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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1

예배하는 교회의 일상생활에서의 승리 (대하 20:1-30)


우리는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삶에서 찬송하며 승리합니다.

우리에게 전쟁터와 같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갈등이 힘듭니다. 그것뿐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생명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생명이 걸린 전쟁과 같이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아십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사밧 왕 때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많은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여서 기도하며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찬양대를 앞세우고 나갔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1. 환난가운데 교회로 모여 예배(1-19절)

1) 외국의 침략과 금식의 선포 (1-4절)

1) 다윗 왕조 6대왕 여호사밧 왕(주전 9세기) 예배를 회복한 왕입니다. 우상 산당들을 다 제거했습니다. 레위인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율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서 예배와 생활에 관한 문제를 판단하게 했습니다(역대하 17,19장).

2) “그 후에”적들이 침략했습니다. 예배를 회복한 후에 일어난 적들이 침략했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백성을 연단하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죄 때문이 아니라 연단하시기 위해 고난과 어려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과 에돔 사람이 연합하여 유다를 치러 왔습니다. 유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강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들이 동쪽 엔게디까지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두려우니까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까? 왕은 기도했습니다. 전국에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회중이 다 성전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구약 교회가 모였습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다 모였습니다.

-➝ 그리스도인도 이런 위기를 당하면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다른 것은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안고 기도합니다. 함께 교회로 모여 예배합니다.

오늘도 인생의 두려움을 안고 예배로 나오신 성도님, 잘 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있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지만 교회에 함께 모인 것이 믿음입니다. 


2) 기도(5-13절)

 1) 왕은 교회 가운데 서서 이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 고백하며 언약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첫째, 6절에 하나님은 모든 나라를 다스리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그 후손에게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신 분입니다.

셋째, 이 성전에 당신의 이름을 주셨고, 이 집과 주님 앞에 서서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의지하여 성전에서 부르짖습니다.

 ➝ 우리도 이렇게 고백하며 기도합시다.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창조주로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도록 필요한 집과 직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 하나님을 고백하고 이제 간구합니다. 오래 전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나올 때 모압, 암몬, 에돔을  침략하지 않고 지났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그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을 주님의 기업에서 쫓아내려 합니다.

11절에, “주(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기업”이라는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유다 땅은 백성이 사는 땅이지만,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하나님의 땅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당신의 기업을 정복하려 합니다. 내 땅을 침략하러 왔지만 당신의 땅을 침략하러 왔습니다.”당신이 심판해 주소서. 

➝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얻은 우리 성도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업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우리의 집도, 내 소유이건, 전세이건 월세이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업”입니다. 여기서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기업이 흔들립니다. 도와 주소서.”

이 땅의 행복이나 자기 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정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이것은 하나님의 기업입니다”고 고백하며 기도하십시오. 이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일하는 목표의식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이 

3) 13절에, 유다 사람들이 아내와 자녀와 어린아이들까지 간절히 기도하며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 우리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이렇게 예배합니다.


3) 말씀선포(14-17절)

1)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의 성령님께서 한 레위인 위에 “교회 가운데”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15절에 말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이 전쟁은 하나님이 총사령관이 되셔서 싸웁니다. 두려움이 있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두려움을 누릅니다.

 ➝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2) 17절에 “이 전쟁에서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고하면서도 “맞서라. 맞서라”하십니다. “너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 여호와의 승리를 보라. 두려워 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그들 앞으로 나가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신다”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전쟁터로 나가야 합니다. 적들과 맞서야 합니다. 사람이 싸우는 가운데 여호와께서 함께 하십니다. 사람이 싸우는 가운데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 오늘 여러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나와 기도하는 우리 성도님들, 우리도 예배 때 마다 말씀을 달라고 먼저 기도합니다. 성령님께서 목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를 볼 것입니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 곳으로 나가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한다”이 약속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 나가라, 두려워 하지 말고. 직장이 힘들어도 사업이 잘 안되는 것 같아도 나가라. 직장을 구하라. 공부하라. 모든 삶,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합니다. 바로 이 곳에서 성령님 안에서 기뻐하며 의롭게 사비다.


4) 찬양(18-19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격려하고 약속하 실 때,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행해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레위인들은 일어나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찬양하되, 큰 소리로 위로 향했습니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들은 우리들도 엎드려 경배합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의 삶의 현장으로 가라. 굳게 서리. 내가 승리하는 것을 보리라.”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냥 있으면 되겠습니까? 마음으로, 아멘 하십시오. 우리 영혼으로 엎드려 경배합시다. 찬양합시다.

