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십자가 (요19:31-37)

대구삼승교회 김하연 목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던 날, 유대인들은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안식일에 매 달아 두면 안된다는 관습 때문입니다. 더구나 유월절의 안식일은 큰 안식일이라고 했는데, 유대 관습에 ‘나무에 달린자는 저주받은 자’라는 것을 생각 할 때에 십자가에서 저주 받은 사람을 공중에 매달아서 안식일까지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통의 자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의 완성이 되는 현장입니다.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종교의식과는 대조적으로 실상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시는 그 일들은 그 세부적인 부분들에 있어서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완성시키시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뼈를 꺾지 않고,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모습들 그런일들은 그냥 평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아니라 이런 일들 하나하나가 아주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울러서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가 얼마나 완전한가를 알게 해 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자세히 살피는 가운데 주님을 더욱 높이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뼈를 꺾지 않았습니다

십자가형은 아주 고통스럽게 죽게되는 극형입니다. 일단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면 근육 충격으로 마비가 오게 됩니다. 그 마비는 심장과 폐쪽으로 옮겨가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질식으로 죽습니다. 아주 서서히 죽게 되지요. 다리는 옆으로 90도로 비틀려 복숭아 뼈 부근에 못이 박히게 됩니다. 몸이 좌우, 상하로 늘어져 못이 박히면 횡경막도 아래로 쳐져서 숨을 들어 마실 수는 있으나 내 뱉을 수 없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위 아래로 흔들면 질식으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게 되지요. 십자가 위에 고정된 몸을 조금이나마 살겠다고 온 힘을 다해 위 아래로 흔드는 것조차도 극심한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 다리를 부러뜨리게 되면 몸을 위로 들어 올릴 수 없어서 그대로 질식으로 죽게 됩니다.(인터넷 자료 참조) 

예수께서 처형당한 날은 안식일을 앞두고 있으므로 유대인들은 해가 지기 전에 빨리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때문에 로마 군병들은 빨리 죄수를 죽이고 시체를 치워달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로 다리를 부러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군병들이 두 사람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완전히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르러서는 군병들은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나타난 현상을 보면서 분명히 확인할 것이 있는데 바로 이 일들은 오래전부터 예언된 말씀의 성취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19:36절에 일렀듯이 그 뼈가 꺾이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씀은 시편의 예언된 말씀입니다. 


시편 34장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로 된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 된 출애굽의 유월절 전날, 바로 어린양을 먹을 때에 그 뼈를 꺾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그리고 또 반복적으로 이것이 유월절의 율례라고 강조하면서 

민수기 9장

12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하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왜 뼈를 꺾지 말아야 합니까? 

뼈를 꺾지 말되 민수기의 표현대로면 강조해서 ‘하나도’ 꺾지 말아야 합니다. 왜 뼈를 꺾으면 안됩니까? 꺽지 말라는, 얼핏 느낌에 관절이나 뼈마디를 꺽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히브리 성경 출애굽기나 시편의 말씀에는 하나도 ‘부숴뜨리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솨바르’가 계속 쓰인 것입니다. 이 말은 뼈가 부서져서 몸에서 분리되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제물로 드려질 때에 어린양은 온전한 채로 드려져야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출12:46-‘붸 에쨈 로 티쉬베루 보’ (그리고 뼈는 그 안의 것을 부수지 말라)

민9:12- ‘붸 에쨈 로 이쉬베루 보’ (상동)

시34:21- ‘그의 모든 뼈를 있는 그대로 하나로 보존할 것이며 (로 니쉬바라) 아부것도 부숴지지 않을 것이다’

구약의 모든 본문은 뼈를 부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헬라어 성경 요한19:32 에도, 군인들은 다른 두사람의 다리를 부수었고 ‘카타그누미’ (κατάγνυμι, break in pieces, 조각으로 부수다), 구약의 성취를 알리는 36절에도 ‘순트리보’ (συντρίβω, to break in pieces, 조각으로 부수다)로 정확한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쓰고 있습니다. 군병들은 사다리 놓고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 다리의 관절을 꺾은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큰 해머를 가지고 다리의 뼈를 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어린양, 곧 예수의 뼈는 하나도 부숴지지 말아야 합니다. 부서진다는 것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로 온전한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희생이 되십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 뼈가 부서진 것을 드려져서는 안되고, 그것은 분리되어서도 안됩니다. 하나의 온전함으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구약에서 나온대로 온전한 하나의 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언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므로 주님의 뼈는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아가서,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를 생각할 때에 교회가 분리되고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신약 성경에 우리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임을(엡1:23) 이야기 할 때에 우리는 서로 서로 연합이 되어서 하나가 됨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통일성과 일치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용)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구원자임을 더 확고하게 해 줍니다. 

