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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소책자(종교개혁과 교회) 설교.  설교 작성자: 이성호 목사(광교장로교회) 



공(카톨릭)교회를 믿사오며(마 28:18-2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1주일 a)


서론


            여러분은 교회를 믿습니까? 아마 이 질문이 상당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혹은 예수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익숙하지만 “교회를 믿습니까?”라는 질문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지 어떻게 교회를 믿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믿습니까?” 아마 모두 믿는다고 대답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영생을 믿사옵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마칩니다. 


            우리나라 신자들은 영생에 대한 믿음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영생에 대한 고백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영생 앞에는 몸의 부활도 있고, 죄사함도 있고, 성도의 교제도 있고 “거룩한 공 교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믿어야 할 신앙의 조항입니다. 이 공 교회에 대한 신앙은 성령님에 대한 신앙 항목 중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항목입니다. 성령님을 생각할 때 거룩한 공 교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도신경에 따르면 우리는 거룩한 공 교회를 믿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2가지 속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교회의 거룩성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보편성입니다. 어떤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하고 또한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신자들의 사교 모임은 될 수 있지만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둘 중에서 후자를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단어 뜻


            먼저 단어 뜻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옛날에는 “공회”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서 뜻이 아주 불분명했는데 새 사도신경은 “공 교회”라고 잘 번역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라는 말이 들어갔기 때문에 뜻이 훨씬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공”이라는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공(公)에 반대되는 말은 사(私)라고 할 수 있는데 적어도 교회는 분파가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뜻으로 이 단어가 지닌 원래의 의미를 다 담아 낼 수 없습니다. 


            공은 원래 “카톨릭”을 번역한 말입니다. 따라서 원래 단어를 살리면 “나는 카톨릭 교회를 믿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톨릭이라는 단어는 매우 좋은 단어인데 로마 교회가 이 단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교회 이름을 “카톨릭 교회”라고 지어 놓으니까 적지 않은 개신교 신자들이 이 단어가 나쁜 의미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우리가 참된 카톨릭 교회이고 천주교회는 이름은 카톨릭 교회이지만 잘못된 카톨릭 교회입니다. 마치 명칭을 “하나님의 교회”를 사용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톨릭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은 “전부”입니다. 따라서 반대말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전체 혹은 전부를 지향하고 거짓 교회는 파벌을 추구합니다. 카톨릭의 또 다른 개념은 보편입니다. 반대말은 특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 교회는 보편적 교회를 추구합니다. 교회라고 하는데 특별한 것을 추구한다면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신앙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자기만이 참 교회라고 주장하는 집단이나 특별한 신앙 프로그램을 추구하거나 특별한 사람들만 모인 단체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기준에 따르면 선교단체도 매우 유익한 단체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오늘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데 지상명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통하여 특별히 교회의 공교회성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많은 성도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성경구절을 잘 외우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공교회성에 거의 관심없는 선교단체들이 이 구절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은 좀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선교 단체들은 이 구절 중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만 취사선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쉬운 대답은 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틀린 답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을 할 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반복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중요한 단어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반복되는 단어를 찾는 것입니다. 지상 명령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모든”이라는 단어입니다. 몇 번 나옵니까? 각 절에 한 번씩 3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실 한 번 더 있습니다. 한글 성경으로 번역 된 “항상”은 헬라어로 직역 하면 “모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상명령에서 “모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 우리는 카톨릭이라는 단어가 가진 핵심적인 개념을 다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카톨릭이라는 용어를 교회에서 사용하는데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에서 유일하게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단어가 “카톨릭”입니다. 성경에 없는 이 단어가 어떻게 사도신경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요? 비록 단어 그 자체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교회의 속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모든”은 공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와 달리 교회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에 매이지 않습니다. 이제 복음은 온 세례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만약 어떤 교회가 한 지역에만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한국교회라는 말을 쓰지만 지나치게 한국적인 것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참 교회는 한국에 있으면서 교회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교회입니다. 


            둘째, “모든”은 민족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구약시대와 달리 새 시대에서 교회는 장소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유대인들, 정확하게 말하면 할례를 받은 사람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민족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은 할례를 폐하시고 세례를 제정하셨습니다. 


