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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길 VS  사람의 길(시 49편)

박창원 목사
포항장로교회

서론 
재물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신자는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지 아무것도 안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땀 흘려 수고하여야 양식을 먹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땅에 사는 동안 힘써 경제 활동을 하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의 종이 되어 돈을 위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경제에서도 왕 노릇해야 합니다. 시49편은 물질에 대한 왕의 지혜를 가르쳐 줍니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지혜의 노래
49편은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42-49편까지가 그들의 시인데, 45편에서 영광스러운 왕의 자녀들에 대해 노래하고, 46편부터는 왕의 다스림과 보호에 대해 노래합니다. 그리고 49편에서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의 것이며, 이를 알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12, 20절). 두 구절은 후렴구로서 시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을 연결하며, 물질의 유한함을 알지 못하는 자를 짐승에 비유합니다.  


세상은 부요한 자를 존귀하게 여깁니다. 그들을 존귀한 자리에 앉히지요. 그러나 시인은 그들이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도발적인 말입니다. 부요한 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노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지혜가 위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그는 세상 모든 백성을 향해 자신의 노래에 귀 기울이라고 합니다. ‘뭇 백성’은 천하 만민이며, ‘세상의 거민’은 ‘시대의 거민’을 가리킵니다. 그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향해 당당히 노래합니다. 또 귀천 빈부를 막론함으로 모든 계층까지 아우릅니다. 그의 이런 호기로움은 4절에 기인합니다. 4절에서 그는 자신의 비유에 자신도 귀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이 비유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들은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비유’는 ‘교훈’ 혹은 ‘잠언’으로 번역 할 수 있는데, 참된 지혜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받은 참된 지혜를 말합니다. 욥28장에 보면 금과 은, 철과 동, 각양 보석이 땅에서 나지만 지혜는 하늘에 있기에 사람이 땅에서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시인은 그 지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확신 있게 말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사람을 향한 그의 외침은 지혜의 속성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잠언 8장에서 지혜를 가리켜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라고 말합니다. 지혜가 광장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외치지요. 그렇게 참된 지혜는 광장의 소리요, 모든 사람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진리입니다. 


지혜자의 수수께끼  
지혜자는 오묘한 말을 전하는데, 이는 일종의 수수께끼입니다. 즉, 자신이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내겠다는 겁니다. 그 수수께끼는 자신이 환난의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5절에서 시인은 죄악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또 자기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죄악이 나를 따라다니며’는 ‘나의 발꿈치들의 죄악’을 가리킵니다. 이는 시인의 발목을 잡는 죄의 걸림돌로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에워싸는 환난의 날’이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을 둘러싼 죄의 무리가 있으며, 그로 인해 환란에 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을 둘러싼 악인들이 시인의 발목을 둘러싸 괴롭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시인을 환란에 빠트린 악인들의 정체는 6절에서 밝혀집니다. 곧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여 부유함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땅에서 성공한 자들입니다. 부를 축적하고 자신의 이름을 떨치는 자들이지요. 한마디로 시대의 ‘갑’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그 부유함을 자랑합니다. 여기서의 자랑은 자신을 치하하는 정도를 넘어, 약자들을 향해 조롱과 핍박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힘을 의지합니다. 그 힘은 매우 강력하여 꺾을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힘으로 약자들을 유린합니다. 자기의 부요함을 자랑함으로 가난한 자들을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세상에서 늘 불러지는 유행가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조롱하고, 겁박하는 후렴의 악한 메아리는 끝이 없습니다. 아니, 세월 갈수록 더 거대한 합창을 이룹니다. 


전반부: 두 박자 인생, 죽음과 헛됨(1-12절)
그 거대한 합창 소리 앞에 솔리스트 한명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노래에 화답합니다. 부요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후렴을 부릅니다(12절). 시인의 청아한 노래는 왁자지껄한 악인들의 잔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요, 이제 잔치는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그가 이렇게 외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재물이 생명을 속전할 수 없음이요(7절), 둘째는 재물이 영구하지 않기 때문(10절)입니다. 재물은 생명을 속전하지 못합니다. 속전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치르는 값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과 종을 해방시켜 줄 때 사용하는 용어지요. 그런데 속전 제도가 있다는 건 재물로 사람을 사고 팔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부요한 자들은 사람을 돈으로 사고팝니다. 그러니 자신의 재물로 얼마든지 속전을 치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사고파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 앞에서는 부요한 자가 없습니다. 모두 거지일 따름입니다. 생명 또한 그 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생명의 값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값이 얼마인가요? 막8:36-37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주님은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더 값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누가 이 값을 지불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영원토록 재물을 모은다 한들 생명의 속전을 마련할 수는 없습니다(8절). 재물로 사람의 몸값은 지불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생명의 값은 결코 지불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는 없지요. 


