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의미
사사기 2: 6-10
시작하면서
교회역사에도 암흑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흔히 중세가 이런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590년 그레고리우스(Gr-egorius, 재위 590-604) 1세가 교황이 된 후 교회는 급속도로 ‘본래의 기독교’ 혹은 ‘성경의 기독교’로 부터 이탈하기 시작하고, 각종 이교적 미신이 도입됩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를 ‘미신의 아버지’(pater superstitonum)라고 부릅니다. 그가 교황으로 추대될 때는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서 종’(servorun servus dei)라고 겸손해 했으나 곧 교회의 지배자가 되어 공로사상, 성자숭배, 연옥교리, 사자(死者)를 위한 기도 등 각종 교리를 제정하는 교리적 변질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가 교황이 된 7세기 이후부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까지를 ‘암흑의 세기들’(Saeculum obscurum)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의 이탈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누구이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지 못할 때 그 시대의 사람들은 차츰 바른 신앙으로부터 이탈해 갔고, 비기독교적인 심지어는 반 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기독교’라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 아닌 것을 숭배하는 종교로 변질되어 갔던 것입니다. 지금도 구라파를 방문해 보시는 분은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데, 천주교회당에 가보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서양적인 불교’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성당 입구에서 초를 파는 것부터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으로부터의 이탈은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탈선을 동반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세시대를 영적 암흑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이와 똑같은 경우를 우리는 구약성경 사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이 우상숭배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탈선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이 사사시대의 현실이었습니다. 우선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였던가를 살펴봅시다.
1. 사사시대의 성격
사사시대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영도를 받아 가나안에 도착하여 땅을 분배받고 살기 시작했던 초기 350여 년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여호수아의 죽음으로부터 사무엘의 등장과 왕정체제의 수립까지(1390~1050 BC)입니다. 이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오늘 우리 교회역사와 똑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출애굽 하여 가나안에 정착하였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우상을 숭배하였고, 결국 도덕적으로 극도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를 ‘구약의 암흑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진 시대라는 뜻입니다. 영적 타락, 영적 퇴보, 영적 우둔함. 이것은 모든 암흑의 원인이자 암흑의 실체인데, 이 시대의 문제는 3가지로 정리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2:10).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그 시대의 개인과 공동체의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하나님을 상실하면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길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상숭배와 배교(背敎)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필연적으로 우상숭배 행위로 나타납니다(18:14-20). 존 화이트(John White)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우상숭배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인 것처럼 섬기는 행위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저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해 내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가나안의 신을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민족적인 우상숭배 행위가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의 신이란 바알, 아스다롯을 비롯하여 아람, 시돈, 모압족의 그모스, 암몬족의 밀곰, 몰랙, 블레셋의 다곤신 등인데 이들을 모조리 섬겼던 것입니다. 사사기 10장 6절에 보면 이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자손의 신들과 불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종교는 다신교(多神敎)인데,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잔인성입니다. 가나안의 종교는 신들을 즐겁게 하고 신에게 제물을 드린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사람을 불태워 죽이기도 했습니다(신12:31). 종교라는 이름으로 생명의 고귀함이나 가족적인 연대마저도 파괴했던 것입니다. 거짓된 종교가 얼마나 반인륜적, 반도덕적, 반사회적일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종교의 두 번째 특징은 음란성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신들은 남성신과 여성신이 있었습니다. 바알은 남성신이고, 앗세라는 여성신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종교들은 자연의 생생력(生生力, fertility)은 남신과 여신 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간음을 행했고, 신을 즐겁게 한다는 미명하에 남자 제관(祭官)과 여 사제(司祭)들이 성적 제의(祭儀)를 행했던 것입니다. 거짓된 종교가 가져올 수 있는 폐해(弊害)가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 우상숭배와 함께 이 시대의 세 번째 문제는 불법과 부도덕이었습니다. 이교숭배 혹은 우상숭배는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에 불법과 불의, 도덕적 타락을 가져왔습니다(18:11-13).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했으므로 백성들은 자기 소견대로 행했습니다. 도덕적, 혹은 윤리적 규범이 없었습니다. 이 점을 말하는 것이 “그 시대에 왕이 없었으므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다”는 말입니다(17:6, 21:25).
