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전쟁 2(니므롯의 반역, 창 11장)

by kosin posted Jan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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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전쟁 2


• 본문: 창세기 11:1-9

• 제목: 니므롯의 반역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 주일마다 한 가족된 성도들과 함께 삼위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영광스럽고 복된 현장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 깊은 영적 교제를 누립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 하나님의 찾아오심을 즐겁게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잘 경청해야 합니다. 또한 잘 듣는데서 멈추지 마시고, 잘 깨닫는 성도들이 됩시다. 듣고 깨달을 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파송 받으면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고 선언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사 6:9). 얼마나 가슴 아픈 말씀입니까! 선지자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며, 보아도 알지 못한다니. 우리 성도들은 이런 비참 가운데 있으면 안 됩니다.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듣고 깨닫는 백성들이 됩시다.

또한 예배 중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만 아니라 행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서 가르칩니다(약 2:17,26). 그러니 예배 중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행함으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는 신령한 예배자들이 됩시다.

동시에 이 영광스럽고 복된 예배가 공격 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특히 참 예배가 아닌 거짓 예배로 주님의 백성들을 교묘하게 속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거짓 예배를 만들고 속이는 자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말씀의 주제와 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하나님은 거짓 예배자들을 징계하심으로 죄를 억제하셨습니다.

1. 성과 탑을 건설한 사람들

2. 성과 탑이 건설된 목적

3. 하나님의 심판과 억제된 죄


본론

1. 성과 탑을 건설한 사람들

본문 2-4절은 성읍과 탑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2절에서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라고 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서로 말하기를 “성읍과 탑을 건설하자”고 했습니다(4절).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본문은 구체적으로 이들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냥 “그들”이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0장과 연결해서 읽으면, 이들이 누구인지 압니다. 그들이 머문 장소가 ‘시날 평지’입니다. 창세기 10:8-10절을 보면, 시날 평지에서 나라를 건설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함의 자손에서 태어난 니므롯입니다(창 10:8).

창세기 10장 10절에서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0장 10절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용어를 발견합니다. “그의 나라”라는 말과 “시날 땅의 바벨”입니다. 곧 함의 후손 니므롯이 “나라”를 세웠는데, 그 나라에 속한 땅 중에 한 곳이 바로 시날의 “바벨”입니다. 니므롯은 작은 동네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고, 그 나라에 속한 땅 중 하나가 시날의 바벨입니다.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성읍과 탑을 만든 이들은 바로 노아의 아들 중, 함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인 니므롯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한 번 더 본문을 살펴야 합니다. 본문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우리는 지금까지 시날 평지에 바벨을 건축한 사람이 니므롯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본문 2절을 통해, 함의 후손 중 니므롯이 이끄는 일단의 무리들이 동방으로 옮겨와서 그곳에 정착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문 2절의 동방으로 옮긴 “그들”이 누구인지를 앞 문맥과 연결하여 생각해 봅시다. 참고로 성경의 장, 절 구분은 원래 성경이 기록될 때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몇 장 몇 절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주후 13-15세기)에 성경을 읽는 이들이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10장 마지막과 11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본문 2절을 다시 읽으면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창세기 10장 21절 이하는 셈의 후손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 셈의 후손들 중 일부가 동방으로 옮기다가 니므롯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시날 평지에 이르렀고, 셈의 후손과 니므롯이 힘을 합쳐 바벨 성과 탑을 건설했다는 이해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는 근거는 문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근거도 있습니다. 창세기 10:25절입니다. 셈의 후손 중 에벨이 벨렉과 욕단은 낳는데,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라고 합니다.

바벨 성읍과 탑을 건설하는 인간들을 보신 삼위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강림하셔서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그 흩으심이 언제인가에 대한 정보가 창세기 10장 25절에 나옵니다. 곧 에벨이 벨렉을 낳을 때입니다. 성경이 매우 의도적으로 세상이 나뉜, 다르게 말해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여 인류를 흩으신 일을 셈의 족보 중에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 가운데 일부가 이 일에 가담했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세 아들들에 대해 말한 내용을 근거로 생각할 때, 함의 아들인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의 종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셈은 축복을 받았습니다(창 9:22-27). 저주 받은 함의 자손들 중에서 니므롯이 나왔고, 그 니므롯이 성읍과 탑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노아의 아들 중 셈의 후손들 가운데 일부가 불신앙의 모습으로 변절하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가 바벨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 도시에 탑을 만들었는가를 살피는 중입니다.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함의 후손 니므롯이 이 일을 주도했습니다. 다른 해석을 참고하면, 셈의 후손 중 일부도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니므롯이냐 셈의 후손이냐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대체 이들이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이들은 모두 언약 백성입니다. 바로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홍수 심판 이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의 아들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과 모든 생물들입니다(창 9:8-11). 이 점이 제일 중요합니다. 니므롯도, 셈의 후손들도, 모두 언약 백성들입니다. 오늘날로 말씀드리면 이들은 모두 교회입니다. 성도들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모두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이 바벨 운동의 핵심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라는 이름을 걸고 모였다고 해서 모두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라는 신분을 가지고 모였으니 모두 교회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겉으로 볼 때, 바벨 운동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 성도요 교회로 모였습니다.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교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사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성도라고 자부심을 갖는 일은 좋습니다. 그러나 삶의 실제가 탑을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 자기 이름을 내려는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면, 우리는 바벨을 건설한 이들과 동일한 거짓 교회가 될 가능성이 짙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살피는, 특별히 우리의 예배를 살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성과 탑이 건설된 목적

