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 
성경: 엡 1:3-14; 찬송 9장 
임경근 목사(다우리교회)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해 주셨을까요? 종교 개혁가들은 성경에서 인간 창조와 구원의 목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칼빈은 자신의 제네바요리문답서(1542년) 초반부(1-7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에 대해 다룹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삶은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최악의 삶이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의 열매라고 볼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1646-1648년)의 제1문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오늘 설교는 소요리문답 제1문의 답에 나타나는 ‘하나님과 영광’이라는 주제에 관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다섯 가지 주제,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로),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가운데 마지막 ‘솔리 데오 글로리아’를 가지고 설교하려 합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1장 3-14절에는 종교개혁 다섯 주제가 다 등장합니다. 성경을 보시며 동그라미를 쳐 보시기 바랍니다. 3절에 ‘그리스도’(7, 9, 10, 12절), 6절에 ‘은혜’, 13절에 ‘말씀’과 ‘믿어’, 그리고 14절에 ‘영광’(6, 12절)이 나타납니다. 이 본문으로

  개역개정 성경 에베소서 1장 3-14절까지는 다섯 문장으로 번역되었지만, 본래는 한 문장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문장입니다. 3-14절이 한 문장이라는 말은 전하고자 하는 한 가지 주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 한 주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영광’(doxa; gloria; glory)입니다. 특별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절에 그 영광의 주체이시며 대상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역이 잘 표현됩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는 성부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자 하나님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에서 ‘신령한’은 성령 하나님을 말합니다. ‘신령한 복’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4-6절은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사 거룩하고 흠 없는 아들로 입양시켰음을 노래합니다. 마지막 6절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으로 마무리 합니다.  

  7-12절은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도록 하셨음을 노래합니다. 마지막으로 12절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자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송입니다.  

  13-14절은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우리 마음에 도장을 찍어 주심으로 성도들의 보증이 되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14절에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에 대한 찬송으로 마무리 합니다.  

  오늘 설교의 대지는 첫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둘째, ‘성도, 하나님의 영광’,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입니다. 
 
첫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로 신비한 연합을 이루시며 친히 영광스러우십니다.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영광은 하나님 안에(in) 있으며 그분으로부터(from) 발산되고 바깥을 향해(toward) 비춥니다. 이 영광의 빛을 받는 자는 영광스럽습니다. 영광을 받은 사람은 다시 그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비추고 또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이 영광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태양에서 빛이 시작되듯 영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솔리 데오 글로리아’의 첫째 의미입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것이고, 그분이 소유하고 계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과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시내 산 위에서 직접 대면했습니다. 그 영광의 빛은 모세의 얼굴에 한 동안 빛났습니다. 백성이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영광을 두려워하며 눈으로 가리며 피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뒷모습만 조금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놀랍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황송한 ‘복’이지만, 동시에 ‘심판과 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과 벌을 내렸습니다. 성전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바빌론의 침략으로 무서운 벌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떠나신 하나님의 영광은 선지자들(이사야ㆍ에스겔ㆍ다니엘)을 통해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선지자들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에 그림자처럼 간접적으로 임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직접 땅에 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자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스도 자신이 성전(요 2:19-22)이십니다. 성전 되신 그리스도는 성령 하나님이 그 가운데 임재하심으로(사 11:1-2, 42:1; 눅 1:35; 마 3:16) 더 분명해 집니다. 변화 산에서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빛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셔서(롬 8:3), 고난당하시고(사 52:14), 십자가에 죽으심(고전 2:8)으로 나타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영광입니다. 종처럼 비천한 자리로 낮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히 1:3)이십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는 영광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은 영광 가운데 하늘에 계십니다(딤전 3:!6).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습니다(히 2:9).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하늘에 나타난 예수의 영광을 봅니다(행 7:55-56). 

  나중에 사도 요한은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요한이 본 하늘 도성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계 21:22)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그분으로부터 영광이 나올 뿐입니다. 인간과 피조물은 영광을 생산해 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특히 죄인은 하나님을 향해 그 어떤 영광도 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것이 ‘솔리 데오 글로리아’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글로리아’는 목적격(gloriam)이 아니라, 주격(gloria)입니다. 곧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번역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Deus의 여격, Deo) 영광이’로 해석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가들은 성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을 믿고 받아야 함을 잘 알았습니다. 


둘째, 성도, 하나님의 영광

  ‘솔리 데오 글로리아’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성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이렇게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외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2절)

  하나님께서 성도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엡 1:4-5)? 그것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다시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으로 창조되었습니다(고전 11:7).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 8:5) 바울은 성도가 예정 가운데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기 위함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영혼을 다시 살리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고 구원 받은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고 찬양할 만한 작품입니다. 중생한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영광을 찬양할 꺼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며 ‘영광의 광채’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도가 ‘영광’을 얻고 더 나아가 ‘영광의 소망’(골 1:28)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리스도인은 흠과 결이 많은 자들이 아닌가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죄는 추잡하고 더럽지 않습니까? 오늘 뉴스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인 위정자나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봐도 영광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성도가 영광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시고 성도를 영광스럽게 봅니다. 갓 태어난 피 덩이 아기가 미숙하지만 완전한 인간이며 인간의 영광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은 새롭게 중생한 미숙한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는 영광을 주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혜로 가능합니다(고전 6:19). 그리스도께서 고난에 참여함으로 영광을 얻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고난에 참여할 때 영광의 영으로 인하여 그의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벧전 4:13-14).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빌 3:21)

