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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도다, 의인들은;
악인들은 망하리로다!

이성호 교수/목사
본문: 시편1편

서론

신학은 영어로 theology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말’이라는 헬라어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신학이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이 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이 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두 요소가 다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이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편은 특별히 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시편은 여러 방식으로 하나님께 말합니다: 때로는 탄식으로, 때로는 감사로,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기쁨으로 ...... 

성경은 동일한 교훈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들은 망하였다."-역사  
"의인들은 복을 받고, 악인들을 망할 것이다."-예언 
"의인들은 복을 주어야 하고, 악인들은 망하게 하여야 한다."-법 
"의인들은 복을 얻고, 악인들은 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지혜 
"복이 있으리라, 의인들에게; 망하리로다, 악인들이여!"-시

이 모든 것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같지만,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신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각자가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시편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시편은 노래입니다. 노래는 함축적입니다. 많은 내용을 짧게 표현합니다. 의인이 복을 받고 악인이 망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역사는 많은 과정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법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이러한 설명들 때문에 이해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다 기억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와 노래의 강점은 바로 성경의 풍성하고 심오한 교훈들을 쉽게 기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시편은 예배 시간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불렀습니다. 이것은 신자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분주하고 바쁜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기억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시편에 대해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길: 복과 멸망

오늘 본문은 두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의인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악인의 길입니다. 아쉽게도 제3의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에,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작품 속에는 두 길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빛의 길, 어둠의 길; 생명의 길, 죽음의 길.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두 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넓은 길과 좁은 길.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히브리어에 따르면, 복에서 시작하여 멸망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복이 있도다 & 망하리로다. 문장 구조만 보면, 복과 멸망 사이에 시의 모든 내용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과거의 선택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은 우리의 삶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 삶의 큰 흐름을 결정합니다. 오늘 점심을 짜장면을 먹을 것인지, 우동을 먹을 것인지는 우리 삶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선택하는 것, 직업을 선택하는 것, 교회를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의인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악인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우리를 복으로 인도하고 다른 하나는 멸망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

의인의 길, 복된 길은 무엇보다도 악인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복된 삶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바울 사도도 로마서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길을 선택합니다. 왜 사람들이 악인의 길을 선택할까요? 악인의 길의 종점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이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을 안다면, 누가 그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악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 길이 복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악인이 선택하는 길은 적어도 그 첫 부분은 우리 눈에 보기에 그럴 듯한 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세속적 지혜와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라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한 길이고 지혜로운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확률상으로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육이 문제가 많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자녀들을 다 남들처럼 시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옛날에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면, 그것이 길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오늘날에는 다리를 놓고 산을 뚫어서 길을 새로 만듭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인의 꾀를 따라 걷습니다. 더 나아가 죄인의 길에 서게 됩니다. 즉, 죄인의 편에 가담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만한 자의 자리에 눌러 앉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타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는 뱀의 꾀를 듣고 그대로 행하여, 악인의 자리에 눌러 앉은 것입니다. 악인이 제안하는 길은 처음부터 멸망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하게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꾀를 좇고, 그 길에 서고, 마침내 그 자리에 안주하게 됩니다. 즉, 악인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 져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립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악인 아닙니다. 여기에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조롱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는데, 다 동일한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악인은 의인에 반대되는 말이고, 죄인은 바른 길에서 벗어난 자이고, 오만한 자는 바른 법을 우습게 여기는 자입니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영화에서 본 악당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악당의 길이 좋아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길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그 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골적으로 “나는 저런 악당처럼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은 그런 악인들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본문에서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시편 53편에 보면, 그는 어리석은 자로 묘사가 되어 있고,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불신자를 떠 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의 저자는 악인을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고 있는 악인들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다윗 왕을 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시편의 많은 노래들은 다윗이 지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 안에 거하는 악인에 의해서 조롱을 당하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확신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고, 이들로 인해 수많은 교회들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그들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의인의 길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은 정반대의 길이기 때문에, 또 중간에 제3의 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악인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이나 사고방식이나 습관을 따르지 않고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의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길은 단순히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시편은 적극적으로 의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시편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확실하게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원리적인 면에서 보면,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 악인은 마음 속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과연 어떤 사람이 악인인지 의인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주위에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수도권에서는 40%가 넘습니다. 그 사람이 다 의인일까요? 어떻게 그 사람이 의인인지 악인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율법에 대한 태도입니다. 율법을 즐거워 하는가, 또는 그 율법이 정말로 좋아서 항상 그것을 묵상하는가? 