우리는 첫 번째 대지에서 함의 후손인 니므롯과 셈의 후손 중 일부가 연합하였음을 살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겉으로 보기에 불신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들임을 살폈습니다. 곧 이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우리는 자주 함의 후손 니므롯은 세상사람, 믿지 않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형식적으로 교회입니다. 바로 그 교회가 성읍을 건설하고 탑을 쌓았습니다.

이들이 건설한 성읍과 탑은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닙니다. 이들은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거대한 제국을 목표로 하는 첫 출발과도 같습니다. 창세기 10:10-12절은 이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니므롯은 시날의 바벨을 시작으로 니느웨도 건설합니다. 후일 니느웨는 대 제국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니므롯 당대에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는 바로 레센입니다. 창세기 10장 12절을 봅시다.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니므롯은 한 지역에서 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여러 지역에, 여러 성읍을 건축했습니다. 그는 대 제국을 건설할 원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니므롯은 그의 조상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단히 충실한 모습을 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번성하라고 했습니다(창 9:1,7). 니므롯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고 번성하는 사명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하나님의 도성을 온 세상에 건설하는 전도자의 사명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도시 건설의 목적이 본문 4절에서 명백하게 밝혀집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도시를 건설하는데 그 도시에 탑도 건설합니다. 여기 탑은 신전을 의미합니다.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말 속에는 도시 건설의 목적이 그대로 잘 드러납니다. 탑을 건축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이유는 니므롯, 그리고 그와 협력한 이들이 도시를 건설하는 목적을 정확하게 밝혀줍니다.

첫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는 것. 둘째, 우리 이름을 내는 것. 셋째,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는 것입니다. 여기 탑을 쌓는 언약 백성들의 더러운 욕망이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는 열망은 마치 가인이 에덴의 동편에 성을 만들고 호시탐탐 에덴의 동산을 정복하고 말겠다는 욕망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동일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진실하게 믿는 신자는 결코 자기 이름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영광과 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살아갑니다. 주기도문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바벨 운동을 일으킨 이들은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뱀의 유혹으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할 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처럼. 이들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슬로건은 정말 그럴 듯하게 들립니다. 흩어져 하나님 나라의 도성을 세우는 일은 많은 수고가 뒤 따릅니다. 그러나 한 번 수고하여 이룬 업적을 누리는 것은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더 이상 수고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한 곳 개척하여 어느 정도 성장시킨 후에 그곳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처럼, 다른 곳에 다시 교회를 개척해야 된다고 하면 부담을 느끼는 것과 흡사합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매력적인 호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 하셨고, 땅을 정복하라고도 하셨습니다.

바벨 운동의 핵심은 탑을 건축하는 모습에서 그 본질이 잘 드러납니다. 탑은 일종의 신전입니다.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은 신에게 경배하는 예배의 현장입니다. 그 탑을 하늘 꼭대기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위해,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를 건설한 니므롯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속으로는 인간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욕망을 가졌으면서 겉으로는 마치 하나님의 왕국인양 멋지게 포장했습니다.

니므롯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장엄하며 은혜가 넘치는 핵심 가치인 예배를 교묘히 변질시켰습니다. 가짜 예배를 만들면서 마치 하늘의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행했습니다. 이것이 예배전쟁의 전형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구속역사의 결정적인 순간 마다, 그리고 교회역사의 큰 전환기마다 이 예배전쟁은 지속되었습니다. 거짓 교회는 예배 아닌 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예배라고 말하고 선전하며 광고하여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는 말씀과 흡사합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성도 여러분!

