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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통해 본 합당한 예배 1


설교제목/ 십계명과 예배
설교본문/ 출 20:1-2; 신 7:5-8; 331장


17세기에 영국 런던에서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칩니다. 두 번째 부분의 내용,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십계명, 은혜의 방법, 그리고 주기도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첫 번째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가운데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낭독하고 듣는 십계명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최근 예배에 관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예배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지금부터 십계명과 예배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약과 예배


십계명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들, 그것도 장자로 입양하셨습니다. 노예로 고생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산 아래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것이 시내 산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서입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모세가 언약서를 기록해 백성에게 읽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모든 언약서에 쓰인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단과 백성들에게 언약의 피를 뿌리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남자 성인만 60만 명이 넘는 큰 무리들이 시내 산 광야에서 다 모여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의 순간이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의 만남이 일어나는 언약 체결의 순간입니다. 감격스런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귀며 교제하는 시간, 그 시간이 신약시대에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언약서를 읽었던 것처럼, 우리가 예배 할 때 언약서를 읽는 것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3,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교제했던 것처럼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약과 십계명


그러면 이 언약서가 무엇일까요? 이 언약서는 십계명으로 요약됩니다(1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시고 지킬 것을 요구하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십계명은 돌판 두 개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한 돌 판에는 1-4계명이 적혀 있고, 다른 돌 판에는 5-10계명이 새겨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전반부는 하나님에 관한 것이고 후반부는 이웃, 곧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맺을 때의 관습에 의하면 똑 같은 문서를 두 개 만들었다고 합니다. 각각 상대방이 하나씩 보관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받은 두 돌 판에도 한 돌에 1-10계명이 모두 새겨진 것을, 또 다른 돌 판에도 1-10계명이 새겨진 동일한 것을 주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렇다 저렇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하나님을 위해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십계명이 언약문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보관하는 궤를 ‘언약궤’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보관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약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관계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십계명이 언약의 계명, 혹은 언약의 말씀이라는 말은, 곧 관계를 위한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언약이 바로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도구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십계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십계명에는 언약적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습니다. 언약에는 ‘약속’과 ‘요구’가 있는데, 십계명을 보면 약속과 요구가 모두 등장합니다. 

십계명을 말할 때 우리는 1계명부터 10계명까지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서론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론이 없는 십계명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서론이 없는 십계명도 십계명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십계명의 서론입니다. 그런데 옛날 성경책에는 이 십계명이 인쇄되어 있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하고는 “......”으로 중간 부분을 생략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서론이 좀 길다고 생각했는지 중간 내용을 없애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 한국 교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십계명의 의미를 잘 가르쳤으면 출판하는 사람들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최근에 나온 성경책에는 그것이 고쳐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십계명의 머리말에 해당되는 서론이 아주 작은 글씨로 처리 되었습니다. 글씨가 작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점을 찍고 중간을 생략하지 않았으니 좋아졌다고 감사해야 하겠지요. 

자 그럼 자세히 봅시다. 십계명의 서론을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언약에는 반드시 ‘나와 너’의 상대자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나는 너를”이라는 두 상대자가 등장합니다. ‘나’는 하나님이시고, ‘너’는 이스라엘입니다. (종주권 언약에서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복을 주시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십계명의 서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하던 곳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복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복을 공짜로 덥석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는......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자 하나님, 온 우주의 통치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들로 입양하셔서 장자의 자리에 앉히고 먹여주시고, 입혀 주시고, 살 곳을 마련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십계명의 서론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합니다. 다음으로 1-10계명은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고, 5-10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요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약속도 하시고 요구도 하시며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통해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사귀기를 원하셨습니다. 참된 교제를 하기 원하셨던 것이지요.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골탕 먹이거나 멍에를 씌워 고생 시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요구는 관계와 사귐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관해 배우려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예배에 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이 없는 바빌론 포로 시절부터 가졌던 회당 예배로부터 유래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을 맺은 우리는 새로운 의미로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의 언약을 보면 새언약의 시대에 어떻게 예배를 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구약성경에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이 사귀며 교제한 내용이 매우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대표선수인 십계명을 하나 씩 살펴보면서 예배에 관해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십계명(예배)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닌, 결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가 십계명을 어디에서 받았습니까? 그 시점이 언제입니까? 출애굽 전입니까? 출애굽 후입니까? 이집트에서 입니까? 시내 산입니까? 그렇습니다. 너무나 쉬운 질문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십계명을 출애굽 전이 아닌, 출애굽 후에, 이집트가 아닌 시내 산에서 받았습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며 받았습니다. 질문이 쉽다고 가볍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시점은 십계명의 의미를 결정하기 때문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만약 십계명을 이집트에서 주셨다면 그것은 구원의 조건이 됩니다. 십계명을 잘 지키면 구원해 주겠다는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요구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출애굽 하기 전에 주지 않고 그 후에 주셨습니다. 그것을 십계명 서문이 크게, 그리고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런 조건 없이 노예로 고생하던 상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복음입니다. 


