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원문설교,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요1:14-18)" 김하연 목사.

by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posted Mar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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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원문설교. 설교 작성자: 김하연 목사(대구 삼승교회)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 (요1:14-18)


서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잘 아는 같은데 의외로 우리 는 예수님을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독생하신 하나님’이 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자 세히 밝힘으로 우리의 믿음의 도리에 대해서 우리의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알게되고 우리는 그분과 더 가까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구 원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그분을 어떻게 대해 드려야 합니까?


1.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본문을 통해서 먼저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알아봅시다.


요한복음 1장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 본문은 먼저 그가 육신이 된(became)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의 본질은 말씀이신데, 그가 육신을 입었다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제 2 위이신 예수님은 원래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 오심으로 그 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1절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에게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표현된 제 2위 하나님의 의름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이사야 7장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 오늘날은 개인의 이름으로 쓰기도 하지만, 사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우 리와 함께 있게 되신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은 ‘여호수아’ 또는 ‘호세아’ 등과 같은 의미로써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천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있을 때에는 이런 이름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 다. ‘하나님의 아들’ ‘삼위중 제 2위이신 분’ ‘말씀’ 그 자체로써 만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육신 하여서 인간세계에 오시고, 완전한 인간으로 오시고, 인간에게 불리워 지시고 심지어 인간들에게 죄인으로 여김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 시기 위해서 그는 인간의 이름 ‘예수아(예수)’가 된 것이다. 물론 천사가 지어준 이름 입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

성경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말은 ‘말씀이 인간이 되어’라는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2위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 이 신의 속성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아닌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도 여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물론 그가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은 그가 인간의 속성을 입으신 것을 분명히 말하지만, 조심스럽게 복음서가 ‘말씀이 육신이 되 어’라고 말할 때에는 완전한 인간이시만, 그는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의도적인 조심스러운 표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자요, 말씀이신 그는 분명, 육신으로 오셨고, 그는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그는 ‘육신’으로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을 그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나님이시면서 그는 인간의 육신으로 인간의 속성을 동 시에 가지시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성은 이제 시작이 되었고, 그의 인성은 이제 또 한 영원히 계속되게 될 것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분이 그런 속성을 가지게 된 것 입니다.


어떻게 한 인격 속에 두 속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동정녀의 몸에서 어떻게 완전한 인간의 육체가 탄생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록된 것을 믿는 것입니다. 명백한 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이시면서 바로 그가 인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한 분이시며, 한 인격이시기에 교리학자들은 그를 ‘신 그리고 사람 (God and Man)’이라고 표기하기 보다, ‘신-인 (God-Man)’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주장합니다. 맞는 말씀입 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참으로 놀 라우신 예수님이십니다.



2)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그분의 놀라운 속성 중의 하나는 그가 바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이 우리가운데 거하심으로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예 수님을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창조자이십니 다. 요한복음 1장1-3절에 보면 그는 태초에 이미 말씀으로 계신 분이고, 그는 영원하 신 분이고, 그는 창조자이십니다. 그가 왜 피조물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까?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하는 것은 그냥 내 마음의 좌소에 계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말 그대 로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입니다. 헬라말 스케노(σκηνόω)는 말 그대로 ‘거주했다’, ‘텐트를 쳤다’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세계에 인간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누추한 환경가운데 피곤도 느끼시고 슬픔도 느끼시고, 잠도 주무시고 그렇게 33년을 사셨다 는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할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은 ‘인간과 하나님은 결코 만날 수 없다’라고 말했고, 켈 수스(Celsus)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기독교인



-2-


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 가운데 거 하시고 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구약의 시대에도 성막을 지었을 때에 그곳에 임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를 같이 건너신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함께 하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비록 그 모양을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영광 이 있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그리고 각종 권능의 역사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함 께하셨습니다. 그러나 제한적이였으며, 예를 들면 모세가 성막을 짓고 봉헌할 때 (40:34),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 앞에 봉헌하였을 때에 구름가운데 영광가운데 임재하신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열왕기상 8장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특별한 경우에 보여주신 모습이었고 영적인 권능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님이신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33년간 같이 사신 것입니다.


아울러서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영 광스러운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우리 가 그의 영광을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 기나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나 엘리야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출애굽기 33장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야기 하시길,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런데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시기를 원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는 것은 우리 같은 보통사람의 눈으로 그분을 날마다 볼 수 있도록 우리 안에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 운 특권이고, 은혜입니까?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 타내셨느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3-


이것을 인정하십니까? 우리는 이런 영광과 특권을 주신 그분께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3)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4절,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말과 18절에 “독생하신 하나님”란 말 보다도 더 놀라운 말은 없습니다.

●  공동번역은 이것을 ‘외아들ʼ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육신은 사 람 세계의 ‘외아들의 출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 명의 아들을 낳 을 수 없어서 하나님에게 ‘아들 하나 더 있었으면’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 지가 많습니다.


