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목사의 설교에 관한 연구
소장 서영국목사
서론
2013년부터 주변에서 많은 성도들이 서로 나누는 은밀한 대화가 있다. 그것은 ‘김성수목사의 설교’를 들어봤냐는 물음이다. ‘들어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이 설교를 못 들었느냐고 하면서 마치 안 되었다는 듯이 반문 하면서 서울 강남 서머나교회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김성수 목사의 설교를 꼭 들으라고 말한다. 마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선물을 주는 것처럼 들을 것을 권면하고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설교를 통해 얼마나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말하고 나는 이 설교를 듣고 인생의 답을 찾았으며 한국 교회목회자가 얼마나 잘못된 설교를 하는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나는 잘못된 거짓 설교만 들었다고 슬퍼하고 분노하기까지 한다. 필자는 이 설교를 들었다는 2014년에 김성수목사 설교를 들었다는 목회자 사모, 평신도의 평가를 파악하여보니 ‘너무 좋은 설교였다’ ‘굉장히 끌리는 힘이 있다’‘새롭게 깨달은 것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어떤 장로님은 우리 성도들이 은연중에 서로 듣기를 권하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들어 봤더니 너무 끌리는데 계속 들으니‘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울감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고백이 맞는 말이다. 실제로 김성수의 설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고 기성교회 목회자의 설교와 사상을 비판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동시에 세상에 소망이 없는 허무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럼에도 계속 서로 이 설교를 나누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도대체 어떤 설교를 하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가? 홈페이지 설교 접속을 빼고도 유튜브만도 3만 번 이상 접속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성수의 설교를 아직 비판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연구 자료많지 않으나 심각성은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연구소는 교단 모든 목회자에게 판단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문제를 다뤄야할 시점에 와 있다.
현재 그의 설교를 판단할 근거는 설교 영상이 중심이며 책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설교를 직접 녹취하여 내용을 살피며 연구 보고한다. 우리 고신교회 성도들도 많이 듣고 있고 교역자 중에도 있음이 확인되었다. 본 자료는 일방적인 비판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했다. 목회에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본론
1. 김성수 목사의 경력과 설교 내용의 문제점
1)김성수목사의 경력
그는 서울대학교 음대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있다. 1988년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대상을 받은 김성수를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도 알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모 정당에서 총재 직속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는 개혁주의 설교자라고 하는 박영선목사(서울 남포교회)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개혁주의 신앙에 몰두한다. 그는 개혁주의를 하겠다고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하게 된다. 2004년 캘리포니아에서 서머나 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그는 개혁주의적 설교를 했으나 그가 어떤 신학을 통해 어떤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 갑자기 개혁주의를 비방, 비판하며 자기만의 독특한 설교를 하게 된다. 그의설교 로마서강해 16강(롬1:7)“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쫓아오는 은혜와 평강”의 설교에서 자연주의와 실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휴머니즘을 강화하고 신을 부정하며 물질 세계에 모든 가치를 둔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교회는 계13장의 예를 들어 이런 사상의 현상에서 물질 곧 경제를 지배하는 세상, 교회속에 사람이 하나님 노릇하는 세상, 신비주의, 부자로 잘 사는 기복주의적 복을 가르치며 짐승의 공식 곧 마귀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자연주의와 실존주의가 세상에만 기준을 둔다는 비판을 하면서 교회의 성도는 세상의 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제와 경제적 여유를 짐승의 세계(마귀의세계) 로 단죄해 버린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세상의 삶을 극단적으로 존재가치가 허무주의가 되도록 유도가 된다. 설교를 들을수록 당기는 힘은 있으나 결국 세상의 삶의 무가치를 느끼게 하며 모든 수고를 허망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런 설교를 진행하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강남에 서머나교회를 개척하여 같은 설교를 계속했다. 김성수 목사는 2013년 3월6일에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므로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사망하기까지 500여명의 성도가 있었고 현재는 700명 이상이 출석하며 영상으로 그의 설교를 계속 듣고 있다. 그의 설교는 인터넷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3-4만명이 전국에서 듣고 있다. 미국 서머나교회와 한국의 서머나 교회를 통해 계속 인터넷 설교를 내 보내고 있다. 일본지부 및 해외 지부조직이 세워지고 있다. 김성수목사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판단하였으나 오산이었다. 설교 청취자 수가 소개를 통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반드시 담임목사와 한국교회를 비방한다.
