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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시편 설교,  설교문 작성자: 이성호 목사(광교장로교회)


시편 122편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

서론

          본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알려진 시편 중(120-134편)의 하나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어 원문에는 “성전에”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냥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 시편 1절은 “여호와의 집(성전)에 올라가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기뻐하였다”라고 고백하고 있는데, 본 시편은 예루살렘 성문에 막 도착한 상태의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집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내일 주일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교회 간다는 생각에 설레십니까, 아니면 부담이 되십니까? 어린이나 청소년 여러분은 오늘 아침 교회 올 때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부모님들이 “철수야, 일어나 교회 갈 준비해야지”라고 말했을 때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했나요? “아! 또 주일이야.” “엄마, 5분만 더 잘게요!”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일날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준비를 잘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날과 별 차이 없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신앙생활, 특히 예배 준비와 관련하여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인 저도 앞에서 언급한 질문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목사의 입장에서 주일은 한편으로는 즐겁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럽습니다. 설교 준비는 가장 큰 부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설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은 목사에게 더 큰 고통일 것입니다. 은퇴한 목사님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설교하는 것입니다. 일단 설교 준비가 끝나면 그때부터는 주일이 아무 부담 없이 평안하게 기다리게 됩니다. 물론 설교를 잘 전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남습니다.

          시편 122편은 우리 교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아 가야할지 어디에 집중을 해야 할 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122편에 따르면 교회에 가는 것은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 자신이 잘못되어 있든지 아니면 우리 교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녀들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시편 122편에서 말하는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을까요? 사람들이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시인은 기뻐하였습니다. 왜 기뻐했을까요? 그 당시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가까이 사는 사람은 별 일 아닐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 그것은 큰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드는 길고도 고된 여행이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자가용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음식도 장만해야 했고, 여행 경비도 마련해야 했으며, 자신의 사업도 잠시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와 같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집에 가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 3차례 하나님을 뵈러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이었습니다.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소득 중 십 분의 일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신명기 14장 22절 이하). 따라서 오늘 시편 1절은 여호와의 절기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가 다가오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소리를 듣는 시인의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떠날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짐을 다 싸고 소득의 십일조도 챙겨서 예루살렘으로 떠났습니다. 긴 여행 끝에 드디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2절과 3절은 그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문에 도착한 다음에 이 시편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면 어떤 특별한 예식이 있었고 이 예식을 위해 본 시편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구나!” 여기서 시인은 마치 예루살렘을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묘사하고 있는데 예루살렘을 마치 애인처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루살렘이 어떤 곳이기에 시인은 이곳에 가는 것을 그토록 기뻐했을까요? 오늘 시편에 따르면 그것은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두 개의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여호와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의 집입니다. 오늘 시편에 보면 1절과 마지막 절에 여호와의 집이 등장하고 5절에 다윗의 집이 등장합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여호와의 집”이라는 표현이 약화되어 있는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성막을 가리키고 다윗의 집은 궁궐을 가리킵니다. 이 두 집을 위하여 예루살렘의 성벽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성벽은 아주 조밀하게 건축되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무너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성벽 안에 있는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의 죄사함과 자비가 베풀어지는 곳이고, 다윗의 집은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는 곳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 당시 다른 나라의 통치자들은 공의로 다스리지 않고 힘으로 연약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제사장들 역시 백성들의 제물을 가지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샬롬을

          예루살렘이 이와 같이 귀한 곳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기뻐서 외쳤던 것입니다. 견고한 성을 보면서 걱정과 근심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안전하다는 것은 여호와의 자비가 베풀어지고 그의 종 다윗의 공의가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 표현을 히브리어로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샬루 샬롬 예루살라임.” “샬루”는 구하라는 뜻이고, 샬롬은 평강을 의미합니다. 초등학생들로 다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샬루 살렘 예루살라임”이라는 표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이 시편은 의도적으로 살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개념이 샬롬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영어로는 “peace”라고 번역되는데 평화보다는 훨씬 더 큰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화목, 화해, 번영, 번성, 복, 형통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 단어를 충분히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성경에도 동일한 이 단어가 평안이나 평강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샬롬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샬롬을 구하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오늘날 구약성도들처럼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까요? 물론 그런 기도도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은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도 중에 누가 그렇게 열심히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할까요?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예루살렘의 평화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평화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평화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오늘 시인은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도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샬롬과 자신의 형통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단지 이스라엘의 수도의 개념을 뛰어넘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우리나라의 서울을 같은 선상에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함락되었지만 대한민국이 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의의 자체가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토록 중요한 성이지만 그 이유는 그 도시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곳에 여호와의 집이 있고 다윗의 집이 있으며 예배가 드려지고 공의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호와의 지파들이 함께 모여서 그 이름에 감사하지 않고 (4절) 다윗의 아들들이 재판을 굽게 한다면 예루살렘의 평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구하라!

          오늘 시편은 우리에게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샬롬”입니다. 우리는 이 예루살렘이 신약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 속에서 감사를 드리고, 설교를 통하여 그분의 공의를 듣고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교회로서의 존재할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가 이와 같은 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샬롬을 실현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교회는 샬롬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샬롬이 깨어지거나 유지 되지 않는다면 성도들은 더 이상 형통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부담이 되고 교회에 나오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샬롬이 깨어지게 되면 그것은 참된 신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큰 고통을 안겨 줍니다. 저는 이것을 이민 교회에 있는 동안 절감하였습니다.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들이 대립을 하고 있었는데 교회 가는 날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날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었고 아직도 제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경험을 통해서 교회의 샬롬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체험할 수 있었고 교회의 가장 중요한 방향을 샬롬에 두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은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들에게 있어서 교회의 샬롬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물이나 공기의 소중함을 우리가 잘 모르듯이 교회의 샬롬도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샬롬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성도는 당연히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항상 기뻐해야 하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죄의 심각성을 너무나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우리의 본성은 타락했고 사탄은 실제로 존재하면서 교회의 샬롬을 공격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샬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교회의 샬롬을 구해야 합니다. 이 시편 후반부는 모두 예루살렘의 샬롬을 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고 평강을 빌고,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샬롬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기도제목입니다. 누가 이 샬롬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까요? 정말로 샬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집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특별히 이 예루살렘의 샬롬이 자기뿐만이 아니라 자기 형제들과 친구들에게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8절). 결국 참된 신자만이 교회의 샬롬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전 세계가 아시다시피 오늘날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전쟁과 테러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공평이 시행되는 곳이 아니라 힘과 무력이 강요되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예루살렘이 글자 그대로 평화의 도시가 되기에는 요원합니다. 아마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무엇보다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전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문자 그대로의 예루살렘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파괴되었고 다윗의 왕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사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것은 신약의 예루살렘인 교회로 대치되었습니다. 이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구약시대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는 더 이상 예루살렘 성벽에 의해 보호를 받지 않습니다. 그 일은 오늘날 성도의 모임인 교회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이 교회 안에는 샬롬이 있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은 이 샬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서로에게 샬롬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이 샬롬을 추구하기 보다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적대감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보수적인 교회들이 호전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샬롬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정의가 평화가 입을 맞추는 것(시편 85편 16절)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오늘 본문은 진리와 더불어 샬롬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샬롬이 가득할 때 말씀의 사역이 풍성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통하여 성도들 모두가 여호와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샬롬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 곧 샬롬을 만드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의 섬김과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샬롬이 교회 안에서 충만하게 됩니다. 이 샬롬을 통하여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형제들과 우리의 친구들이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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