이 말씀, 곧 뼈가 꺾이지 않은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부터 예언된 바로 어린양,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는 그분인 것을 더욱 분명하게 이야기 해 줍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정확하게 어린양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이야기 했는데, 그 특징중의 하나가 절대로 그 뼈는 꺾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수께서 그 뼈가 꺾이지 않으신 것은 바로 구약의 예언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시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 맞다는 것을 분명히 해 주지 않습니까? 작은 부분에 하나에가지도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처음부터 그리스도 예수를 지목하여서 구원자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성취를 보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주님의 완전한 구원, 한치의 빈틈도 없는 완전한 구원을 찬양합시다. 

 

2.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군병은 다만 예수께서 이미 죽은 것을 확인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입니다. 이미 죽으셨지만, 군병은 확인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옆구리에 창을 찔렀습니다. 밑에서 위로 향해 찌를 창은 갈비뼈 사이를 뚫고 죽음을 이제는 이중으로 확실하게 만든 일이 되었습니다. 트루만 데이비스란 분이 “현대 의학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란 책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래도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창으로 다섯째 갈비뼈 사이를 뚫고 심낭과 심장을 찔렀다. 심장을 둘러싸며 고였던 액체와 심장에 있던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질식으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심낭에 있던 액체에 의한 심장의 충격과 압축 때문에 심장쇠약으로 돌아가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완전한 죽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이 우리의 죄값, 곧 ‘사망’의 죄값을 완전히 치렀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거나, 환상가운데 십자가에 매달렸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서, 우리의 죗값대로 완전한 죽음을 죽으신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 주시는 구절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군병의 행동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는데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의 군인은 구약의 말씀을 알았을 리가 없고, 그가 의도적으로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뼈를 꺾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의 일의 편의를 위해서 이미 죽었으므로 꺾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냥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고 그것으로 자기의 그날 일과를 부지런히 마치고자 하는 입장에 불과합니다. 그에게는 구약의 말씀도,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는 그냥 황제의 명령, 빌라도의 명령, 아니 자기의 직속상관인 백부장의 명령을 따라 움직인 것 밖에는 없습니다. 로마의 사람들은 기독교를 볼 때에 아주 야만적인 미신으로 보았는데, 그는 그냥 이방의 종교 광신도 하나를 그냥 처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요, 그에게는 그 옆에 있는 다른 두 죄수 흉악범을 처리하는 것과 예수님과의 사이에서 별 차이가 없이 보는 것입니다. 다만 죽은 것이 이미 확인 되었으면 그는 다리를 꺾는 수고를 안해도 되겠다는 생각 밖에 그에게 무엇이 더 있었겠습니까? 그는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옆구리를 찔러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 마저도 예언된 말씀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습니까? 그것도 이중 삼중으로 말입니다. 

 

스가랴 12장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스가랴서에서 메시야는 찔리는 것이 예언 되었고 백성들은 찔린 메시야를 보게 될 것이 예언되어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에서 이 예언은 이루어 졌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은 계시록에서 반복적으로 마지막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찔린 몸을 직접찌른자, 또 그가 찔리게 한자들 모두 보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 1장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옆구리에 찔린 자국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수 있다는 것은 벌써 이 구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것에 대한 확증이 되고도 남는 구절입니다. 분명히 찔려 죽음이 확인된 그분인데, 그분이 바로 구름타고 통치자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찔리심은 누구나 분명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확인하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메시야라는 것을 말입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옆구리에 창자국 난 그분이 바로 우리 메시야,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모든 백성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로 이 말씀은 나아가서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 부인하지 못하게 합니다. 많은 이단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바로 자기들이 메시야라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옆구리에 창자국 난 메시야, 뼈가 꺾이지 않은 메시야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예언하신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도마가 확인하고는 드디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심을 다시한번 굳게 확신시켜주는 본문이다. 얼마나 확고한 진리와 증거위에서 증명이 되는 일인가? 