사사기 17장 이하의 본문은 이 시대가 얼마나 타락한 시대였던 가를 보여줍니다. 표준도 없었고, 윤리적 척도도 없었습니다. 도덕적 규범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 멋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실상입니다. 음모와 살인, 성적 타락과 문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만이 아니라 이 때 벌써 동성연애와 동성애 행위가 자행되었고, 한 여인을 집단적으로 강간하여 죽게 만들고, 한 지역의 약 4만 명의 사람을 대량학살을 하는 등 성적 부도덕과 범람은 극에 달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 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바른 신앙으로부터의 이탈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사사시대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거듭 강조하셨던 말씀, 곧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듭 거듭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사사시대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입니다. 중세시대 문제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자국어로 읽도록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프랑스의 르페브르가 불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것입니다.
2. 원인을 찾아서
그렇다면 사사시대의 이런 비극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 근본 원인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의 인도를 받고, 또 그가 죽은 후에는 여호수아의 영도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살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요. 본문의 핵심은 7절과 10절입니다. 7절에 보면 여호수아와 여호와께서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보고 아는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수아 시대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런데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그 시대 장로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 사람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또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여호수아와 그 시대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신앙이 계승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사시대가 이처럼 타락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근본 원인이 설명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후손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사사기에 기록된 암흑의 역사를 결정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여정 동안 수없이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라, 기념비를 세우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을 후대에 전하도록 요구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평지에 모여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면서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명한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고 했지만(신6:2) 이를 가르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특히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서는 하나님 사랑의 법도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그러나 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그 시대 사람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가 2장 10절을 다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행한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때 바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면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신앙의 계승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법도를 가르치지 않을 때 불과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서 영적 암흑이 왔다는 점입니다.
종교개혁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의 회복운동입니다. 각종 미신과 이교적 풍습으로 참된 교회의 표지를 상실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 곧 하나님의 주권과 바른 교회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는 이 신앙을 후대에 잘 가르치고 계승하는 일입니다.
3.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여기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순종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벌써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그 땅 거민과 교제하지도 말고, 통혼하지도 말고 그들을 없이하라고 했습니다(출34:11-12, 레18:24-28, 20:23, 신12:29, 20:17-18, 삿2:1-3).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보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가나안의 거민들을 없이하라했을 때 그것은 저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가나안 사람들의 종교는 농경신(農耕神)으로서 잔인성이 그 특징입니다. 신명기 12장 31절을 보면,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상종하지 말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신명기 18장 10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 그 민족들이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 하시면서,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나 복술자(卜術者)나 길융(吉凶)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嗔言者)나 신접자(神接者)나 박수나 초혼자(招魂者)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자”란 바로 자녀를 불태워 신에게 바치는 자를 의미합니다. 가나안의 신들 중에 특히 몰렉(Molech)신은 암몬의 신인데(왕상11:5, 33), 가장 잔인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은 산채로 불태워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후에 일이지만 솔로몬이 영적 눈이 어두워 져 도벳이 있는 힌놈골짜기에 몰렉을 위한 제단을 세운일이 있습니다(왕상11:7). 아하스왕이나(왕하16:3), 호세아왕(왕하17;17), 므낫세왕은 모렉신 앞에 자기의 아들들을 제물로 바쳤던(왕하21:6) 악한 왕입니다. 이처럼 가나안의 종교는 사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들을 멸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보존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가나안의 종교는 또 음란했습니다. 농경신은 풍산(豐産)의 신인데, 신들도 마치 사람이나 동물처럼 관계를 통해 풍요로운 산출을 준다고 믿어 신들 앞에서 음란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34장 15절을 보면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남신과 여신이 있었고, 신전에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흥분과 광란의 혼음이 행해졌던 것입니다. 제관(祭官)과 여사제들은 일종의 매춘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멸하라 하셨고, 이들과 통혼하지도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신명기 20장 17-18절에서 “헷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하신대로 하라.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나안의 우상숭배자들의 음란한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한 요구였던 것입니다.