참 예배는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예배가 사람의 공적을 축하하는 자리로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배라는 영광스러운 용어 앞에 무슨 수식어를 너무 많이 붙이는 시대에 살아갑니다. 諰기념 예배”, 諰감사 예배”등등. 사람을 높이는 수식어가 예배 앞에 붙지 않도록 합시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언약이 재현되는 교제의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백성들은 그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 기쁨과 즐거움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현장이 예배입니다. 이러한 교제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예배 시간이 지루하고 하품 나는 시간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를 회복합시다. 사단이 이 예배를 공격합니다. 예배를 공격하는 사단의 계략을 능히 물리치는 예배 파수자들이 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심판과 억제된 죄

바벨 성과 탑을 건설한 이들이 그토록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다름 아니라 하나의 언어였습니다(1절). 우리는 경험적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모두 압니다. 외국 여행을 가거나, 외국인을 만나 단 5분만 대화를 해도, 말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짚고 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1절은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언어가 하나라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1절을 다시 번역하면, “온 땅에 언어가 하나요 생각이 같았다”입니다. 그러니까 말이 하나이기도 하지만 사상이 같았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말은 인간의 사상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그 언약에 신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언약에 신실할 때 생각이 같고, 언어도 하나여서 의사소통이 원활하다면, 사명을 이루는데 얼마나 큰 진보가 있겠습니까. 바로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곧 같은 생각, 같은 언어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큰 복입니다. 그러나 니므롯과 그를 따른 무리들은 그 복을 악하게 사용했습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신 여호와께서는 그들 가운데 내려 오셨습니다. 5절에서 “사람들이 건설하는”이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들이 건설하는”입니다. 이 표현은 아주 의도적입니다. 성읍과 탑을 건설하는 이들의 본질이 범죄한 아담(사람)의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도성을 건설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 같지만 그 본질은 거짓 예배를 확산하려는 이들의 속셈이 ‘사람의 아들들’이라는 표현 속에 잘 드러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5절에서 “내려 오셨더라”는 말씀도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입니다. 이는 창세기 3:8절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시기 위해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여호와의 강림은 늘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합니다. 자기 백성은 구원하시고 대적은 진멸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내려 가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겠다고 말씀합니다(7절). 여기에서도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하나 사용됩니다.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자, 우리가 내려가서”라고 하셨습니다. “자”라는 말씀은 수사적 표현인데, “오라”는 뜻입니다. ‘오십시오! 여러분, 우리 같이 성읍과 탑을 건설합시다!’라는 열정적이고 힘찬 동원의 구호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먼저 사용하느냐 하면, 바벨 성읍과 탑을 건설한 사람들입니다(3-4절). 삼위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들의 열정으로 그 분 자신도 그렇게 똑 같이 사용하셨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모조 하나님 왕국과 거짓 예배를 만드는 구나’

‘그래, 나도 너희의 열정에 버금가게 거짓 예배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너희를 심판하겠다’

결국 삼위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결국 도시 건설이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바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언어유희입니다. 히브리어로 혼잡하다는 말은 “바랄”입니다. 하나님의 도성이 아니라 인간 도성을 만들고, 참 예배가 아니라 위조 예배를 만들려던 거짓 교회의 도전은 박살났습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거짓 백성들이 아무리 보기에도 좋고 듣기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만들고 예배를 드려도, 결국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니므롯 시대에 모든 것을 아시고 심판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렇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참 예배자들의 예배를 받으시며, 거짓 예배자들의 예배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모조 예배를 만드는 이들을 심판하셔서 죄를 억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비록 우리가 힘없고 연약하여 겨우 겨우 예배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런 우리의 예배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을 고대합시다. 연약하지만 참 예배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교제하기를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을 높이는 성도들이 됩시다.


결론

바벨 운동, 곧 위조 하나님 나라 건설과 거짓 예배의 주도권은 함의 후손 니므롯이 가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 예배의 상징물인 탑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니므롯은 언약의 외인이 아닙니다. 그는 겉으로 볼 때 언약 백성입니다. 그러니 교회입니다. 교회가 니므롯의 길을 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동시에 교회가 거짓 예배 운동을 펼칠 때 기꺼이 심판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참 예배를 보존하며, 즐기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예배전쟁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리는 복된 교회, 건강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창세기 10장 10-12절을 참고하여, 시날 평지에서 바벨의 성읍과 탑을 건설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 본문 2절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라는 말씀과 창세기 10:21-32절을 연결하여 생각할 때, 니므롯의 바벨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3.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언약 당사자는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의 후손들도 포함됩니다. 이것이 바벨 운동을 일으킨 이들의 신분을 어떻게 이해하게 만듭니까?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 바벨 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탑을 건설합니다. 그들이 탑을 건설한 목적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5. 니므롯이 성읍과 탑을 건설한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특히 이것이 오늘날 예배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입니까?


6. 본문 1절은 언어가 하나라는 정도의 말씀은 아닙니다. 생각도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왕국 건설과 바른 예배를 위해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들로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사용하는지 점검해 보고, 혹 우리의 욕망이나 우리 이름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는 니므롯의 반역을 제거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일하심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서 제거하기를 바라는 잘못된 예배 관행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