여기에서 율법에 대하여 정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이라고 하면, 그 용어 때문에 여러문은 법 조문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라고 하는데, 보다 넒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토라라고 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모세 오경을 토라라고 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이 시편이 쓰여졌을 때는 구약성경 중 상당 수는 쓰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모세 오경 외에 몇 개의 성경만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토라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이 들어있고,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결국 토라를 즐거워 한다는 말은 바로 그 토라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그 토라를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묵상이라는 것은 낮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의미하는 데, 율법을 너무 좋아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율법이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의인의 삶은 재미가 없는 삶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토라라는 것은 몇 시간만 있으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결국 읽었던 내용 읽고 또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참으로 재미없는 삶이 바로 의인의 삶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삶이 복되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결국 토라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 토라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 방식을 좋아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의인이요, 바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의인이란 단지 착한 사람, 성품이 좋은 사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결말

본 시편은 마지막에 의인과 악인의 결말을 이야기합니다. 시편은 의인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유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냇가는 여러 물길을 의미합니다. 나무에게 있어서 물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물이 없는 곳에는 나무도 없고,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 에덴 동산은 그야말로 나무들에게 있어서 낙원이었습니다. 4개의 큰 강이 흘러 온 땅을 적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나무들이 잘 자라서 많은 열매를 생산해 내었습니다. 나무가 어떤 곳으로 뿌리를 뻗어도 물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식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을 시편은 "그의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는 일마다 잘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잘못하면, 이 구절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된다’는 식으로 이해를 할 위험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원하는 대로 이 세상이 돌아간다면, 그 삶은 복된 삶일까요? 어떻게 보면, 그런 세상이야 말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에 대해서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의인이 바로 율법을 즐거워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행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 마다 잘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의인의 행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번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물에 달려 있듯이, 의인의 행사가 다 형통한 것도 그 사람이 삶이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악인의 길은 정 반대입니다. 의인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면, 악인은 겨와 같습니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이렇게 악인과 의인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겨는 추수를 암시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추수 때 알곡을 털면 그 껍질이 까져서 뒤섞입니다. 이것을 겨라고 합니다. 알곡과 겨가 섞여 있기 때문에, 분리를 시켜야 합니다.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둘을 공중에 던지면 됩니다-이것을 키질이라고 하지요. 아주 약한 바람이 불어도, 겨는 금방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알곡과 겨는 한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추수는 최후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겨와 같은 악은 하나님의 조그만 심판에도 견디지 못하고, 알곡인 의인과 함께 하지 못합니다. 


결론

많은 사람들이 복된 삶을 추구합니다. 오늘 시편 1편은 복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어쩌면 시편 150편 전체가 복된 삶에 관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50편은 하나님에 대한 송영으로 마치고 있는데, 이것은 복된 삶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복에 대한 기준이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이 시편을 썼던 사람은 오직 모세 5경와 몇 개의 구약성경만을 소유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풍성한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66권의 성경이 우리에게 있고, 또한 설교와 성찬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즐기는 사람이, 이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의인이요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가정에서 하루라도 주의 말씀을 중심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적이 오르거나 좋은 상을 받는 것 보다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암송하고 그것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머리 속에 확신시키도록 합시다. 세상이 많이 혼탁해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바로 그런 삶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의 풍성한 말씀을 즐기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다 함께 이 시편을 노래 합시다. 복이 있도다, 의인들은; 악인들은 망하리로다! 늘 이것이 우리의 교회 공동체의 노래가 되고, 우리 삶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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