불순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 거민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던 것입니다. 사사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불완전한 정복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불순종의 흔적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쫒아내지 못하였으므로” 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9, 21, 27, 28, 29, 30, 31, 33, 34절을 보십시요. “쫒아내지 못하였다,” “쫒아내지 못하였다”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 족속을 다 쫒아 낼 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20장 1절을 보십시오.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7:17-19참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 사람들을 좇아낼 수 있는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완전한 순종은 불순종과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1장 6절을 보면 “아도니 베섹의 엄지손가락을 짤랐다”고 했는데, ‘아도니’란 주(Lord)란 뜻입니다. 따라서 ‘아도니 베섹’이란 베섹의 왕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족의 왕의 엄지손가락을 짜르라고 명 한 일이 없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짜른 것은 활을 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순종하는 것 같이 하면서도 사실은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1장 19절을 보시면 “산지 거민은 좇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을 쫒아내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핑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이스라엘 손이 맡겼으므로 다 좇아 낼 수 있었습니다만 골짜기의 거민은 철병거가 있다는 핑계로 공격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철병거로 무장된 골짜기의 거민들과는 전쟁할 의사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대적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습니다(21:43-45).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첫째는 가나안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농업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가나안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불순종 때문에 이스라엘은 약 100년 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작은 눈앞의 욕심 때문에 불순종을 선택한 것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을 노동력을 이용하고 혹은 농사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불순종을 선탁한 것입니다. 이 불순종이 암흑의 시대로 인도해 갔던 것입니다.
4. 오늘을 위한 교훈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3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영적 암흑을 가져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입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한 사회를 암흑의 시기로 이끌어 갑니다. 중세시대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특히 9, 10세기를 거쳐 가면서 교회가 점차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가들은 이 시기를 암흑의 세기들(Saeculum obscurum)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차츰 차츰 바른 신앙으로부터 이탈해 갔고 비 기독교적인, 심지어는 반 기독교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앙으로부터의 이탈은 이교적인 혹은 미신적인 습관을 수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탈선을 동반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입니다.
둘째,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언약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강조되었던 것은 하나님 사랑의 법도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들은 신앙의 유일한 표준인 ‘오직 성경’, 곧 바른 성경관을 지사하고 바른 선포를 강조했습니다. 또 ‘요리문답’(要理問答)이라고 불리는 신앙문답서를 작성하여 정기적으로 가르치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는 우리의 자식들을 바른 신앙. 곧 개혁신앙으로 양육하고, 믿음의 본을 보이는 일입니다.
셋째, 순종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개인과 공동체의 성패를 결정했습니다.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기서 한 가지 사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여호수아 11장 22절을 보십시오. 이 부분은 정복전쟁에 대한 요약인데,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자손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복정쟁에서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요? 세월이 지난 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사무엘상 17장 4절을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사람이라...” 17장 23절에서도 골리앗이 가드 사람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 ‘가드’에 약간 남겨두었는데, 350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바로 그 땅에서 블레셋의 유명한 장군 골리앗이 나왔던 것입니다. 불순종의 씨는 후일 이스라엘 백성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블레셋 군대를 가능하게 했고, 골리앗이라는 장군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사사기 16장 1절을 보면 삼손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들릴라는 약간 남겨 두었던 ‘가사’ 출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지금은 손해 보는 일 같으나 그것이 결단코 손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당장 큰 유익이 있는 것 같지만, 후일에는 손실을 입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결국 바른 성경관, 바른 신관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전폭적인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합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확립하고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