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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설교 원고

주제: 합당한 예배, 세상의 소망

소주제: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본문 히 9:1~5(참고. 1~12절)

제목 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당한 예배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1)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2)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3)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4)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5)”(히 9:1~5)



<서론>

히브리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 대조합니다. 옛 언약은 새 언약의 그림자입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의 성취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 백성들은 이제 다시 옛 언약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자 희생 제물이십니다. 예수님은 옛 언약의 중보자인 대제사장보다 더 큰 중보자이십니다. 그분은 옛 언약의 희생 제물인 짐승보다 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세례받아 새 언약 백성이 된 사람, 즉 교회의 일원이 된 사람은 이제 옛 언약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들의 봉사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짐승의 피로 드리는 희생 제사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새 언약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once-for-all)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새 언약 백성들은 레위 지파 제사장도 없고, 희생 제사도 없으니 자기 마음대로 예배해도 될까요? 아닙니다. 옛 언약은 그림자요 새 언약은 성취이지만, 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약시대 예배와 신약시대 예배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정하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방편으로 예배하게 정하셨다는 점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장하신 예배를 통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없는 하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내용을 다룹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할 설교의 주제는 이것입니다.


주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예배함으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대지:

1. 합당한 예배의 근거: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예배합니다.

2. 합당한 예배의 수단: 

우리는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예배합니다.

3. 합당한 예배의 신비: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1. 합당한 예배의 근거: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예배합니다.


1절은 모세 당대의 성막에서 드린 예배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여기서 “섬기는 예법”이라는 표현은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 어찌 보면, 마치 유교 문화의 관습 같은 어감이 있습니다. 이 어구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예전의 규례’ 또는 ‘예배의 규례’입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정해놓은 규정’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정한 관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미리 정해주신 규정, 그래서 꼭 이대로 해야 하는 ‘예배에 관한 규정’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배에 관한 질서와 규칙을 정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막을 통해 쉽게 이해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그 안에 둘 각종 기구의 치수를 정해주셨습니다. 그것들의 재료도 정해주셨습니다. 그 기구를 놓아둘 장소도 정해주셨습니다. 그 사용법도 정해주셨습니다. 누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제사해야 하는지도 정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정한 관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예전 규례(liturgical ordinance)’, ‘예배 규례’입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어마어마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공격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규례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 예배의 규칙을 정해주셨다. 그런데 왜 너희는 이를 어기느냐? 너희는 유다 지파 나사렛 예수를 대제사장이라고 하면서 레위 지파 제사장을 거절한다. 너희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 흘렸기 때문에 짐승의 피로 제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너희는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예전 규례’를 어긴다는 유대인들의 공격이 일리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이렇게 반박합니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8)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9)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10)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1)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2)”(8~12절)


그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모세가 쓴 율법과 모세 때 만든 성막 예배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주신 것이 맞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열리지 않은 때이다. 그래서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가 휘장으로 막혀 있었다. 이 성막은 장차 더 큰 장막에 대한 그림자이다.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더 위대한 대제사장이 오실 것에 대한 예고편이다. 더 위대한 대제사장이 오시면 하나님께서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오셔서 짐승의 피 대신 자신의 피로 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여셨다. 그분은 땅에 있는 성소가 아니라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그림자요 예고편인 성막 예배가 아니라 더 좋은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예배이다.”


이것을 알고 1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여기서 “개혁”이라는 단어는 ‘새로운 질서(new order)’, ‘개정(reformation)’, ‘개선(improvement)’이라는 뜻입니다. 신약 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 규례를 위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체가 왔으니 그림자와 모형으로 드리는 예배보다 더 좋은 예배, 개선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아계신 대제사장이 오셨고, 그분이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승천). 하늘과 땅의 질서가 새롭게 개편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들도 새 질서에 따라 예배해야 합니다. 구약의 그림자 예배, 예고편 예배 대신 개혁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배를 개혁하셨고,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짐승의 피로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것을 성취하셨으므로 이제 우리 마음대로 예배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레위 지파 제사장이 필요 없을 뿐, 우리에게는 영원히 살아계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성막과 솔로몬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이 필요 없을 뿐 지금도 우리에게는 성전이 필요합니다. 사람으로 건축되는 성전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예배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합니다. 우리는 사람-성전인 교회로 모여 예배합니다. 우리는 짐승의 피 대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구약과 신약은 외적인 모습이 다를 뿐 그 본질과 내용은 같습니다. 구약의 예배와 신약의 예배 역시 외적인 모습이 다를 뿐 그 본질과 내용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신약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것을 예배한다는 점입니다. 개혁된 예배를 드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본질과 내용은 같으나, 신약의 예배가 구약의 예배보다 더 진전된 예배이며 더 풍성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 예배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대속의 은혜로 예배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사람-성전으로 모여 예배합니다.