‘나는 네가 십계명을 다 지키면 애굽 땅 종 된 집에서 인도하고 너의 하나님이 되게 해 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종교는 그렇게 요구합니다. ‘네가 공덕을 쌓으면 복을 받을 것이다. 시주를 500만원을 하면 부부의 이름을 평생 절 안에 모셔 줄 것이다. 그러면 너희 집안에 우환이 없고 복을 받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네가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 착하게 살면 저 생에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란다.’라고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샤마니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저런 조건을 만족시키면 저주가 사라질 것이다, 라던가 아니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는 미신도 그렇습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도 그런 이단들은 계속 있어 왔습니다. 로마 천주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면죄(벌)부를 돈을 주고 사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고 성지순례를 가던가, 아침 금식을 몇 년을 하면 죄를 용서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모두 거짓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려고 불러 구원해 주셨습니다. 구원하신 후에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 순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율법은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창조 때에도 있었습니다. 세상 처음부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여자가 에덴동산에서 뱀의 거짓말을 믿고 순종했을 때 그들은 첫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제 6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살 때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에 ‘너희는 내 율법을 지켜라’라고 명령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주는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다면 십계명이 구원의 조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교리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절대로 이집트를 탈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집트에 있으면서도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 살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다른 신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해 주시고 그 다음에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에게 십계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하셨으니, 자유와 기쁨과 사랑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감사해 지켜 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 십계명의 요구에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십계명을 잘 지키면 메시아가 오실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신 의미를 자기들 마음대로 곡해한 것입니다. 

마치 자식들이 순종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는 자식이기 때문에 순종하기 전에 먼저 자식을 사랑합니다. 조건적 사랑이 아닙니다. 자식이 불순종하고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도 부모는 자녀에게 밥도 주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고 옷도 마련해 줍니다. 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자식이 왜곡해 조건을 붙여 사랑하는 부모로 오해하는 어리석은 자식처럼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렇게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그들에게 메시아는 오직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필요 없거나 없애기 위해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예수님 때문에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곤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구원 받은 백성으로 다시 십계명을 바라봅니다. 자유로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요구를 바라봅니다. 그 요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고 복이라는 것을 아는, 은혜를 아는 아들딸의 자연스런 반응이 십계명의 요구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아는 성도는 십계명 낭독 시간이 두려움과 고통이 아니라, 사랑스런 아버지 하나님의 인자하신 목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종종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으면 큰 벌을 받을 것 같아 두려워 벌벌 떨며 억지로 교회에 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혹시 예배를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두려움과 막연한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조건이 아닙니다. 예배는 구원 받은 백성이 기쁨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약속과 요구를 듣고 아멘으로 응답하고 반응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언약을 맺으시고 약속을 주시며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사귐과 교제를 하는 시간입니다. 이 예배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부담스럽고 짐이 되고 억지가 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유 함으로,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십계명(예배)을(를) 어떻게 지켜(해)야 하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매 주일 설교 가운데 십계명 낭독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매 주 같은 내용을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내용을 왜 우리에게 자꾸만 읽어주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오늘 그 의미를 배워봅시다. 십계명의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아봅시다. 