●  ‘독생자’란 말은 또 스스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추상적인 관념일 수 있습니다.

●  ‘독생자’란 말자체가 아들이라는 말을 의미할진데, 인간적인 어휘요, 자칫 아들은 아버지보다 열등하거나, 후속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그 자신이 성부를 아버지라 부르셨지만, 그 자신도 영원하신 분이시오, 그는 시작도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제 2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구지 예수님을 ‘아들’이란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한 곳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요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요한복음 1장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아들’의 의미를 자못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 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호칭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인간 아버지가 아들을 낳음으로 그 생명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아 들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독생자’란 말은 이것의 헬라말로 ‘모노게네스’ (μονογενής)인데 이것은 단 하나의 (unique)ʼ의 의미입니다. ( τὴν δόξαν αὐτοῦ ὡς μονογενοῦς παρὰ πατρός Joh 1:14) ‘아버 지의 단 하나의 나오신’ 영광이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들로써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시지만, 그러나 아버지와 완전히 동등한 단 하나의 영광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란 것입니다. 그래서 외아들 등의 개념이


-4-


아니라, 18절에 나온 것처럼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14절의 ‘독생자’는 1장 18절처럼 ‘아버지로부터 독생하신 분’이라고 번역해야 합니 다.

이 부분은 어떤 면에서 조금 어렵게 느껴질 지는 모르지만, 좀 더 잘 이해하려면, 사 9:6을 보십시요.

이사야 9장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구절은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데, 여기서 아들은 곧 전능하신 하나 님이고, 그는 곧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들이 곧 아버지라는 것입 니다.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구지 인간적인 용어인 ‘아들’이란 용어를 쓴 데는 은혜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일찍부터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부터 ‘아 들’로 말미암아 구원하실 것을 예언 하셨습니다.


시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 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구약에서 예언된 바로 하나님 자신이신 그 아들을 보내셔서 구원하시겠다는 것이고, 이제 신약에서는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표현이 되고, 또 ‘하 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되는 것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는 것입니 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들로 인한 구원이 이제 성취가 됨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 아닙니까? 바로 이 예수,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어도, 하나님이 이 단어를 사용하신데는 분명 이런 의도가 있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최선의 방법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그 자신이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놀라우신 하나님, 놀라우신 예수님, 오직 주님을 찬양드립시다.


2. 우리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1) 소리질러 그를 인정하십시요. 


요한복음 1장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한이 이 예수님을 깨닫고 먼저 보인 반응은 소리 질러서 그를 인정한 것입니다.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한 것입니다. 요한이 이 말은 한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 습니다.
● 시간적으로 예수님이 세례요한보다 먼저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요한

보다 6개월 늦게 출생의 모양을 가지고 오셨지만, 요한은 그가 먼저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요한복음에서 세례요한은 단순히 ‘6개월 나중이지만 실 제로는 먼저다’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이 부분을 생각하면서


요8장에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미가 5장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지금,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기원이 영원전인 것을,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외친 것입 니다.

● 또한 그가 ‘나보다 먼저’라고 한 데에는 그가 예수님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요한복음 1장

27 곧 내 뒤에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예수님이 앞선 것은 그가 너무나 위대한 분이므로, 요한은 종들이 감당하는 신발드는 일을 자기가 감당하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종으로써도 오히려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알 때, 외쳐야 합니다.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두려 움 없이 외쳐야 한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독생하신 분이시오, 그분은 우리가 오랫 동안 기다려 온 우리의 구원자이시오, 그분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하고 말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로만 은혜와 진리로 인해 감사하십시오 


요한복음 1장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우리가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은 것, 곧 하나님을 얼굴로 대하고, 그가 우리가운데 살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가 육신을 가지고 오신 것 등이 모두 은혜입니다. 더구나 율법보다 더 은혜가운데 임하게 된 것이 감사의 제목입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것을 받은 백성은 지상의 어떤 민 족보다 복됩니다. 모세로 인한 율법을 수여 받은 것은 완전 특권입니다. 그러나 비록 이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었으나, 그것을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도 오히려 심판의 도구가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율법 을 지키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이방인들에게라도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이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의 자격을 주시니 이야 말로 모세가 누렸던 영광, 그의 백성이 누렸던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이 아니고 무 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결론) 우리의 예수님을 잘 알자.


그는 바로 독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비록 육신을 가지고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오셨어도 그는 동시에 여전히 하나님 그 자신이시고, 그가 비록 아들의 호칭 을 가지고 있어도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바로 예언된 그분이 이분임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단코 예수님은 그 영광이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 히 동일하신, 삼위 하나님의 제 2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 예수를 알고, 그를 외치고, 이 예수께 감사합시다. 오직 은혜가 그에게 있 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영광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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