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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자들의 심판자께로


이정규 목사(시광교회)
시편 82:1-8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치욕의 날'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유신정권은 74년 4월 3일 있었던 학생들의 대규모 반유신 저항 운동을 막고 여론을 반전시키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중심으로 간첩사건을 조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제 2차 인민혁명당 사건이었지요. 중앙정보부는 이들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주장하며 연루자들은 1974년 5월 27일 비상군법회의의 검찰부에 의해 국보법, 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됩니다. 

그 다음에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는데, 6월 15일부터 시작된 재판은 대법원 판결까지 10개월이 걸렸고, 8명이 사형 판결을 받습니다. 선고는 75년 4월 8일 대법원이 확정했고,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인 다음날 4월 9일 그들은 전원 사형 집행을 당합니다. 물론 2007년 재심에서 다시 판결이 바뀌고 무죄선고가 났지만,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가족들이 당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이는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판결이었으며,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 경우는 그나마 다행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재심이 청구되어 받아들여졌고, 다시 무죄 선고가 나서 억울함의 일부나마 풀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일 외에도 역사상 악한 정권이 사법 권력에 개입하여 억울한 일을 만들어낸 것은 수도 없이 많았고, 그 중에는 아직도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일들이 많습니다. 비단 사형까지 이르는 사건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탐욕과 죄악에 의해 희생당하고 고통당한 사건들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이권이 걸려있는 문제에 거대기업과 개인이 얽혀있다면, 개인이 정당한 판결을 받으리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은 역사상 수도 없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은 고통 가운데 살다가 억울함 가운데 인생을 마칠 뿐인 것일까요? 역사는 그저 오욕과 오판, 이기심과 죄로 얼룩진 채로 마무리되는 것일까요?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아니 더 나아가서,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존재합니까? 그분이 살아계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면, 저 악한 세속 권력은 왜 계속 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까? 

아삽은 우리가 방금 제기한 질문과 꼭 같은 질문을 배경에 깔고 하나님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이미 시편 73편에서 “악인의 형통함”(시 73:3)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가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73:18)라고 믿으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묵상했던 그답게, 모든 것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하나님을 장엄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재판장들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1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그는 도입부 없이 즉각 신들의 모임 가운데 서신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그분은 재판장으로 여기 서 계시며, 모든 신들은 그분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신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얼핏 보면 이방 신들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맥을 보면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2절에서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편을 들어주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맥상 여기서의 ‘신들’은 법관들과 지배자들을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재판장들을 ‘신들’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예를 들면 출 21:6은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라고 말하고, 여기서 ‘재판장’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신들’ 혹은 ‘하나님’이라고 번역되는 ‘엘로힘’입니다(그 외에도 출 22:6-8, 27; 삼상 2:25을 보십시오).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여기서 ‘신들’이라 불리는 인간 재판장들, 그리고 주권자들 앞에 서십니다. 그분은 친히 재판장이신 동시에 검사가 되셔서 그들을 기소하십니다.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질문의 형태(~언제까지 하려느냐?)로 그냥 물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이스라엘 사법 절차에서 죄인을 기소하는 방식이었습니다(삼상 22:13; 삼하 1:14; 왕상 4:42-43). 

게다가 그분은 지금 일어서 계십니다(1절에 ‘서시며’). 이는 독특한 표현인데, 보통 이스라엘 재판장의 판결은 앉아서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판결할 때 앉았고(출 18:13), 사사 드보라도 그랬으며(삿 4:5), 다윗도 그랬지요(삼상 20:5).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서 계시며 판결하신다는 것은, 이 판결이 아주 중요하고 엄중하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이는 이 땅에 모든 재판장들, 권세자들이 자신의 권한 아래에서 나름의 권력을 부릴지라도 결국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진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억울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모르고 계시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그분은 오래 참고 계신 것입니다(벧후 3:9). 그러나 그분께서 언제까지나 참고만 계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정하신 때에 갑자기 등장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모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심판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모든 진실을 밝히 드러내는 심판입니다(히 4:13). 드러난 일과 드러나지 않은 일을 포함하여, 말과 행동과 마음에 숨겼던 생각마저도 낱낱이 밝혀질 것입니다. 부당하게 행한 모든 사람들의 죄와 더불어, 악한 사회적 구조를 형성하거나 그것을 방관했던 모든 사람들의 탐욕과 음란함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완전범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르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딤전 5:24-25)


기소내용 – 약자들에게 행한 악

그렇다면 모든 권력자들이 결국 받게 될 심판의 기소내용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불공평한 판단’ 곧 가난한 자, 고아, 빈궁한 자, 궁핍한 자들을 악인에게서 건져내지 아니하고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든 것’(2-4절)입니다. 이것은 실로 두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율법은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이들의 송사를 굽게 하지 말고 이들에 대항하여 악인들의 편을 들지 말라고 명령하기 때문입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신 27:19)

특히나 하나님은 이 일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신 10:18). 그분은 2-4절에서 기소를 받은 재판관들과는 정 반대의 성품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시 146:9) 하나님께서는 남편 없는 자들의 남편이시며, 고아들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관심 갖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사람과 매력 없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 세상이 닮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과부와 나그네의 친구이십니다. 