2)김성수목사의 설교 특징은 확실한 논리가 있고 비유풀이로 모든 해석을 예수님께 맞춘다.
신학, 원어, 성경본의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적 누가 들어도 그의 설교는 논리가 분명하다. 그의 논리적 설교는 깊이 판단하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끌리게 되어 있다. 필자도 그의 설교를 녹취하면서 끝까지 정신 차리고 듣지 않으면 감동을 주는 설교다. 많은 설교의 내용을 원어(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를 풀어가면서 성경의 확실한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처럼 들려서 누가 들어도 신뢰감을 준다. 특히 그의 설교는 기복주의와 번영신학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판하며 세상의 희망을 끊어 버리게 한다. 현대 교회를 잘못되었다고 강력히 부정하며 비판적인 언사를 많이 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신비주의에 목메는 목회자와 물질주의에 목메는 목회자, 목회자를 신격화 할 정도로 하나님을 망각하게 하는 현실교회가 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모든 교회와 목회자를 매도하며 세상의 부를 단죄해 버린다.
그의 설교는 비유풀이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며 강해하는 설교이다. 그의 비유풀이식 설교는 모든 해석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고 있다. 전혀 연관이 없는데 그 자신만의 명쾌한 논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한다.
3)김성수목사의 설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의 설교를 계속 들으면 기존 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식이 강하게 생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고 그의 설교를 듣는 자들이 희열을 느끼게 한다. 기존의 모든 성경 해석은 잘못되었고 김성수 목사의 성경 해석이 가장 완벽하고 바르다고 믿게 한다. 자신의 목회자에 대한 불신이 가중되며 무식하게 느껴지고 기존 교회에 적응하기 힘든 교인이 되어버린다. 교회 안에 있으나 천장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결국 김성수목사의 설교에 매이게 된다.
최종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자신도 모르게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영혼이 병들게 된다.
그러면 김성수 목사의 원어해석은 완벽한가? 라고 물의면 그의 논리가 사람을 잡는 것이지 그의 해석은 너무 많은 부분이 거짓이라는 것이다.
4)김성수목사의 설교는 이단들의 미혹하는 성경 해석방법을 쓴다.
그의 설교는 판단력이 없으면 들을수록 성경적이며 복음적이라고 느끼게 한다. 그런데 다른 복음
이라는 사실이다. 전문가가 보면 확실히 이단적인 성경해석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 설교를 들을수록 혼란에 빠지게 되며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게 되며 방황하게 된다. 목사가 듣지 못하게 하면 항의하며 교회를 떠나는 결론에 이른다. 그의 설교는 복음이 아니며 다른 복음이다. 그의 설교는 듣는 모든 성도를 혼란에 바지게 하고 심각한 영적 병이 들어 교만하고 거칠어진다. 잘못된 교훈에 세뇌되어 김성수목사의 설교만이 유일하게 바른 것으로 인식된다.
모든 이단들이 전문적으로 이용하는 거짓말인 말씀의 짝을 인식시켜 문장을 보지 못하게 혼란을 준다. 성경에 말씀이 짝이 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단어중심의 비유풀이를 한다. 성경은 비유가 아니다. 비유풀이 역시 대부분의 이단이 쓰는 방법이다. 가장 알아차리기 힘든 것은 목회자나 전문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원어를 풀어 소개한다는 것이다. 완벽한 해석처럼 느끼게 된다.