‘예배 규례’, ‘예전 규례’는 인간이 정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관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옛 언약의 예배 규례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마음대로 예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더 풍요롭고 더 진전된 예배를 드립니다. 개혁된 예배를 드립니다. 새 언약의 예배 질서에 따라 예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 예전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요소가 있습니다.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말씀에 정하신 규칙에 따라 예배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합당한 예배의 수단: 

우리는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예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예배하도록 정하셨습니까? 본문은 옛 언약의 성소인 성막의 구조와 그 안에 있는 성물들을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2)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3)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4)”(2~4절)


성막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동쪽 문을 통해 성막 안으로 들어서면 ‘뜰’이 있습니다. 이 뜰에는 놋으로 만든 제단과 물두멍(놋대야)이 있습니다. 뜰에서 한 칸 더 안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 방이 있는데, ‘성소’입니다. 성소에서 다시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두 번째 방이 있는데, ‘지성소’입니다.

성소에는 세 가지 성물이 있습니다. 금 향단, 정금 등잔대, 그리고 진설병을 올려둔 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4절에 “금 향로”를 향로로 볼 수도 있으나, 이를 직역하면 ‘금 향단’입니다. 히브리서가 금 향단을 성소가 아닌 지성소에 있다고 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향단의 특징을 알면 이해됩니다. 성소에 들어서서 지성소를 바라보고 서면 왼쪽(남쪽)에는 등잔대가 있고, 오른쪽(북쪽)에는 진설병 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 즉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 바로 앞에 금 향단이 있습니다. 향단에는 짐승을 올려두지 않고 향을 피웁니다. 이 향은 제사장의 중보 기도를 의미하는데, 이 향이 휘장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여호와께 아름다운 향기가 됩니다. 어떤 때는 이 향을 대제사장이 직접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기도 합니다(레 16:12~13). 이 때문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바로 앞에 있는 향단은 성소에 있으나, 지성소와 연결됩니다.

성소에 있는 이 세 가지 성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보자(제사장)를 통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첫째, 정금으로 만든 등잔대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시 119:105).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빛으로 그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둘째, 진설병 상은 성례, 특히 성찬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습니다. 성소의 왼쪽과 오른쪽에 말씀과 성례가 있습니다. 셋째, 향단은 중보자의 기도를 의미합니다(참고. 시 141:2; 눅 1:8~10; 계 5:8; 8:3~4). 제사장은 말씀과 성례를 지나 금 향단에 기도의 향을 사릅니다. 

그러면 제일 안쪽 방인 지성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여호와의 보좌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성물이 있습니다. 십계명을 기록한 “언약의 돌판들”이 있습니다.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세 가지는 성소에 있는 세 가지 성물과 그 의미가 연결됩니다.

첫째, 언약의 돌판들은 말씀을 의미하며, 성소의 등잔대와 그 의미가 연결됩니다. 둘째,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는 성례 특히 성찬을 의미하며, 성소의 진설병 상과 그 의미가 연결됩니다. 셋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중보자의 기도를 의미하며, 성소의 금 향단과 그 의미가 연결됩니다.

성소에 놓인 세 가지 성물, 지성소의 언약궤 안에 있는 세 가지 성물들을 요약하면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은혜의 방편’입니다. 장로교회는 이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고 이렇게 고백해왔습니다.


“문: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전달하시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방편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교회에 그분의 중보의 은덕을 전달하는 외적이고 통상적인 방편들은 그분의 모든 규례들,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입니다. 이 모든 것은 피택자들이 구원을 받는 데 효력이 있게 합니다.”(소교리 제88문답; 참고. 대교리 제154문답)


우리는 어떻게 예배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예전 규례, 예배 규례를 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은혜의 방편을 통해 예배하고, 은혜의 방편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우리와 교제하시고, 은혜 주십니다. 무엇을 통해 그렇게 하십니까?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말씀(성경 봉독과 설교)을 통해, 성례를 통해, 그리고 기도를 통해 그렇게 하십니다. 

목사는 신실하고 바르게 성경적인 설교를 해야 합니다. 회중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회중은 그 성례에 눈을 떠서 참여함으로 은혜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 중에 다 함께 ‘회개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또 목사는 회중을 대표하여 ‘목회의 기도’를 올려드립니다. 회중은 이때 함께 이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방편, 즉 말씀과 성례와 기도가 예배 순서와 예배 내용의 핵심적인 요소가 됩니다. 우리가 이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하고 그분의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하신 예배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잊으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이 중보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중보자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경 봉독과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하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받으십니다.


