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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말 2:17-3:5)

안재경목사(온생명교회)


오늘 설교제목이 ‘하나님의 정치’입니다. 하나님도 정치하십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너무나 혼란스러운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정치하셔도 사람들이 만족할지 의문입니다.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죠. 하나님의 정의는 경찰이나 검찰이 이루고자 하는 정의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이 세상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불의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불의가 판치는 것을 보면서 그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정의로우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니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치에 불만이 많습니다. 그들이 외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주님의 눈에는 악한 일을 하는 자마다 다 좋아 보이죠? 주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좋아하시죠? 하나님이 제대로 정치하시는 것입니까?” 이게 요즘 신자들, 요즘 청년들의 생각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눈은 악한 일을 하는 자를 좋게 보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은 악한 일을 하는 자라면 누구든지 좋아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은 악을 승인하셨을 뿐만 아니라 악인들에 대해 계속해서 면죄부를 발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정의를 분배하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지 않으실까요? 말은 하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불평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제대로 정치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제대로 다스리시는 것일까요?


1. 신자들이 하나님의 정치에 마음이 상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이 상해서 불평하곤 했습니다. 시편 73편을 노래한 시인 아삽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생겨서 거의 실족할 뻔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이 불평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을 벌해 달라고 거듭 외쳤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굳게 행하여집니다.” 악인이 의인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호소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불평합니다. 

선지자 말라기 당시 상황은 어떠했길래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평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회복의 은혜를 기뻐하면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 왕보다 더 위대한 메시아를 보내어 주셔서 자기들에게 영광스러운 날을 허락하실 것이며, 자기들 땅에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들뜬 마음과 흥분도 잠시였고 그들은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고, 주위의 대적들이 자기들의 목을 점점 죄어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흉년이 들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온갖 악이 성행해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것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에 편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겁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벌이 즉시로 내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대담하게 악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즉시로 벌을 내리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는 하나님께서 악을 허용하실 뿐만 아니라 악인을 기뻐하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이 바치는 제물은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한 자들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성껏 예배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눈 여겨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더 눈 여겨 보고 계신다면 말입니다. 억척입니다. 논리적인 비약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상해있으니 감정이 앞서서 그들 스스로 결론을 내립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정의의 하나님이란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회복을 경험하고 들뜬 마음으로 약속의 땅에 돌아온 이들이 이제는 정의의 하나님이란 없다고 결론 내리는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정치에 마음이 상하고 의심하고 불신하는 상황,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기입니다.



2. 하나님의 정치를 기다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구하는 주님, 그들이 사모하는 언약의 사자가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 너희들의 요구대로 내가 언약의 사자를 갑자기 성전에 임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대하는 대로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나라가 곧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갑자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즉시‘ 임하지 않냐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내가 ‘갑자기’ 임하겠다고 하십니다. 즉시와 갑자기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시간적으로는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자기’는 ‘예상치 못하는 때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 넘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바닥 안에서 노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해 놓은 시간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간표에 맞추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지체하는 것처럼, 늘 뒷북 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서두르지 않으심은 실은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께서 성전에 임하시는 때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위해 주님의 사자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사자,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에 관한 말씀을 이사야서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부터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선지자 이사야와 말라기가 주의 사자를 가리켰지만 그들 자신이 주의 사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앞서 와서 예수님을 증거한 세례 요한이 주의 사자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길을 준비할 사자들을 세우십니다. 우리는 지금도 말씀의 사역자들이 이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래학자들이나 무당들이 미래를 아무리 잘 예측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를 준비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이야말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합니다. 말씀에 유의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가장 잘 준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예상치 못하게 오시기에, 도적처럼 오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를 안다고 잘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깨어 있어야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깨어 있어야 주님의 정치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치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정치하십니다. 기다려 보십시오.



3. 하나님의 정치는 정결케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시기를 바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속히 개입하셔서 정의를 시행해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그 개입, 하나님의 그 임재가 얼마나 중차대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어느 누구도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친히 임해서 공의를 시행해 주기를 바랬지만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7가지 종류의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들을 세밀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점치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곳에 있는 점치는 자들, 마술하는 자들을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점치는 이들을 믿고 따랐다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간음하는 자들과 거짓 맹세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이용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바로 앞 본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신의 딸들과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방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는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음이 가장 큰 심판의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즉시로 일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면 큰일납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에 그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인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야 한다고 구할 때에 조심하십시오. 정말 하나님께서 일하셔도 상관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것은 얼마든지 하셔도 좋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임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방 한 칸 내어달라고 하시면서 여러분 집에 살기 위해 오겠다고 하셔도 상관없습니까? 하나님께서 복 주기 위해서만 오신다고 생각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을 감당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를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해도 상관없습니까?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예상치 못한 때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임하는 목적은 그들을 심판하고 끊어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을 제련하는 용광로와 같이, 더러운 옷을 표백하는 잿물같이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온갖 불순물로 가득한 금과 은은 제련하여 순수한 금과 은을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제련소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더러운 것이 잔뜩 끼어 있는 옷을 표백하여 깨끗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강력한 표백제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을 금, 은같이 연단하여 하나님께 공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실 것입니다. 레위 자손이 바칠 공의로운 제물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로마 카톨릭에서는 레위 자손이 바치게 될 이 공의로운 제물은 미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레위 자손이 아닌 유다 지파의 예수님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제물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를 거룩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정치는 더러운 자들을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께 아름답게 드려지게 하는 정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세상정부에게 칼을 쥐어 주셔서 정의를 행하라고 하십니다.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정의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심판 받아야 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서는 서로 손가락질 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이것을 폭탄 돌리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같이 힘을 합쳐 폭탄을 멀리 던져버릴 생각은 하지 않고 폭탄이 터지기 전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손에 그 폭탄을 올려놓고는 안심하는 것 말입니다. 그 폭탄이 사람들 손에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폭탄이 돌고 돌다가 누구 손에서 터지든 다같이 죽지 않겠습니까?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는 구호로는 정의를 외쳐도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의에 대해서는 관심 밖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 위주로 움직이는 타락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익에 대해서는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세상정치는 이익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정치’를 개입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불의한 우리 자리에 대신하여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르친 관계, 우리가 깨어버린 의를 회복시키시기 위해 우리의 불의를 뒤집어 썼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의 자리에 서심으로 심판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회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의 정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뒤집어 쓰고 나아가는 자들을 받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정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을 보고 대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면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요구되는 의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땅 가운데 의가 하나씩 자리잡아갑니다. 참으로 신기한 안경입니다. 이 안경을 쓰면 아무리 거들먹거리는 사람들도 불쌍해 보이고, 아무리 비천한 사람들도 존귀하게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이 땅에 제대로 된 하나님의 정치가 자리를 잡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은 정치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습니다. 정치가 몇몇 사람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불평의 소리를 높입니다. 봉사하는 정치가 아니라 군림하는 정치라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이 즉각적이고 극적으로 개입해 주기를 바라지만 정작 저희들 자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야 할 의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저희들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임을 보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저희들을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저희들을 하나님의 의로 삼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 나 자신과 모든 것을 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누구나 정치하는 자들이오니 오직 그리스도를 덧입어 생활의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우리에게 제대로 정치하는 길을 마련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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