죽음 앞에 재물은 힘을 잃습니다. 부요한 자라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로 자기 생명을 살 수 없으며, 죽을 때 그 재물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그들이 의지하는 재물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못되며, 그들이 자랑하던 재물은 남의 것이 되고 맙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죽음의 순간에서야 깨닫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집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거기에 자기의 이름을 새깁니다(11절). 자기 이름의 부동산을 등기 하고 이를 자랑하며 살지요. 세상은 이러한 원리 속에서 돌아갑니다.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의지하고, 영원하지 못한 것을 자랑하며 살지요. 그래서 존귀하나 장구하지 못한 자를 가리켜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합니다(12절).


하지만 이 정도의 교훈에서 마친다면 이는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인생무상과 재물의 부질없음은 세상의 철학으로도 추정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시인의 노래는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리메이크 버전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지혜는 특별합니다. 그래서 후반부에서 인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참된 지혜를 노래합니다. 


후반부: 새로운 두 박자, 구원과 깨달음(13-20절)
시인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자의 길을 가며, 그들의 말을 기뻐하다가 사망의 종말을 맞이한다고 합니다(13절). 어리석은 자들이 부요한 자들의 말을 기뻐한다는 건, 그들을 삶의 표준으로 삼으며, 그 지혜를 칭찬한다는 겁니다. 세상은 부요한 자들, 소위 성공한 자들을 표준으로 삼습니다. 그들의 번영을 칭찬하며, 모델로 삼지요. 하지만 시인은 부요한 자들의 길을 따르는 자들 역시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 사망이 그들의 목자요,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14절). 그들은 양 같이 스올로 가며, 사망은 그들의 목자가 됩니다. 거짓 교훈은 사망의 목자가 되어 그들을 양 같이 스올로 이끌어 갑니다. 재물을 의지하고 자랑하라는 속삭임은 사망의 목자요, 사람을 망하게 하는 첩경입니다. 이 교훈의 결론은 사망이며, 이 교훈을 따르는 자들의 주소지는 스올입니다(14절). 악인들이 밤에 자신의 부를 자랑할지 몰라도 아침이 되면 정직한 자들이 그들을 다스립니다(14절). 그들의 불야성은 온데간데없고, 아침이 오면 황량한 무덤위에 자신들의 거처가 있음을 깨닫게 되지요. 우리는 이 모습을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봅니다. 자신의 부요함을 자랑했던 부자는 죽어서 고통을 당하며, 나사로는 영광을 누립니다. 부자는 스올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거처가 스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갑니다. 무덤을 향해 칭찬하는 하는 사람이 없듯, 그들을 향하는 칭송 역시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반면 의인은 스올의 권세에서 건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영접하사 그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십니다(15절). 여기서 ‘영접’이라는 말은 ‘취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취하여 자기 소유를 삼으셨다는 거지요. 또 ‘건져 낸다’는 말은 ‘값을 지불하다, 구속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값을 지불하여 자기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어디로부터 사셨습니까? 사망으로부터, 스올의 권세로부터 사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사망에 팔렸는데, 하나님께서 생명의 값을 지불하심으로 다시 사오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너무 비싸 아무도 마련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속전을 대신 치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능히 생명의 속전을 지불할 만큼 부요하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재물이 많아도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 없는 반면, 의인은 가진 것이 없어도 그 생명을 구원 받습니다.


이를 알면 사람이 치부하여 그 영광이 더함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그들이 의인을 조롱하고 핍박할 때에 두려워지 않습니다(16절). 그는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이 없으며, 그의 영광이 그를 따라 내려가지 못합니다(17절). 그들은 부를 자랑하던 자기 조상들이 갔던 죽음의 길로 가야하며,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19절).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한다는 건 단순한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빛이 없는 지옥에 거하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합니다(20절).