본래 재판관들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의 임무는 무엇입니까? 위에서 말한 하나님의 선하신 성품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선을 베푸는”(롬 13:4) 임무를 띈 사람들입니다. 즉, 선하고 공정하게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도록 임명받은 사람들입니다. 물론 모든 권력자들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지만, 믿는 권력자들이나 믿지 않는 권력자들이나 모두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롬 13:1)

따라서 그들의 죄는 단순히 자신이 명령받은 것을 행하지 않은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그분의 영광을 모욕합니다. 믿는 자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도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권력에 의해 억울함과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단순히 권력만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권력에 맞서 싸우고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궁극적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는데도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원망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원망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긴 하겠지만, 이러한 원망이 울려퍼지게 만든 책임자들은 더더욱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주의 하나님은 공평하사 모든 사정과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판단하실 것이며, 하나님께 원망하며 죄를 지은 사람들을 벌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 원망하며 범죄케 만든 사회구조를 만든 이들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한 이들의 악은 결국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여기서의 ‘그들’은 3-4절의 약자들을 가리킵니다. 약자들은 세상의 판결이 굽은 것을 보고 정의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흑암 가운데 방황하게 됩니다. 따라서 ‘터가 흔들립니다’ 

‘터가 흔들린다’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법과 질서가 훼손되어 근간이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사회의 법과 정의가 무너진 상황을 자주 ‘터가 흔들렸다’고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1:3을 보십시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따라서 기소내용은 무시무시합니다. 권력자들은 하나님을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잠시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아주 작게 판결을 굽게 하였으나, 그 결과는 하나님을 모욕하고 인생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의 목적이 소요리 문답이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 일진대, 권력자들의 악은 “하나님을 모욕하고 세상을 불행하게 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자들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커야 하겠습니까? 살인 판결을 굽게 한 사람들의 죄는 살인자들의 죄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의 정죄선언 

6-7절을 보십시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권력자들에게 권력을 위임하시면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써 ‘신들’ 혹은 ‘지존자의 아들들’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 같은 수준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드러내고 표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권력자와 판결자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판결하고 벌하며 치리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악한 권력자들은 무너질 것입니다. 이 정죄와 판결을 가벼이 여기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심판 때 악인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판결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정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초등학교 다닐 때에 친구들과 싸운 것에 대하여 선생님께서 “네가 더 잘못했네.”라는 한 마디의 판결만으로도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는 우리들입니다. 세속 법정의 판결은 어떻습니까? 지방법원에서의 유죄도 부끄럽고 치명적이지만, 3심제의 마지막인 대법원의 ‘유죄’라는 확정판결은 절망적입니다. 하물며, 하물며 하나님의 법정이겠습니까? 그곳에서의 유죄판결은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의 공적인 판결이며, 이는 온 우주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결론

그렇다면, 지금까지 본문이 말하는 가르침을 정리해 봅시다. 본문은 무엇을 가르칩니까? 세상의 모든 (그것이 아주 작을지라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있으며, 그들이 행한 모든 판결은 하나님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잘못 판결하고 권력을 사용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실 것이며, 그것은 크고 무시무시한 정죄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죄목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모욕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엄중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이 진리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당신이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국가기관이든 사기업이든 복지단체든 학교, 교회 어느 곳이든 간에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고 무언가를 결정하고 판단할 힘이 있다면, 두려워하십시오. 당신의 판단을 판단할 분이 계십니다. 게다가 당신의 범죄는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의 죄보다 더 큽니다. 이러한 진리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아주 깔끔하게 잘 정리했는데,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50. 하나님의 법의 모든 범죄가 본질적으로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동등하게 흉악한가?

하나님의 법의 모든 범죄가 동등하게 흉악하지 않고, 어떤 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악화요인들 때문에 다른 죄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흉악하다.
 
151. 어떤 죄를 다른 죄보다 더 흉악하게 만드는 가중요인이란 무엇인가?

