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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12)


김하연 목사(대구 삼승교회)


서론)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누구나를 막론하고 한국교회를 걱정합니다. 지난 10년동안 지속적으로 전국적인 교인의 감소, 이단의 활동들, 더구나 우리를 두 렵게 하는 것은 다음세대의 헌신도의 연약함과 교회의 세속주의 등을 걱정합니다. 그 래서 어찌하면 한번 더 제대로 한국교회를 세워볼까 하는 여러 세미나나 대회가 많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회복의 기미 는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면 됩니까?


오늘 성경본문에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한사람보게 됩니다. 그는 니고데모인데 그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나라걱정’하는 모습을 보 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을 줍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서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지를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가장 긴급 한 일은 ‘거듭나는 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고 하십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운명은 곧 하나님 나라 의 운명과 같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거듭나지 못한자는 천국백성도 아닌데 네가 무슨 그 나라걱정하고 그나라 일 하겠다고 하느냐’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를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자격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과연 위로부터 났는가” 하는 고민을 해 보았습니까? 과연 나는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 생각에서는 이미 우리가 예수님 믿 고 새 사람이 되었다 할지라도,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재 점검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배우고 우리모두가 예수님의 좋은 인정받는 일군이 되시 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1. 위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얼 핏보면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몰래 예수님을 만나려고 밤에 찾아온 사람으로 보여지 는 것 같으나 그러나 그는 누굴 두려워 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리세인이었 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집안은 권력이 대단한 집안이었고 신구약 중간시대 아리스토 불루스 때부터 유대의 통치자의 바로 측근에 있었던 집안출신입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걱정은 오직 하나 나라걱정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자세 히 보면 그가 마치 당국자의 대표로 예수님께 협상하러 온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3장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 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는 ‘우리는’하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충성된 사람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혹독한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유추해 볼 때, 아마도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같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 엘 나라를 회복 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행1:6) 하고 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수도 없이 여러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을 ‘이스라엘의 회복’으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의 니고데모에게 대한 대답은 완전히 의외입니다. 그 말씀의 뜻 인즉, ‘너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진정한 이스라엘?)를 볼수도 없을 터인 데 너가 그나라를 염려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이 관건입니 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데,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적당한 깨달음이나 선행으로 될 수 있거나, 어떤 결단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 다. 이것은 헬라말 원어로 ‘게네떼 아노뗀(γεννηθῇ ἄνωθεν)’입니다. 이 말씀은 ‘위로부 터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아노뗀은” 위로부터 라는 말입니다. 우리말 번역에 ‘위 로부터’란 말은 없고 단순히 ‘거듭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원어는 분명합니다. “위로 부터”입니다. 다른 영어 번역들도 한국말 번역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영어번역들은 ‘born again’정도로 번역합니다. 감사하게도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은 ‘born from above’로 바로 번역해 놓습니다. 현대 히브리어 לעמלמ 번역은 델리취역이나 이스라엘 성서공회 역이나 둘 다 ‘미레마알라 (위로부터 를 정확하게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표준 새번역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하고는’)ה 각주에 “또는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합니다.


방향성이 없는 거듭남 곧 ‘중생’이란 말은 우리에게 여러 혼동을 가져옵니다. 불교의 중생, 또는 이중생명, 등, 또 그냥 거듭난다고 할 때는 전혀 중립적 말이므로 혼동을 가져온다. 어떻게, 어디서, 어디로 방향이 없는것입니다. 이런것은 결국 신앙 생활에 영향을 미쳐서 불투명한 확신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헬라어를 따라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좀 더 분명한 개념을 줍니다.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것은 바로 ‘하늘로 부터 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1:13에 “이는 저가 혈통 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는 말씀과 맥이 분명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이 땅의 이스라엘을 회복하려고 상의하려했는지는 모르나 예수님 의 말씀은 처음부터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는 것부터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시작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 라를 잘 몰랐다. 예수님은 그의 생각의 시작점부터 고쳐 주고 계십니다.


적용) 우리가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좋은 비젼을 가지고 있습니까? 선교와, 이 땅에 주님의 주권의 도래와, 이스라엘의 회복과, 한국교회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등 등.... 그러나 우리는 먼저 분명하게 해 두어야 합니다. 내가 ‘위로부터 났는지’를 말 입니다.


혼동하지 마십시오. 니고데모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속한 것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더구나 나 개인의 출세나, 나의 영광스런 봉사, 민족적 우월주의나, 등을 하나님의 나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국교회를 생각함에 있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내 안에 위로부터 난 생명이 있는가 하는 것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외면적인 성경지 식이나, 실력이나, 사회적 경력을 갖추었는지, 또 애국심이나, 멋진 비전을 가졌느냐, 교회를 사랑하는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했는가 보다도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 져야 합니다. “내 속에 위로부터 난 생명이 있는가”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났 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의 말씀대로라면, 당신이 위로부터 난사람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속에 있 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십시오.