이제 다시 3,500년 전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노예시절과 시내 산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시고 십계명을 주시며 언약을 맺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가 없고, 착하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신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을 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도 알 수 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해 주시고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신명기 7장 5-8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5-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로 입양해 주시기로 택하셔서 맹세하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특별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곧 구원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의 요구인 십계명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이스라엘 백성은 사랑으로 십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사랑이 없는 십계명 준수는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비참한 처지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각자 부름을 받은 때와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하나님 사랑 때문에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같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십계명을 사랑으로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7-40).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킬 때에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행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지키기가 너무 힘들어요!’‘정말 재미없어요!’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억지로 귀찮은 마음으로 십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고 자신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고 방법입니다. 십계명은 선하고 복된 것이지 구속이나 걸림돌이 아닙니다.


예배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예배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복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 주신 한 없이 크신 사랑을 묵상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예배에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누가 십계명(예배)을 지켜(해)야 하나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계명을 지켜야 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갔고 언약 백성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물론 개종한 사람들이나 종의 신분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더불어 사는 사람들도 언약의 표인 할례를 받고 언약의 백성에게 속하며 그들도 십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남자에게만 언약의 표인 할례를 행했지만, 여자들도 십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남자에게 대표로 언약의 표시를 할례라는 방식으로 한 것입니다. 할례의 표시를 하지 않은 여자에게도 십계명을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 관계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이 십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예배할 수 있습니다. 언약 관계에 들어온 사람은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도자 예배’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구도자를 위한 예배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를 위해 구도자를 위한 예배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그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는 말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는 구원 받은 백성의 특권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범위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지켜야 할 의무가 바로 십계명이듯이 예배도 동일합니다. 


  마지막으로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들은 언약의 백성에 속할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들도 언약의 백성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실 때 언약을 맺는 본인들과 그 자손들에게도 복을 약속하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십계명을 받았을 때 자신들과만 언약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들과 그리고 그들 후손(자손들)과도 맺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갱신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우리와 함께 여기 서 있는 자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 까지 이니”(신 29:10-15)


이 말씀에 의하면 언약의 백성에 아이들도 포함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고 오는 다음 세대도 포함합니다. 의미에서 교회의 미래인 아이들도 언약의 백성에 속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언약의 자녀인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가는 것으로 예배에 참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일학교’는 교회에서 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학교’일 뿐입니다. 주일에 하는 학교! 초기 주일학교 상황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글자를 가르쳤습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자기 나라 말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긴 하지만, 그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을 따로 분리해서 주일학교에 보내고 어른들은 조용하고 편안하게 예배합니다. 이것은 언약의 백성임을 예배 가운데 경험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도 언약의 자녀임을 알고 어른들과 함께 예배합니다. 다소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수 있지만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예배하는 것은 특권이며 복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이 어른과 함께 예배하는 것은 귀하고 소중합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과 요구를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부지런히 가르쳐야’합니다(신 6:7). 부모는 언약의 자녀에게 언약의 하나님에 대해 잘 가르쳐야 합니다.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도 부지런히, 그리고 반복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들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전에 이집트에서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맺으셨으며, 하나님의 약속과 요구가 무엇이며,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을 어떻게 보호해 주셨는지를 가르쳤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와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계속 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 하지마!’, ‘저것 하지마!’라고만 하면 다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감사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언약서 십계명에 나타난 원리를 배우며 예배가 어떤 의미가 있는 지 배웠습니다. 예배는 구원 받은 자가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며, 사랑으로 예배해야 하며, 언약에 속한 자면 누구나 예배할 수 있는 데 특별히 어린 아이들도 함께 예배하는 것이 언약의 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언약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충분히 잘 가르쳐야 함도 배웠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언약을 우리의 예배 가운데 풍성하게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1.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1년 전체 설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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