지금 설교가 끝난 다음에 우리도 감사 찬양합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하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십니다. 


2. 찬양하며 전쟁(20-30절)

1) 말씀 선포(20절)

1) 다음날 전쟁터로 나가기 위해 모였습니다.  왕은 서서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믿으십시오. 굳게 서십시오. 그분의 선지자를 믿으십시오. 형통하십시오.”원문에 아멘이라는 말이 세번 반복됩니다. 믿으십시오(아만). 굳게 서십시오(아만). 그분의 선지자를 믿으십시오(아만). 형통하십시오.”

➝ 내일 영적인 전쟁터로 나갈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굳게 설 것입니다. 그 때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은 지금은 목사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들은 말씀을 믿으십시오. 가정에서도 믿고 굳게 서십시오. 내일 학교로, 직장으로 나갈 때 삼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을 이기고 굳게 설 것입니다. 두려이 올라 오지만 믿음으로 누르십시오. 굳게 서십시오.

그러면 형통할 것입니다. 전쟁에 이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가진 선한 소원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 특히 여러분 중 지도자는 말씀으로 격려하십니다. 남편은 아내를 말씀으로 격려하십시오. 자녀에게, 부하직원에게,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라. 굳게 서자.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인도하신다.”  두렵다고 표시내지 마십시오. 이 내 느낌대로 표정짓지 마십시오. 믿음을 따라 표정을 지으십시오. 느낌을 따라 말하지 마십시오. 약속을 믿고 말하십니다. 여러분이 책임 진 사람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말하십시오. “믿으라. 말씀 받으라. 형통하리라.”성도님들끼리도 힘든 일을 서로 나누지만, 마지막 말은 항상 이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음시다 . 믿고 굳게 섭시다. 형통할 것입니다.

이번 한주 매일 아침마다 이 말씀을 자기에게 선포하십시오. 가족에서 선포하시면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2) 찬양이라는 작전계획

1) 믿음을 새롭게 한 다음에 21절, “백성과 의논하고”작전계획을 세웠습니다. 적을 이길 작전계획이 무엇이었습니까? 찬양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이 짧은 찬양 시편 곳곳에 나온다. 시편 전체도 찬양했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던 찬양이 군가가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찬양하며 군대의 앞에서 행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백성을 위해 싸우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우리는 다음 한주, 매일 매일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일을 빠뜨리지 마십시오.  오늘 할 일: “찬양”이라고 넣어십시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찬송한 대로 매일 찬송하십시오. 찬양은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느낌과 관계없이 실제로 나와 함께 계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삼위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분의 인자(무조건적 사랑)이 영원하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것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우리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 어디서든지 우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를 자비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가정기도문에 나온 찬송을 하나 합시다.  콧노래로 찬양하며 하루를 지냅시다. 하루 종일 우리의 마음에 찬양이 있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동안 지내 보고 모든 일이 잘 되게 해 주시면 저녁에 찬양할께요”그러지 마십시오. “오늘도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3) 찬양가운데 여호와의 싸우심과 승리(22-26절)

노래와 찬송을 시작할 때, 여호와께서 적군들 뒤에 복병을 주셨습니다. 하늘의 군대가 적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적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전쟁터에 갔을 때 적들의 시체들이 골짜기에 널려 있었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전리품을 모으는 데만 3일이 걸렸습니다. 4일째 되는 날 “무리가 모였습니다”교회가 모였습니다.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그 골짜기를 “축복”의 골짜기로 불렀습니다. 송축과 축복은 같은 단어입니다. 그 복을 주신 하나님을 복되다고 송축했습니다.  복주실 것을 믿고 전쟁터에서 찬양한 교회에 하나님은 복주셨습니다. 교회는 다시 복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3) 찬양하며 성전에 옴, 평안과 안식을 누림 (27-30)

1) 그들은 여호와께서 주신 즐거움으로 즐거워하며 성전으로 돌아 왔습니다. 왕이 앞장섰습니다. 제사장은 나팔을 불고  비파와 수금과 나팔로 찬양하며 돌아 왔습니다. 

