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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원문설교. 설교 작성자: 김하연 목사(대구 삼승교회) 


종의 노래(사 53:1-12).      



      오늘 본문은 종의 노래라고 불립니다. 여호와 종 (에베드 아도나이)인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주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행할 일과 그의 인격에 대하여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노라면 우리는 고난의 종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그를 닮아갈 방향을 알게 됩니다. 익히 알고 있는 본문이지만 다시 한 번 이 본문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그는 보기와는 다릅니다


이사야 53장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

    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여호와의 팔 (즈로아 아도나이=주의 팔, 즈로아 네투야=펴신 팔)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이 하나님의 팔로 인한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는 곳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사 44:12, 신 4:34, 5:15, 7:19, 9:29, 11:2, 사 51:9 등). 고로 하나님의 팔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와도 깊은 연관이 있고, 항상 공의의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과 승리가 실현되는 현장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사야 53:2에서 이 여호와의 팔은 그 모습이 아주 약한 듯이 힘없는 듯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2절에서 ‘그는’ 하는 말은 우리말에는 없지만, 히브리어에는 동사가운데 주어가 들어 있기에 번역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그는’하는 것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입니까? 1절에 나온 내용 중에 ‘우리가 전한 것’과 ‘여호와의 팔’이 댓구를 이루고, ‘누가’와 ‘누구에게’가 댓구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2절에서 ‘그는’의 주어가 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전한 것’ 또는 ‘여호와의 팔’이 되어야 합니다. ‘즈로아(팔)’은 일반적으로는 여성명사이나, 가끔씩 남성명사로도 쓰이므로(사51:5 등), 우리는 ‘그는’과 ‘여호와의 팔’을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렇게 연결시키고 나면, 일반적인 여호와의 팔의 의미 즉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의미하는 이 말이 2절에서 아주 약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한 풀뿌리 같아서 햇빛만 나면 금방 스러질 것 같이 약하다고 할 뿐 아니라, 심지어 흠모할 만한 것도 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대조적인 의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0장 16절에서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라고 말할 때,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는, 정확히 사 53:1의 말씀을 상기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 ‘여호와의 팔’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구약 이해는 우리의 전한 것, 곧 여호와의 팔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내 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는 이 절을 이해하고 증거 할 때, 구원의 팔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특히 유대인은 표적을 (뭔가 영광스러운 것들)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고전 1:22). 


      나아가서 이사야 53장의 계속된 절들에 보면, 이 여호와의 팔(주의 팔)에게 어떤 영광스러운 모습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광스럽기는커녕, 그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니브제, 3절), 거절당하고, 그는 슬픔과 고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쉬 마크오봇).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모습, 외면된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와 같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팔이요,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의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실 때에 모습은 그리고 지상에서 사실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 출신이시고 헤롯의 핍박을 피해 애굽으로의 도망하였으며, 갈릴리에서 자라나셨습니다. 이방의 땅이라 불리우는 갈릴리 출신은 무시받기 딱 맞는 배경이었고 그래서 나다나엘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멋지게 만들어 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가 분명 하나님이시고 권능의 주님이시만, 그분의 지상에서의 공생애의 모습은 ‘영광의 팔’ ‘여호와의 팔’ ‘하나님의 구원의 팔’의 모습과는 너무나 멀어 보였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버림받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시편 22장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바로 정확히 고난의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마치 하나님께로부터도 버림받은 것 같습니다. 그는 외치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떠나셨습니까? 마 27:46) 하셨습니다. 그는 적어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대속의 제물이 되시고 대신의 심판을 받는 현장에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람, 또는 저주 받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52장14절에는 그의 모습이 상한 모습이어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2장

 14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

    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의 연약함, 그의 상함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사야 53장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

    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의 팔이시라도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비천함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과 다른 것을 연상하게 해 줍니다. 그분의 영광을 버리고도 비언함에 이르시고도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그분은 낮아지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구원되었습니다.  사 49:7에서는 바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할 구원자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9장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대치와 눈으로 보이는 영광과 화려함과 번쩍거리는 강력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낮아지시고 섬김으로 거룩하신 이의 고난과 희생으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죄로부터의 승리하고 영광의 문으로 들어갈 때, 그분의 멸시 당함과 미움 받음으로 그 문이 열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적용)  

      1)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천국은 어떤것입니까? 혹시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펴신 팔, 전능하신 능력의 팔로 모든 것을 이룰수 있다는 그런 생각으로 출세의 무지개만을 쫒아 나가지는 않습니까? 천국은 반드시 보기하고 같은 것 만은 아닙니다. 주님의 받으신 고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가 그 고난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결코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의 지상에서의 모습은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기 위한 고난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도 주님을 닮은 고난이 조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다른 이에게 고난과 때로는 멸시를 받으면서도 천국을 소개해야 할 그런 의무가 있지는 않습니까? 


      3) 세상에서의 번쩍거림 없어도, 예수 안에는 구원의 능력의 팔이 있습니다. 예수의 나라는 눈에 다른 이에게 보이는 능력 있고, 멋지고, 화려한 인생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을 닮거나, 쫒아가는 것이 출세도 아니요, 수치를 당할 수도, 사람들에게 무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를 믿는 믿음은 바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창조주의 그 펴신 팔이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힘내십시오. 