 

적용) 하나님은 이방인을 사용해서라도 그분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때에 자기도 모르면서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의 지배를 받는 것을 보고 우리는 놀라게 되지 않습니까? 사 45장에 고레스란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로되, 이사야의 200년 후에 태어나서, 그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킨 일을 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에 나오는 열왕들, 즉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헬라와 로마제국의 왕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나, 결국 그들의 제국이란 것은 바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게 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마태복음 5장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분의 섭리는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방의 왕들, 군병들, 제국들 상관없다.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것을 막을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그분의 약속이 이렇게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완전하게 신실하다면 그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것, 예수 믿는 자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되겠다는 것이 또한 얼마나 분명하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얼마나 든든하게 해 주고 있습니까? 주님의 약속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될것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1장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로마서 10장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러니, 오직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요. 사도 요한도 이 말씀을 기록한 것이 우리로 믿게 하려는 것임을 강력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할렐루야! 할렐루야!

 

결론) 십자가 앞에서 이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도 오로지 자기의 이기적 욕심만을 구하는 유대인들, 빨리 종교적 의식을 따라서 십자가의 예수의 죽으신 몸을 처리해 버리고 말고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아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의깊게 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뼈가 부서지지 않은 것을 보며, 그분의 옆구리가 찔리신 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얼마나 완전하게 빈틈없이 성취되었는 가를 알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심지어이방인 까지 사용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우리위해서 구원자가 되신 분은 오직 옆구리에 창자국난 예수 그리스도 그분 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굳게 확인하게 됩니다. 믿음위에 말씀위에 그분의 베푸신 은혜위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혹시 십자가를 보며, 주님을 믿으며 따르는 일들이 안식일 관습을 형식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저 유대인들 같이 영문모르는 로마인 같이 행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이렇게도 한치의 호리도 틀림없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을 내시는데 우리는 혹시 형식적으로 주를 따르지는 않습니까?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 10월 시편찬송 119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23 144
51 9월 소책자(종교개혁과 학문) 설교, "신앙과 지성(롬 10:9-10)" 강영안 교수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9.01 608
50 9월 시편찬송 19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8.29 229
49 9월 원문설교,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 - 1 (롬 12:3-8)" 김하연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8.29 522
48 9월 시편 설교, “하나님을 아는 두 가지 방법”(시편 19편) 손재익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8.29 1686
47 8월 시편 설교,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의 본분”(시편 8편 1-9절) 박창원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8.01 530
46 8월 원문설교,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12)" 김하연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7.31 414
45 8월 소책자(종교개혁과 문화) 설교, "창조주가 주신 문화와 문화사명(창 2:4-17)" 김재윤 교수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7.31 262
44 8월 시편찬송 8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7.31 132
43 7월 시편찬송 49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7.31 88
42 7월 시편 설교, "짐승의 길 VS 사람의 길 (시편 49편)" 박창원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7.01 612
41 7월 원문설교, "여호와 닛시 (출 17:8-16)" 김하연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28 1353
40 7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경제) 설교, "경제와 경영에서의 개혁자 요셉(창 41:47-57; 창 47:13-31)" 조성국 교수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27 198
39 6월 시편 설교, "심판자들의 심판자께로(시편 82편 1-8절)" 이정규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22 637
38 6월 소책자(종교개혁과 정치) 설교, "하나님의 정치(말 2:17-3:5)" 안재경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09 182
37 6월 시편찬송 82편 악보입니다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07 106
» 6월 원문설교, "십자가 (요19:31-37)" 김하연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6.07 379
35 5월 원문설교, "능력있는 기도 (삼상 1:1-18)" 김하연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16 272
34 5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가정) 설교, "가정에서 할 일: 자녀에게 복음을 전하라!(신 6:4-6; 시 78:1-4)" 임경근 목사. file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04 475
33 5월 시편 설교, "헛수고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시편 127편)" 임경근 목사 종교개혁500주년관리자 2017.05.04 212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