4일 전 바로 이 성전에서 금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나가서 굳게 서고 형통했습니다. 바로 이 성전에서 다시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그 뒤로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우셨다는 말을 들은 주위 나라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 우리도 하루를 끝내고 찬양하며 집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저녁에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기 바랍니다.


3. 보통의 삶에서 찬양 가운데 승리

1) 계속 되는 성전 예배와 삶의 예배

1) 이 전쟁이 끝난 후, 전처럼 성전에서는 하나님께서 정한 대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백성들은 시간 날 때 마다 아침 저녁 번제 시간에 성전 바깥 뜰에 와서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앞으로도 전쟁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쟁할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브라카 전쟁과 똑 같이 유다의 군대를 위해 싸우시지는 않습니다. 대개는 유다의 군대는 활과 창과 칼들 들고 직접 싸워야 했습니다. 부상하고 전사하는 군인들도 나올 것입니다. 그런 순간에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셔서 함께 싸워 주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리고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찬양하며 성을 돌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성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브카카 전투처럼 적들을 향해 행진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생명을 무릅쓰고 하는 전투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싸움의 방법은 달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교회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찬양합니다. 전쟁터에서 그 말씀을 선포하고 찬양하며 전쟁합니다. 찬양하며 다시 성전에 교회로 모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인정하며 싸워야 했습니다.

2) 교회에서 예배하고 삶에서 예배하며 승리

1) 우리 주 예수님께서 처음 교회를 세웠을 때는 브라카 전투처럼 기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 전파를 방해할 때 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할 때 하늘이 흔들렸습니다(사도행전 4:31). 사도들이 복음 전파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치료했습니다. 

지금은 예배할 때 교회당이 흔들리는 표시는 없습니다. 기도할 때 즉시 병이 치료되는 일은 보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2) 교회가 예배하고, 우리가 흩으져 찬송하며 예배의 자세로 살아갈 때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승리를 주시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병가운데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브리서 13:5,6, 신약 368)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신약 176)

3) 이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 주일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듣고 찬양하고 예배합시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은 실패합니다. 매일 아침 예배때 받은 말씀으로 개인적으로 읽은 말씀으로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합시다.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세로 하루를 지냅시다. 찬양하고 감사하며 주일 예배로 모입시다. 모여서 찬양합시다.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인생이지만 믿음으로 굳게 서서 형통하는 삶이 이어 지기를 축복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분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 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3-6).

역대하 29:20-36

사역

사역

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21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22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26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27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28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29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31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32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 마리요 숫양이 백 마리요 어린 양이 이백 마리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33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그 성의 지도자들을 모아 여호와의 집올라갔다.

21 그리고 수송아지 7 마리와 숫양 7마리와 어린 양 7마리와 숫염소 7마리를 왕국과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들여왔다. 

그리고 그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여호와의 제단올려드리라고 말했다.

22 이에 그들이 수소들을 잡았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렸다.

또 그들이 숫양들을 잡았고, 그들이 그 피를 제단에 뿌렸다. 

또 그들이 어린 양들을 잡았고, 그들은 그 피를 제단에 뿌렸다.

23 그리고 속죄제물  숫염소들을 왕과 교회 앞으로 가까

이 오게 했고, 

그들은 그 위에 안수했다.

24 제사장들이 피를 제단을 향해 속죄제로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했다. 

왜냐하면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왕이 번제속죄제말했기 때문이었다.

25 그가 레위인들을 여호와의 집에서 심벌즈 하프로, 라이어를 잡고 서게했다.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의 명령대로.

왜냐하면 여호와  으로, 그 명령은, 그 분의 선지자들의 으로.

26 레위인들은 다윗의 악기들을, 제사장들은 나팔들을 잡고 섰다.

27 히스기야가 제단에 번제올리라고 말했다. 번제를 시작할 때에 여호와의 시와 나팔을,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들의 을 따라(곁들여서) 시작했다.

28 온 교회경배/예배했고,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었다. 이 모두는 번제를 마치기까지 계속했다.

29 올려 드리는 것을 마쳤을 때,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자들(발견된 자들)이 엎드려 경배/예배했다.

30 히스기야 왕과 지도자들이 레위사람에게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말했다. 

그들이 기쁨으로 찬송했고,  몸을 굽혀 경배/예배했다.

31 그리고 히스기야가 응답하여 말했다.

“이제 여러분이 여호와께 위임하였습니다(말라 야드:  자신을 드렸다). 가까이 오십시오. 제물감사제물여호와의 집으로 들여오십시오.”