  바울이 12절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전부터 바라던” 것은 우리가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미래에 완전해질 것입니다. 마귀와 악한 영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패배했지만, 아직 공중의 권세 잡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고 있습니다(엡 2:2).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엡 6:10-20). 이 싸움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신 싸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만물의 통일은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완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될 것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솔리 데오 글로리아’의 마지막 부분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비참한 우리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너무나 분명해 졌습니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6, 14절)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받은 영광이 있기에 드릴 수 있는 영광이 있습니다. 본래 죄인은 영광을 스스로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받은 영광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영광의 관’(시 8:5)을 받았지만 그 관(Crown)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알기에 그 관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이 모습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오니......”(계 4:10-11)

  이제 새롭게 창조되어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여러 곳에서 명령합니다(엡 1:6, 12, 14; 롬 4:20; 고전 6:20).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롬 4:20)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으로 돌아왔습니다. 

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하심이라.”(14절)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 6문의 답도 영광과 찬송을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선하게, 또한 자신의 형상, 곧 참된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마음으로 사랑하며, 영원한 복락 가운데 그와 함께 살고, 그리하여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찬양으로 드립니다. 찬양은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방해거리가 많습니다. 현대 신기술의 발명과 발전은 인간을 ‘산만’하게 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기계, 텔레비전과 영화는 현대인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갑니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영상매체들은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는 복된 삶에 ‘무관심’하게 만들거나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멀티미디어는 말세에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경고했던 바울의 디모데를 향한 경고를 무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삶이 ‘자기애’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하나님과 ‘이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가 기분이 좋고 나쁘다는 것에만 관심합니다. 이런 매체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잊게 만들고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허영’과 ‘교만’으로 이끌기 쉽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라는 시인의 고백은 참으로 어색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구세대의 유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를 위해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이 예배에만 머물지 않고 삶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일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답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 태도, 말, 행동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십시오. 하지만, 이 삶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종종 실패하고 실망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스스로 일어서려 하지 마십시오. 다시 영광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예배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다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성례를 통해 다시 튼튼하게 영광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번 이런 피드백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출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종종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선행과 이웃 사랑이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광의 빛은 반디불이 같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반디불이는 스스로 빛을 내지만, 태양 앞에 서면 보잘 것 없는 빛에 불과합니다. 영광의 태양이신 하나님께 돌아와 그분의 영광을 받아야 합니다. 그 영광의 빛은 받은 그리스도인은 다시 영광의 빛을 세상 속에서 비출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의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이 창조되고 구원 받은 목적은 생각하십시오. 영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영광을 주셨습니다. 이제 구원 받은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삽시다. 우리 가운데 계신 영광의 성령님께서 기뻐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미소 지으며 영광의 찬양을 듣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온 우주의 왕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큰 품으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 하심으로 인해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직 영광은 하나님께만 있고, 성도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며,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2 12월 시편 설교, “성육신 하신 하나님”(시편 113:1-9, 빌 2:5-11) 최성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2.08 652
71 12월 시편찬송 113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2.02 156
70 12월 소책자(종교개혁과 선교) 설교, "성령을 의지하라(행 16:6-40)" 김성운 교수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2.02 356
69 12월 원문설교, "오직 주님만 바라보십시오(사 40:27-31) " 김하연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2.02 995
68 11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과학) 설교,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시 104:1-9, 19-24)" 이신열 교수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1.13 537
67 11월 시편찬송 103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1.07 158
66 11월 시편 설교, “하나님을 송축하라”(시편 103:1-5) 최성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1.07 972
65 11월 원문설교, "네가 무엇을 보느냐? (렘 1:11-19)" 김하연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1.04 1023
» 5솔라 5.오직 하나님께 영광 -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설교문) 임경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22 3634
63 5솔라 5.오직 하나님께 영광 - "오직 하나님께 영광"(소논문) 임경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22 1500
62 5솔라 4.오직 그리스도 - "오직 그리스도"(설교문) 한성훈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18 611
61 5솔라 4.오직 그리스도 - "오직 그리스도"(소논문) 한성훈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18 660
60 5솔라 3.오직 은혜 - "오직 은혜"(설교문) 유해신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13 957
59 5솔라 2.오직 믿음 - "도대체 왜 오직 믿음인가?"(설교문) 손재익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06 1131
58 5솔라 2.오직 믿음 - "오직 믿음Sola Fide; 의롭다 칭함을 얻게 되는 유일한 수단"(소논문) 손재익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10.06 2835
57 5솔라 1.오직 성경 - "왜 오직 성경인가?"(설교문) 안재경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9 924
56 5솔라 1.오직 성경 - "모든 권위의 원천으로서의 오직 성경"(소논문) 안재경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9 668
55 10월 원문설교, "교회생활의 생필품(롬 12:9-13)" 김하연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3 401
54 10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교리) 설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고전10:31-33; 고전 6:19-20; 벧전 4:16)" 황대우 교수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3 381
53 10월 시편 설교,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시편 119편) 황원하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3 102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