죄는 아래 열거한 요인들에 의하여 가중된다.
1. 범죄자 : 그가 보다 성숙한 연령에 이르렀는지, 더 많은 경험이나 은총을 가졌는지, 혹은 직업, 재능, 위치, 직책, 타인에 대한 지도성, 그리고 그의 모범이 당연히 타인에 의해서 추종되어야 하는가에서 고위에 있다면 그만큼 가중된다.
2. 피해자 :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속성 및 예배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그의 은총에 대해서, 성령과 그의 증거 및 사역에 대해서, 우리와 특별한 관계에 있고 그에게 의무가 있는 윗사람이나 높은 사람들에 대해서, 특히 그들의 영혼이든지 혹은 다른 어떤 것이든지 약한 형제를 포함한 모든 성도에 대하여, 그리고 만인의 또는 다수의 공동선에 대하여 범죄했는지에 따라 순서적으로 가중된다.
3. 범죄의 본성과 품질 : 율법의 명시된 조문인지, 많은 계명들을 함께 범했는지, 또는 그속에 많은 죄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따라서, 단지 마음속에서 생각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말과 행동에서 나타내었는지, 타인을 중상했는지, 그리고 배상의 여지가 있는지에 따라서, 은혜의 방편, 하나님의 긍휼과 징계, 본성의 빛, 양심의 가책, 공적 혹은 사적 권면, 교회의 권징, 정부의 징벌에 대항하여, 그리고 우리의 기도와 목표, 하나님 혹은 사람들에 대한 약속, 서원, 계약 및 의무에 역행하였는지에 따라서, 그리고 의도적으로, 의지적으로, 주제넘게, 파렴치하게, 자랑스럽게, 악의를 가지고, 자주, 고집스럽게, 경쾌하게, 계속적으로, 또는 회개한 후에 다시 범죄했는지에 따라서 가중된다.
4. 시간과 장소의 환경 : 주일에, 다른 예배 시간에, 바로 그 직전 혹은 직후에 범죄했는지, 그와 같은 잘못을 예방하거나 조치할 다른 도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공개적으로, 혹은 그것에 의해 당연히 자극을 받거나 오염될 타인의 면전에서 범죄했는지에 따라서 가중된다. 

특히 151문의 ‘범죄자’ 부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작은 것이라도, 권력을 가진 자들의 범죄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죄보다 더 큽니다. 당신이 권력을 가졌다면,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당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 말을 살피고 계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두려워하십시오. 지금 당신이 내리는 모든 결정과 판단이 결국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늘 묵상하고 염두에 두십시오. 그렇다면 마지막 날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 복되다 인정받을 것입니다. 

둘째, 당신이 큰 억울함과 괴로움 가운데 어려워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구원이 있음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존 파이퍼는 “장래의 심판은 곧 장래의 은혜이기도 하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커다란 은혜와 안식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 1:6-8)

‘환난을 받게 하는 자’와 ‘환난을 받는 너희’가 대조되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 ‘환난으로 갚으시고’와 ‘안식으로 갚으시는’이 대조되는 것을 보십시오. 세상이 불공정해 보이지만, 결국 억울함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안식이 주어집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만일 최근에 당신이 “이렇게 세상이 불공정하고 나는 억울한데, 과연 하나님이 계시긴 한 것인가?”라고 부르짖었다면, 잠시 인내하십시오. 억울한 자들의 송사를 풀어주실 위대한 재판관이 곧 등장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의 8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셋째,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당신이 만일 “그렇다면 나는 살아오면서 탐욕을 인하여 많은 잘못된 판결과 행동을 했는데, 작은 권력이라도 가지고 취해서 사람들을 괴롭혔는데 그렇다면 나는 절망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면, 절망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위한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6절을 다시 읽어봅시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시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0:33-36을 보십시오.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지금 유대인들의 송사에 답변하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은 33절에서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라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신 것에 대하여 추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송사를 가볍게 무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편 82:6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재판관들과 권력자들도 그들이 하나님을 대리하기 때문에 신이라고 부르는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부른다고 신성모독이라고 부르느냐?”

이는 물론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변호하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세상에 있는 모든 ‘신’이라고 불리는 재판관들과 권력자들과 달리 예수님 자신은 진정한 주권자요 재판관이시라고 강변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재판관들의 재판관이시오, 권력자들의 권력자이십니다. 따라서 이 시편 82편에서 판사와 검사가 되셔서 신들을 재판하시는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요 5:22)

그분이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서서 모든 신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판결과 판단을 행한 모든 자들, 권력을 부린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 죄가 낱낱이 까발려진 채로 정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이 위대한 재판장께서는 그 모든 무시무시한 정죄와 판결을 자기 몸으로 다 받으시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 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3-24)

사랑하는 죄인들이여. 이 위대한 재판장 앞으로 오셔서 자기 죄를 다 고백하시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분은 정죄하시는 심판자이실 뿐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정죄와 진노를 받으신 심판자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죄인들을 공의와 진노로 대하시지만, 회개하고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는 자비와 은혜로 대하십니다. 이 위대한 심판자께 와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즐겁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들이 저지른 모든 죄는 사함받을 것이며, 여러분들이 당한 모든 억울함은 풀릴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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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6월 원문설교, "십자가 (요19:31-37)" 김하연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07 450
35 5월 원문설교, "능력있는 기도 (삼상 1:1-18)" 김하연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16 335
34 5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가정) 설교, "가정에서 할 일: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라!(신 6:4-6; 시 78:1-4)" 임경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04 528
33 5월 시편 설교, "헛수고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시편 127편)" 임경근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04 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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