그러자 교회제물감사제물을 들여왔다. 마음에 자원하는 각자는 번제물도.

32 교회가 들여온 번제물의 수는 수소 70마리, 숫양이 100마리,  어린 양 200마리였는데, 이 모두는 여호와번제물이었다.

33 거룩하게 구별한 것들은 소 600마리, 양 3,000마리였다.

34 다만 제사장이 부족하여 번제물들의 가죽을 다 벗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형제들인 레위인들이 보조했다-그 일을 마치기까지, 제사장들이 거룩하게 구별하기 까지. 왜냐하면 레위인들이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일에서 제사장들보다 마음이 올발랐다. 

35 또한 번제물이 많았던 것 외에도, 화목제물들의 기름과 번제물의 전제들(포도주제사)이 있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의 집에서 섬김이 확립되었다.

36 히스기야와 온 백성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확립하신 일때문에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그 일은 갑자기/빠르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구절 해설


<본문구조>

1. 왕과 지도자들이 올라 감

2. 속죄제

  1) 속죄제로 수송아지 7, 수양 7, 어린양 7, 수염소 7-왕국, 성소, 유대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21

  2) 수소, 수양, 어린양들 잡았고, 제사장이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림, 22

  3) 속죄제물 숫염소를 왕과 교회가 안수, 제사장이 피를 제단향해 드려 속죄, 23,24

  - 온 이스라엘을 위해 왕이 속죄제, 번제를 말했기 때문, 24

* 왜 속죄제 태우는 것이 생략? 오직 피뿌림만 말함. 


2. 번제

   1) 레위인 찬양대와 제사장 나팔 준비 준비, 25, 26절

   2) 번제를 시작할 때, 시와 나팔을 시작, 27

       온백성 경배

      노래하는 자, 나팔부는 자는 번제 마치기 까지 계속, 28

   3) 번제 올리기를 마쳤을 때,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경배, 29

   4) 히스기야 왕가 지도자들이 레위사람에게 찬송하라고 말했고, 그들이 기쁨으로 찬송, 경배, 30 

 

3. 화목제

   1) 히스기야 백성에게 “여러분은 위임,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집으로 들어 오십시오”, 31-33

     - 교회가, 제물, 감사제물, 자원의 번제물을 들여 옴

     - 번제물: 수소 70, 숫양 100, 어린양 200

     - 거룩하게 구별한 것: 소 700, 양 3,000

   2) 번제물 껍질 벗기는 일에 제사장 부족 레위인들이 보조-그 일 마칠 때 제사장이 구별하기 까지, 34

      - 제사장 보다 레위인이 옳았다.

   3) 번제물이 많음, 화목제의 기름, 번제물의 전제들, 35절.


4. 여호와의 집에서 섬김이 확립, 35, 36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확립하신 것 때문에, 왕과 백성이 기뻐함.

  1. 갑자기 일어난 것 때문


대지: 히스기야가 성전 예배를 회복하며 기뻐했다.

목적: 히스기야갸 성전예배를  회하며 기뻐했다는 것을 통해 계속 예배를 회복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청중상황: 포로후기

  1)  계속되는 우상 숭배의 유혹

  계속 성전을 정결케 하며 예배 개혁의 필요성 

  성전 예배가 형식화, 무미 건조, 그래서 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위험

  2) 그들이 알던 솔로몬 시대의 성전예배의 장엄함에 비해 초라한 예배를 가볍게 할 우려


성도 상황: 예배의 감동이 없다고 말한다. 화상 예배도 편하다고 생각한다.

   기쁨은 어디서? 인터넷 서칭, 영화보기 등. 그런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 기쁨, 바로 예배에서 나온다. 예배가 기쁨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

대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예배를 회복할 때 참 기쁨이 있다.

목적: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예배를 회복할 때 참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서 참 예배를 회복하도록.


1. 히스기야의 예배의 회복과 그리스도

2.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의 회복과 기쁨

3. 예배회복을 위해 할 일

z


Hezekiah “opened the doors of the temple” (29:3). An open door is an invitation—in this case, an invitation to encounter the divine presence through corporate worship. This invitation is supremely valuable because it permits human beings to fulfill their purpose as creatures made in God’s image, reflecting the praise of his glory (Isa. 43:7). What’s more, worship of God is the integrating principle of human life. It removes the artificial “sacred-versus-secular”dichotomy usually applied to time and vocation. Worship also brings proper perspective to the issue of theodicy (i.e., the problem of evil in the world), for it is only after the psalmist enters the sanctuary that he understands why the wicked seem to prosper while the righteous seem to suffer unjustly (cf. Ps. 73:12–17). It is the experience of worship that assures the psalmist of the ultimate vindication of the righteous.