짐승의 길 VS 사람의 길
시인은 두 번이나 존귀한 자들의 멸망할 짐승 같음을 선언합니다(12, 20절). 그런데 20절에서는 깨닫지 못함이 추가됩니다. ‘깨달음’은 ‘분별, 지혜’를 가리킵니다. 즉, 사람이 존귀하나 분별하는 지혜가 없으면 멸망할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느부갓네살에게서 발견합니다. 느부갓네살은 가장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에게는 천하의 부와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모든 영화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기에 부를 자랑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라고 말입니다. 만약 그리하면 그가 장구할 것이라고 하셨지요(단4:27). 


하지만 그는 지혜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쫓겨나 들짐승처럼 되었습니다.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 같이,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지요(단4:33). 가장 존귀한 자가 멸망할 짐승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은 재물도 그를 돕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일곱 때를 지난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돌려주십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겸손히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이렇게 시49편은 느부갓네살에게서 성취됩니다. 그런데 이 성취는 느부갓네살에게서 마치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의 시선을 아담으로까지 이끌어갑니다.
 
아담은 온 천하를 다스리는 통치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였습니다. 하지만 지혜로 선악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에서 멸망당할 짐승이 되어 버렸습니다. 범죄 후 아담은 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옷 입었던 그가 짐승의 형상을 옷 입은 거지요. 롬1:23절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실상은 어리석게 된 사람의 결과입니다(롬1:22).  


네 가진 것을 팔아 지혜를 사라 
이와 같이 시49편의 지혜는 헛것이 아닙니다. 말 한대로 성취되는 참된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하늘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금과 은, 모든 재물은 땅에서 납니다. 땅에서 나기에 땅에서 마칩니다. 그러나 지혜는 하늘에서 납니다. 하늘에서 나기에 하늘에서 마칩니다. 재물이 사망의 목자이듯 지혜는 생명의 목자입니다. 의인을 생명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사야 합니다. 지혜를 사기 위해 재물을 팔아야 합니다. 하늘을 사기 위해서 땅을 팔아야 합니다. 


주님은 부자 청년에게 이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생을 사려는 그에게,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재물을 팔아 그리스도를 사라는 거지요. 그것이 구원이라는 겁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신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사는 것은 지혜를 사는 겁니다. 하지만 그는 지혜를 거부했습니다. 재물을 버리기보다 지혜를 버렸으며, 땅을 포기하기보다 하늘을 포기했습니다. 청년이 돌아가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19:25)”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구원은 우리로서는 할 수 없고 하나님으로서만 할 수 있습니다. 거지인 우리는 생명의 속전을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대신 속전을 내셨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의 가진 것을 팔았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임에도 종의 형체를 입으셨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땅을 거처로 삼으셨으며, 자기 생명을 팔아 우리의 생명을 사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가진 전부를 팔아 우리를 사셨습니다. 부요하신 그가 우리를 위해 가난해 지셨습니다(고후8:9). 그의 가난 덕분에 우리는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스올의 권세에서 건짐 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부요함은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우리의 가진 것을 팔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백배의 부요와 영생을 상속받습니다(마19:29). 


결론: 존귀한 자의 길로 가라
시인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을 향해 하늘의 지혜를 선포합니다. 재물의 한계와 무능을 말하며, 부요한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지혜는 재물의 바른 사용법을 가르쳐 줍니다. 재물은 왕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물의 종노릇이 아니라 왕 노릇 할 수 있습니다. 왕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땅에 하늘을 심어 두셨습니다. 그 하늘은 곧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교회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이는 곧 구제와 자비의 사역을 위해 물질을 드리라는 겁니다. 물질은 구제를 위해 주신 지혜의 선물입니다. 땅에는 가난한 자들이 항상 있습니다(신15:11). 그러나 자비의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에는 가난한 자들이 없습니다(신15:11, 행4:34). 


부요하나 지혜 없는 자는 멸망할 짐승과 같습니다. 지혜는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을 가릅니다. 존귀와 멸망의 길을 가릅니다. 자기를 구원하지 못할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를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 재물을 사용하십시오. 수고로이 일하여 얻은 열매로 하늘을 사십시오. 교회를 세우십시오.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십시오. 이것이 지혜의 길이요, 존귀한 사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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