2. 그는 어린 양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53장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וּכְרָחֵ֕ל לִפְנֵ֥י גֹזְזֶ֖יהָ נֶאֱלָ֑מָה וְלֹ֥א יִפְתַּ֖ח פִּֽיו

 

      이 본문은 어린양이 도살자 앞에서 순종하여 입을 열지 않고, 암양이 털 깍는 자 앞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하게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안됩니다. ‘잠잠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엘마’(נֶאֱלָ֑מָה)란 단어는 잠잠하다는 뜻도 있지만, ‘묶인’이라는 뜻도 있다. 잠잠하다는 뜻일 때는 특히 ‘쇼크, 두려움 등으로 인한 말 못하는 것’ (‘dumb: unable to speak because of shock, fear, surprise or anger)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데, 고로 이것은 양의 순함으로 가 아닌, 외부적으로 인한 묶음, 또는 쇼크로 입을 못여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겔 3:26, 단10:15에도 쓰였는데


에스겔 3장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thou shalt be dumb)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다니엘 10장

 15 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그의 모습이 너무 두려워서 5-6절) 기절할 지경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잠잠히, 말 못하는, 말문이 막혔더니’ 등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네엘마’란 단어가 갖는 공통적인 특징은 스스로 조용히, 침착하게 평안하게 조용하게 정숙을 지켰다는 의미보다는 두려움이나, 쇼크 등 어떤 외압에 의해서 잠잠해 지게 되는 용례로 사용된 것입니다. 

      물론 사 53장7절에서 하나님의 종은 그는 의지적으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떨어서 입을 못 여신 것은 아니었고 그러나 그에게 말 못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양털 깎는 자 앞의 암양과 같이 외적인 환경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난의 종인 예수님에게서 이 고난의 종의 잠잠한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도 실제로 여러 번 잠잠하고 대답하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마26

 62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마가복음 15장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누가복음 23장

  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대제사장과 헤롯 그리고 빌라도 등이 질문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고 잠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은 거짓된 재판과 고소에 마치 유죄사실을 인정한 듯 대답치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올바른 질문에는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마태복음 26장

 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

    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

    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

    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정리하면, 예수님은 옳은 질문에는 ‘그렇다’고 분명히 대답하셨는데, 거짓된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라” 라고 말할 수 있으셨지만 이상하게도 대답을 하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짓된 질문, 참소하는 내용에 대해서 대답하지 않으시면 무언의 인정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무언의 인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분명히 ‘아니다, 당신들이 지금 나를 고소하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어디 분명한 증거를 대지 못하지 않는가’하고 변명하실 수 있었지만, 주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로 인해서 대답하지 못하고 마치 죄인인 것처럼, 처형을 당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고소에 예수님은 사실 해당이 없어도 예수님의 사랑하는 구원받을 성도들은 해당이 되는 죄목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어린양이 묶여 또는 두려움에 혀가 말려서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예수님도 어떤 힘에 의해서, 의지의 힘, 사실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죽으심을 죽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서 ‘아니다’라고 말할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셔야만 했으니까...그래서 그는 입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이사야 53장 강포도 궤사도 없었던 분이었고 그 어떤 사형에 해당할 죄를 지은 적이 없는 분이신데 말입니다. 


이사야 53:8-9은 그 설명을 이렇게 합니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적용)

      우리는 고난의 종이 입을 열지 않은 것을 보고 무엇을 배웁니까? 우리는 언제 입을 벌려 대답하고, 언제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우린 무엇 때문에 소리 지르고 무엇 때문에 잠잠합니까? 무엇이 나로 행동하게 합니까? 혹시 두려움과, 배신과 세상의 권력과 당신의 야망이? 무엇이 당신을 묶어서 꼼짝 못하게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를 묶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을 잠잠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희생하기 위해서 잠잠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말씀과 하나님의 뜻에 묶여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특권도 포기하며, 죄인인 것처럼 입을 열지 아니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소리를 지를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경우입니다.   



결론 

      이사야 53장의 종의 노래는 오래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어떤 모습을 보았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배웁니까?


      1) 먼저, 여호와의 팔이요 구원의 능력이 있는 그는 보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모습은 결코 화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종,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당신은 이것을 알고 고난의 종 예수님을 닮아갈 준비 되어 있습니까? 


      2) 입을 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타인보다 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게는 자동차 접촉사고나, 부부간의 대화에서, 크게는 국제적인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기까지, 세상 사람들은 그런 일에 너무나 잘 훈련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보호하고 자신의 권익을 변호하는데 너무나 익숙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입을 열지 않으시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생각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 가운데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을 만들어 내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때때로 내가 억울한 것 같아도, 내 이웃을 위한 것이라면, 나 위해 입 열지 않으신 주님 얼굴모습 한번 생각하고, 내 이웃을 위하여 한번 양보 할 줄 아는 그런 결단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 다함께 이 종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의 길로 따라가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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