“Now I intend to make a covenant with the Lord” (29:10). Hezekiah’s declaration to make a covenant with the Lord is more than political rhetoric or religious showmanship. The expression “to make a covenant”takes the people back to their roots, back to “first things”—the Israelites’experience at Mount Sinai. This reflection on “first things”is important both for an individual and for a nation, because it permits a recentering of priorities and a refocusing of perspective. No doubt, the Chronicler believes such an occasion motivating a recentering and refocusing of one’s life is essential for his own audience.

The term covenant is a callout of sorts because it signifies the reciprocal obligations of the parties involved in sealing the agreement. Covenant renewal was an essential feature of Israelite religious practice because it is the covenant itself that establishes direct relationship with God. The act of will on Hezekiah’s part (“I intend”) is a reminder of the importance of human responsibility in maintaining that relationship with God. Each generation must renew or personalize and revitalize that relationship with God (cf. Josh. 24:15).



20절, 백성이 성전에 올라가는 것: 번제로 자신을 드리는 것과 유사

21절, 속죄제물, 사람의 회개나 개혁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용서를 통해 가능, M Henry

21절, 수송아지 7, 수양 7, 양 7, 숫염소 7마리.

  - 제사장 흠없는 수송아지 레 4:3

-모든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은 정해 짐- 레 4:13,14     민 15:24,25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 수송아지에 안수 

 족장이 부지중 죄 지었다가 깨닫으면,   흠없는 수염소, 안수 레 4:23 –

평민, 흠없는 암염소 레 4:27

번제-소,양, 염소.

22절, 짐승을 잡는 것 누구?


29:22 In the priestly laws in Leviticus (Lev 1:5) the one who brought the offerings killed the animal, but the priest sprinkled the blood. If this was the procedure here, the king and the officials of v. 20 are the subject of the impersonal “they”of vv. 21–22, but the text is not explicit.

23절, 수염소에 안수

원래 대속죄일(레 16:15)에 염소 한 마리로만 함. 그러나 죄가 너무 컸기에 7마리나. 

왕과 백성

29:23 The goats for the sin offering were brought before the king and the assembly, who laid their hands on them. This was done also for the burnt offering (Lev 1:4) as an indication of the identification of the offerer (the king and the assembly) with the victim (the he-goats).


The laying on of hands on the goat sacrifices calls to mind the Day of Atonement ceremony, the national day of purification for God’s people (2 Chron. 29:23; cf. Lev. 16). The combination of sin and burnt offerings is comprehensive in the sense that every sin is to be sacrificially atoned for so as to remove all forms of evil from Hezekiah’s realm. The multiple sin offerings are also inclusive in the sense that they atone for the sins of “all Israel”(2 Chron. 29:24).


 29:24 In this case it is clear that the priests both slaughtered the animals (cf. v. 22) and presented their blood on the altar for a sin offering. This procedure was followed on the annual day of atonement when the high priest, representing all Israel, killed the goat of the sin offering (Lev 16:15). The king had ordered on this occasion that the burnt offering and the sin offering were to be offered for “all Israel.”This fact is stressed by repetition and also by the word order of the final clause (lit., “because for all Israel the king had ordered …”). Hezekiah (and the Chronicler) viewed the occasion as referring to the total entity “Israel,”that is, Judah plus the people of the old Northern Kingdom, constituting the one people of God.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속죄, M. Henry

-유다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죄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물 요일 2;1,2

26절, 

the goat was offered as a sin offering whereas the other animals were not. In the burnt offering, everything was given over to God; in the others (the thank or peace offerings), some parts (depending on the nature of the offering) were consumed by the fire whereas others were shared by the worshiper and God or between the worshiper and others such as the family, the clerics, and the community at large, especially the poor.


