꺼기를 버리는 통이었습니다. 찌꺼기가 가라앉아서 위의 물만 보면 말간 물이라서 마실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휘휘 저으면 가라앉아 있던 모든 것들이 다 떠오릅니다. 콩나물도 떠오르고 온갖 음식찌꺼기가 다 떠오릅니다.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휘휘 저으면 가라앉아있던 모든 더러운 죄악들이 다 떠오릅니다. 말씀 앞에 자신을 드러냅니까, 아니면 숨기고 마음이 더 완악해집니까?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보아서 자기가 고의로 죄를 짓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의로 짓는 죄를 씻을 수가 없습니다. 제사 중에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지은 구체적인 죄를 회개하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제사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제사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고의로 죄를 짓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자신을 잘 살펴 보십시오. 믿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어떤 거리낌도 없습니다. 그냥 자동적으로 거짓말이 튀어 나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 고의로 죄를 짓는 자리에 서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3. 말씀을 사모합시다

시편 19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자고 권하고 있습니다. 금보다 더 사모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말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탐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탐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의 제일 마지막 계명이 무엇입니까? 탐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것이지요. 이웃이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으로 만족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탐내어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리 많이 탐내어도 부족합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탐낼 수밖에 없다면 말씀을 탐내라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고 노래합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배우게 하기 위해 종이에 새겨진 글자위에 꿀을 묻혀 놓았습니다. 알파벳 위의 그 꿀을 핥으면서 글자를 익히는 것이 달콤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지요. 요즘에도 알파벳 비스켓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달기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쓰지는 않습니까? 어떤 말씀은 쓰고, 어떤 말씀은 달지 않습니까? 말씀이 그렇게 나누어집니까? 요한계시록 10장 말씀에 보면 요한이 한 천사의 손에 펴 놓인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니까 그 천사가 갖다 먹으라고 합니다. 그 두루마리를 먹었더니 입에는 너무나 달콤한데 배에서는 쓰게 되었습니다. 이게 말씀의 효력입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달콤합니다. 약속의 말씀이니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고 하니 얼마나 달콤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받아 가지고 생활할 때는 고통이 따릅니다. 고난이 따릅니다.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왜 이렇냐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 쓴 것을 견뎌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하는 말씀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동력이 바로 이 말씀의 창조하는 능력을 깨달은 것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문에 면벌부를 반박하는 95개조문을 내걸었습니다. 로마교회는 면벌부라는 종이를 사면 자신의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벌을 탕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죽은 조상을 위해 면벌부를 사면 그 조상이 연옥에서 고생하는 기간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면벌부는 중세의 성례인 고해성사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고해성사란 개인적으로 죄에 대해 마음으로 통회하고, 사제에게 찾아가서 입으로 자백하고, 사제가 정해주는 벌인 행위로 보속을 하면 사제가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사제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는 것은 형식적인 선언에 불과합니다. 이미 죄인이 죄에 해당하는 벌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입으로, 행위로 죄를 씻는 노력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통회, 자백, 보속이 인간의 공로를 쌓으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공로를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선포하는 용서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고 보았습니다. 그 용서의 말씀이 창조를 일으킵니다. 바로 그 약속의 말씀에 죄인의 죄를 사하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시편 107편 20절이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말씀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루터교에서는 이 용서의 말씀 선포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용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창조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이 창조의 능력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달콤한 말씀의 능력입니까?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말씀이시면서 동시에 말씀을 사모하셨습니다. 이 시편을 노래한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분이시기에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말씀이신 성자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 일하셨습니다. 그렇기에 그 분은 ‘오직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은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오직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하기도 해야 하겠지만 교회 안에서 이 말씀을 사모하고, 그리스도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배시에 있는 설교를 공적으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같이 함께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함께 말씀을 받고, 함께 말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한 분 하나님, 한 분 구원자, 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청년들이 있는데 누가 와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당신하고 결혼하랍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말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일까요? 웃기지 말라고 하십시오.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따라가지 마십시오.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어떤 소리로 들릴 수 있으니까요. 산에서 들었다고 하는 소리나 성령의 감동이라고 하는 것을 잘 분별하십시오. 마귀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소리를 흉내 낼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 성경 66권을 기록하게 하신 이후에는 성경을 통해, 그리고 그 성경을 설교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 살아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선포된 말씀인 설교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공중에서 들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더 생생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무슨 소리를 하든지 따라가지 마십시오. 오직 말씀입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던 그 분을 우리의 낯으로 뵈옵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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