            셋째, “모든”은 교리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할례를 통하여 유대인이 된 사람들이 모세의 계명만 잘 지키면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켜야 합니다. 참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은 “모든”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모든” 교훈을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르친 것 중 일부만 가르친다든지, 그 가르침에 인간적인 선동들을 추가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넷째, “모든”은 시간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카톨릭 교회는 일시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참된 카톨릭 교회는 주님 오실 때까지 존재할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주님께서 함께 있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지금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성도들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내가 어디에 가든지 주님께서 내 마음 속에 함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 있다는 것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함께 하실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은 문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모든 땅으로 가서 모든 족속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주님의 모든 가르침을 전하여 제자를 삼을 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교회를 세울 때, 주님께서 그곳에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요리문답에 나타난 보편성


            요리문답에는 교회의 보편성에 대해서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의 보편성과 민족의 보편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장소적인 것과 교리적인 보편성도 암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보편성에서 요리문답은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의 거의 모든 고백서들은 교회의 시작을 오순절이 아니라 “세상의 처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교회를 새롭게 한 것입니다. 


            이 점에서 로마교회는 참 카톨릭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참 교회는 로마 교회가 주장하듯이 베드로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영생으로 선택된” 무리로서의 교회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을 때부터 존재하였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을 교회라고 부르는 집단이 있는데 그 교회가 새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광교 장로교회는 없었다가 새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 교회는 새로 생겼다기보다는 이미 있었던 교회에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쉽게 말해서 새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가 “새 교회”라고 주장한다면 그 교회는 이단입니다. 


            “모든 인류” 역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강조되어야 합니다. 공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는 민족성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사실 이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우선 언어를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과 더불어 사는 것은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서로 간의 오해와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반 이민 정책이 호소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가운데 “영생으로 선택된” 신자들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카톨릭 교회를 믿는 신앙의 자태입니다. 


            요리문답에 따르면 교회의 보편성은 믿음의 동질성에서 궁극적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 구절에 주목해 보십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교회를 참 믿음으로 하나가 되도록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보존하십니다.” 장소와 시간을 떠나서 우리가 어떤 신자의 모임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된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시간과 장소와 상관없이 참된 교회에서는 항상 동일하게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보편성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우리와 신앙고백이 같은 교회와 교제하기를 힘써야 하고 서로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끼리만 잘 믿으면 되지 왜 골치 아프게 다른 교회와 연합해야 하는가?”라고 비난 섞인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교회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나: 보편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


            보편적인 어떤 교회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로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안 믿는 것보다는 훨씬 났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교회의 회원이 아니라면 이 믿음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사역을 다 완수하셨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그분의 사역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듯이,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교회의 회원이 아니라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를 믿습니다.”라는 고백 속에는 “내가 그 교회의 회원입니다”라는 고백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아있는 회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회론에 대한 반박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회론에 따르면 교회의 권위, 혹은 교황의 권위에만 복종하면 교회의 회원이 됩니다. 믿음이 아니라 복종이 교회의 멤버십을 결정합니다. 단지 실제로 믿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회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죽은 회원으로 구분합니다. 즉, 믿음이 있거나 말거나 로마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고, 고해 성사를 하면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 안에는 산 회원과 죽은 회원이 골고루 참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고백하는 참 교회는 오직 살아있는 회원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회원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불가시적 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교회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한 신비한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였고 아들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이 모든 사실을 믿음을 통해서만 압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을까요? 역시 믿음으로 이 교회의 살아있는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회원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믿음으로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하여 카톨릭 교회를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지상명령에 따르면 신자들이 공교회성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개교회주의가 만연한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우리 교회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틀렸습니다. 우리교회만 잘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만 잘 된다는 것 자체가 불행입니다. 


            우리 광교장로교회는 특별한 교회를 추구하지 않고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합니다.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는 것, 매주 성찬을 시행하는 것, 시편찬송을 부르는 것이 다 교회의 보편성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아쉽게도 다른 교회들이 공교회성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우리 교회가 특별해 보일 뿐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겨우 공교회성을 위해 기초를 쌓았을 뿐입니다. 이 기초를 더욱 더 공고히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에 누구와 함께 있든지 “나는 카톨릭 교회를 믿는다”는 이 신앙고백이 여러분의 삶 속에 굳게 뿌리 잡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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