26찬양

죄에 대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찬양, M. Henry


28-30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

예배의 장소에 몸이 있어도, 마음으로 찬양하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 M. Henry

It is clear to all that Yahweh is King in Israel, not Hezekiah, for he too bows before the Lord with the assembly (2 Chron. 29:29

31-35

It is ordinarily used for priestly investiture (13:9), but here it applies to the whole assembly and not just to the priests. The same idiom is used in this wider sense in 1 Chr 29:5. The word for “sacrifices”here (zĕbāḥîm) probably refers to fellowship offerings in general (v. 35) of which thank offerings form a subgroup (Lev 7:11–18). The responsiveness of the people recalls events at the time of Moses, David, and Solomon (Exod 36:6–7; 1 Chr 29:1, 5–9; 2 Chr 7:7). Here was a pattern to be followed by the Chronicler’s postexilic audience.

It is clear to all that Yahweh is King in Israel, not Hezekiah, for he too bows before the Lord with the assembly (2 Chron. 29:29 A variety of sacrifices is performed during the last stage of the consecration ceremony: burnt offerings, symbolizing the selfless worship of God, since the entire animal is consumed by fire (29:32); fellowship or peace offerings, symbolizing an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since the worshiper shares a portion of the sacrifice in a ritual meal (29:35; cf. Lev. 3); and drink offerings or libations of oil or wine poured onto the ground or sacred objects, in thanksgiving for God’s goodness (2 Chron. 29:35; cf. Lev. 23:13, 18, 37).

Next, however, it was only right and proper to offer up still more sacrifices, this time offerings of thanks (sometimes known as “peace offerings”(שְׁלָמִים) in which the people themselves participated. These were not designed to bring about harmony and reconciliation with God but to celebrate the fact that this state existed


34절, 제사장들이 마음이 올바르지 못함.

The thank offerings amounted to six hundred bulls and 3,000 sheep and goats, a number so large that the priests alone could not accommodate them and had to call upon the Levites for assistance (33–34a). The problem was not a lack of priests but a shortage of those qualified because of so few who had obeyed Hezekiah with regard to their consecration (cf. vv. 4–5). Contrary to normal procedure, then, non-Aaronic Levites stepped in to fill the void.

29:34 According to Leviticus 1, the offerer had to skin (flay) the beast, not the priest. Apparently the large numbers of offerings precluded having the courtyard filled with laypeople doing this work. (공간부족)


모세의 법에는 번제물을 잡고 가죽 벗기는 것은 제물 드리는 자의 임무,

그러나이곳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임무로 말함 다윗은 다르게 제정(대상 23:28,32)

The Chronicler commends the spirit of the Levites in assisting the priests in flaying the animals for sacrifice (29:34a). Apparently a spirit of apathy still plagues the priesthood, since some are slow to respond to Hezekiah’s reforms (29:34b). Obviously the reign of Ahaz has cast a long shadow over temple worship and the priestly corps who serve there. According to Leviticus 1:6, the worshiper was to skin the sacrificial animal, but the Chronicler reports that the priests and Levites do all the flaying for the burnt offerings (2 Chron. 29:34). Rather than contradicting the Mosaic code, it is possible that skinning the sacrificial animals is among the additional duties David assigned to the Levites when he reorganized Israelite worship (cf. 1 Chron. 23:28, 32).


-빨리 이루어짐: 히스기야의 취임 첫 해에


34절.

제사장들은 우상 숭배로 부정, 혹은 타성에 젖어서 성전문을 여는 것도 게으름, 왕이 그렇게 빨리 할 것을 모름. 

레위인이 벗김- 레위기 1:5에는 가져온 사람이 잡아야 함. 


36절, 기뻐함

새 경건으로 기뻐함. 

36절,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해 확립하신 일이기 때문에 기뻐함.

공직자와 목사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일을 하게 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라.

-특별히 빨리리 이루어 진 일이므로 찬양.

“이것은 주님이 하셨으니, 그것이 놀랍도다”(찬송가 구절인 듯). M.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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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절, 하자크(피엘)- 역대상하에 12회 중, 성전-6, 성벽 등 국방-4, 제사장 보조-1, 왕이 제사장 격려-1

수리하다는 뜻으로 역대상하에는 많이

대상 26:27 성전수리

대하 11:11,국방   12  도시    17 나라

24:5,12 성전수리

26:9 성벽 강화

29:3 성전 문 수리

34 레위인들이 제사장들 보조

34:8,10 성전수리

35:2 왕이 제사장에게 직무를 맡기고 격려하여(일종의 보충한다는 의미) 여호와의 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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