3. 합당한 예배의 신비: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5절)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언약궤는 여호와의 보좌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배 때마다 여호와의 보좌로 나아갑니다. 언약궤는 맨 안쪽 방인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언약궤가 지성소에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과 멀리 떨어져 계십니다. 죄인이 그분께 나아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완전히 차단되어 있습니다. 성막 맨 바깥은 동쪽 문과 벽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습니다. 첫 번째 방인 성소는 사방과 위까지 막혀 있습니다. 맨 안쪽 방인 지성소는 휘장으로 성소와도 분리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성소는 여호와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을 상징합니다. 사실 성막은 3층 집을 옆으로 눕혀 놓은 것과 같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 위층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셋째 하늘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길은 땅에서 셋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성막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와도 같습니다. 성소의 양쪽과 정면 휘장에 그룹-천사들을 새겨놓은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언약궤 덮개 위 양쪽에 날개를 높이 편 두 그룹-천사가 있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양편과 앞에 천사들이 시위해 있는 하늘의 모습입니다.

첫째, 죄인들과 떨어져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둘째, 높디높은 셋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 우리는 죄인이므로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는 아무리 바벨탑을 건설해도 하늘에까지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1)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12)”(11~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9)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20)”(히 10:19~20)


첫째, 예수님의 몸이 찢어질 때, 죄인 앞을 막고 있던 휘장도 찢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셨으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도무지 만날 수 없는 하늘과 땅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었습니다(엡 1:10).

구약시대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대표, 대신하여 지성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 대신하여 하늘 보좌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으로 땅에 있는 우리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늘로 올라가는 예배입니다. 

16세기 개혁자 칼빈은 공예배, 특히 성찬 시간에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와 만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사역으로 우리가 높이 들려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칼빈의 가르침은 정말 성경적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배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예배입니다. 우리 예배는 열린 예배입니다. 악한 세상으로부터는 굳게 닫히고, 오히려 하늘을 향해 열린 예배입니다. 공예배를 사모하십시오. 공예배 시간에 우리는 하늘의 영광과 신비에 참여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5)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설교자 주: 직역하면, “앉히셨으니”)(6)”(엡 2:5~6)


<결론>

이제 설교를 맺겠습니다. 

첫째, 합당한 예배의 근거입니다. 우리는 구약시대와 다른 방법으로 예배하지만, 우리 마음대로 예배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에 정하신 대로 예배합니다. 

둘째, 합당한 예배의 수단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예배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통해 예배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우리와 만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은혜의 방편들은 모두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바르게 시행됩니다.

셋째, 합당한 예배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늘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늘로 올라가는 예배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예배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해진 예배입니다.

이 고귀한 예배를 우리 사는 날 동안 큰 기쁨으로 참석합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이 예배의 감격을 계승하는 교회를 건설합시다.

아멘!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성막의 구조를 설명해보십시오.


2. “섬기는 예법”(1절)이 무슨 뜻입니까?


3. 예배를 정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합당한 예배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4. 성소에는 있는 성물이 무엇입니까?


5. 지성소의 언약궤 안에 있는 성물이 무엇입니까?


6. 성소와 지성소의 성물들은 어떻게 서로 연결됩니까?


지성소의 성물

성소의 성물

의미











7. 언약궤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8. 언약궤가 성막 제일 안쪽 지성소에 놓인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9. 지성소는 어떤 장소를 상징합니까?


10. 합당한 예배 가운데 있는 신비가 무엇입니까?


11. 한 걸음 더: 예배의 각 순서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그 순서가 진행할 때마다 은혜받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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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2.01.05 Bykosin Views1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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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9(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혼을 쏟아 일하라, 엡 6, 5-9)

    Date2021.10.26 Bykosin Views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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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9(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 계시록 1장 3~6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1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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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8(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당한 예배, 히브리서 9장 1~5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1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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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7(기념 보석 호마노, 출애굽기 28장 9~12절)

    Date2021.09.16 Bykosin Views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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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예배전쟁 9(생명과 바꾼 예배 단3장)

    Date2021.08.25 Bykosin Views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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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8(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의 가정- 설교 두 편, 엡 5, 21-33 )

    Date2021.08.09 Bykosin Views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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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7(하나님의 종인 공직자에게 복종하라 롬 13,1-7 )

    Date2021.08.09 Bykosin Views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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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예배전쟁 8(재개된 예배의 능력 대하31장)

    Date2021.08.09 Bykosin Views1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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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예배전쟁 7(여호와의 응답이 넘치는 승리하는 예배 왕상18장)

    Date2021.07.08 Bykosin Views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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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6(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출애굽기 25장 8-22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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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5(동쪽 문, 민수기 3장 38절, 참고-창세기 3장 24절)

    Date2021.06.10 Bykosin Views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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