II.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두번째 대화의 단원으로 들어가 봅시다. 이야기를 이렇게 진행시키고 나면 당연히 다음에 나올 질문은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위로 부터 태어나는 것인가”라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물었습니다. “사람이 늙 으면 어떻게 날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니고데 모는 황당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늙으면” 이라고 물은 것은 자신이 이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써 장로로써 연장자인데, 예수님의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다시 태어 나는 것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넌센스이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니고데모는 그 의 질문을 ‘메’ 로 시작합니다. μὴ δύναται (NIV, surely they cannot) 그것은 부정적인 대답을 기대하고 묻는 헬라어 기법의 의문문의 시작입니다.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시한번 사람의 방법으로는 결코 ‘위로부터 날 수 없음’을 니고데모도 분명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대답을 주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 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느니라” 이어서 예수님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시는데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위로부터 나야 한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여기서 다시한번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의 방향이 서로 어긋나는 것을 느낌니다. 니고데모의 이해는 육신적인 것이고 예수님은 영적인 탄생 을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하는 이 귀절은 우리가 영적 으로 생각해 본다 해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도데체 물과 성령으로 태 어나는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도데체 물과 성령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문제는 신학자들 사이에도 여러가지 의견의 충돌을 일으키는 난제중의 하나였습니다.


오리겐: 이 둘의 차이는 개념의 차이지 존재적으로는 같다 칼빈: 성령과 물은 성령과 불 (눅 3:16)과 같은 의미

벵겔: 물은 세례요한의 것,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


여러 신학자들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더 혼동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성경 자체의 증거들을 통해서 간단하게 풀어봅시다. 구약에서 성령과 물의 연결은 함께 좀 더 죄의 정결케 함과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6장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

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

를 지켜 행할지라


디도서 3:5은 이 언급된 내용을 잘 요약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 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좆아 중생의 씻음 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물로 더러운 것을 씻듯이 회개하여 죄를 씻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심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회개하고 죄씻고, 또한 성령으로 인해 예 수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과 정확하게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믿어야 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가복음 1장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사도행전 2장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말씀은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은 오늘 본문 즉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것은 정확히 물로 씻어 정결케 되고(회개), 성령으로 새롭게 나야(믿음) 한다는 것과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의문의 여지는 남습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할 때 어떤 과정이며, 내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신비입니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비 유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분명한 대답을 주십니다. 즉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 터 나는가 하면, 다른 말로 회개하고 죄씻음받고 성령으로 새롭게 즉 예수를 믿는 일 이 일어나는가, 여기에 어떤 신비한 과정이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는 정말 어려 우므로 바람의 비유를 드십니다.

요한복음 3장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신비한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힘드나 명백하게 ‘소리를 듣는’ 증거로써 바람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처럼, 회개로 씻고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예수 믿게 된 것을 보아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하고 성령으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 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존재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즉 성도의 매일의 삶 속에 ‘회개가 있는가, 성령으로 인한 믿음의 고백이 매일 있는가’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가 천국을 보려면, 들어가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어떤 기저로 말미암아, 회개가 우리를 어떻게 깨끗하게 하는지, 성령이 어떤모습으로 우리안에 계시는지 우린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일이요, 땅에서의 일도 모르 는 우리로서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위로부터 다시 났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첫째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의 생활에 회개가 있느 냐는 것입니다. 단순한 후회정도가 아니고, 그것은 다시 하나님의 멍애를 매고 하나님 의 명령을 지키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매일 매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이 부는것 과 같다고 했습니다. 바람소리가 누구에게나 들려서 누구나 바람이 불면 알게 됩니다. 어떤 종류의 바람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려지고 있습니까? 찬바람, 교만한 바람, 자 랑하고, 이기적이고, 야망의 바람, 거친 성격의 바람입니까? 아니면 회개와 믿음의 바 람입니까?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나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 며, 도저히 더 이상은 이렇게 살아 갈 수 없음을 비장하게 깨닫고, 그리고 주님이 그 의 성령을 내게서 떠나게 하실까봐 두려워하면서, 그리고 천국에도 못들어 갈까봐 두려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손해 볼지라도 행하는 그런 바람소리가 필요합니다.


결론)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십니까? 그러나 먼저 자 신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위로부터 거듭나 있는가를 확인하십시요. 우리에게 매일매일 가슴 두드리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 담대하 게 있어야 합니다. 내 속의 하나님의 나라는 나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도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정은 신비해도 누구나 알수 있게 말입니다. 이 기본이 먼저 갖추어 져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위로부터 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예수의 사람임을 더 이상 비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7장에서 대제사장과 다른 바리세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었고 그 하속들이 그냥 돌아왔을 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그 하속들을 야단치면서,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하고 저주를 퍼붓는 현 장에서, 니고데모는 분명히 예수님과 그 믿는 사람들을 변호 했습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들은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하고 니고데모를 조롱했습니다(요7:52). 그는 조롱과 저주를 무릅쓰고도 예수님을 변호했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후일 그는 예수 그리스 도의 장례식 때 몰약과 침향 100근을 가져온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그는 바로 하나님 나 라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교회를 위해서 염려하고 애쓰고 있지만, 우선 먼저 자신을 점검합시다.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났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 거는 무엇입니다. 여러분 속의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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