2.김성수목사 설교와 반증
1)눅16장 설교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서 원어사용의 문제점
그의 설교 녹취 부분소개
「불의한 청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불의한 거예요. 그런데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속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를 발견해요. 본문 8절에 나오는 칭찬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헬라어 ‘에파이네오’를 번역한 것으로 찬양하다, 칭송하다, 기리다는 뜻으로 쓰인다. 줄곧 하나님에게 적용되었던 단어예요. 찬양은 누가 받으시는 것이죠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예요. 계5:12“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하더라” 누가? 어린양이. 13절“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영광과 찬송은 누구의 것, 예수의 것입니다. 그에게만 영광과 찬송과 능력이 세세토록 돌려져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찬양이 불의한 청지기에게 돌려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에게 지혜롭다 라는 칭찬을 받아요. 후크마, 지혜라는 단어는 항상 예수님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였어요. 잠언으로 가 볼께요. 8장11절“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 지혜가 나 지혜는, 마치 사람처럼 예기하죠) 12절“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혜와 근신을 찾아 얻나니” 13절“여호와를 경외한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지혜는 이예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4절 “내게는(지혜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전부 지혜예요) 15절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의 공의를 세우며” 16절”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복음서와 한번 연결해서 생각해 보시지요. 이게 누구예요 나가 지혜, 나는 예수 그리스도예요. 잠언3장14절로 갑니다.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그의 주장 요약
그는 누가복음16장8절의 칭찬(에파이네오)은 하나님께 찬양한다는 단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요한계시록 5장12절의 예수님께 대한 찬송이라는 단어이다.
특히 요한계시록5장12절의 찬송은 율로기아(찬양)이다. 찬양하다, 칭송하다, 기리다는 의미는
지혜(프흐로니모스) 예수님에게 적용된다.(후크마)
(2)그의 주장 누가복음 16장8절에 대한 반증
칭찬(에파이네오)는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5:12의 찬송은 “율로기아(찬양)”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아이노스”이다(눅18:43).
“에파이네오”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뜻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이다(고전11:2, 17, 22).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가 전혀 없는 그냥 칭찬 그대로다.
(3)잠언8장11절의 반증
본문의 지혜(프흐로니모스)는 예수님을 의미하는 뜻이 전혀 아니며 현명함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지혜를 말한다.마10:16에 “뱀같이 지혜롭고”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구약의 히브리어의 “후크마”의 헬라의 번역은“소피아”이다. 특히 예수님(고전1:30)은 ‘소피아’이다.
공동 번역과 현대어 번역은 눅16:8의 지혜를 “약삭빠르게”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김성수 목사가 담대히 설명한 잠언8장11절은 눅16:8의 불의한 청지기에서 나오는 지혜(프흐로니모스)와 같은 말이 아니다. 눅16:8은 예수님이 전혀 아니다. 그는 교묘히 거짓 논리로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무데나 예수님이라고 붙이고 있는 것이다.
2)이사야 34장16절을 인용 말씀의 짝이 있다는 주장의 문제점
그의 설교 녹취부분 소개
「여러분 성경 이라는 건 적어도 44명의 제자에 의해 1500백년의 기간을 두고 쓰여진 책입니다. 그런데 그 전체가 일관성 있게 한 이야기로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게 짝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까요? 그리고 성경을 문자로 요렇게 풀어보면 그 문자 하나 하나가 문장을 설명하고 있고 그 문장이 책을 설명하고 있고 그 책이 성경 전체의 내용이예요. 그래서 성경이 뭐다라고 아는 사람은 어디를 펴서 읽어도 그 이야기 그 진리 ‘알레데이아’라고 하는데 그 진리로 읽게 되어 있어요. 이사야34장16절을 보시면“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니라”르아크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았다 했죠? 성경은 누가 모은 거예요? 성경의 저자는 성령입니다.」
(1)그의 주장 요약
김성수 목사는 사34:16절을 인용하여 모든 말씀은 짝이 있다고 확실하게 주장한다.
김성수 목사는 실제로 짝 풀이를 하고 있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의 해석에서도 요한복음6장의 생명의 떡을 연결하여 짝 풀이 하고 있다.
여호와의 신이 말씀의 짝을 모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이사야34장16절의 짝 풀이에 대한 반증
과연 위의 구절은 말씀이 짝이 있다는 김성수목사의 말이 맞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사야 34장16절은 말씀의 짝이 아니다. 문맥을 무시하는 완전한 거짓말이다. 이사야 34장은 에돔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다. 6절에 “큰 살육이 에돔 땅에 있음이라”9절에“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10절“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나갈 자가 영영히 없겠고” 11절이 중요하다.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서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12절“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13절“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14절“들짐승이 이리를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서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15절“부엉이가 거기서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여호와께서 에돔을 심판 하시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이 멸망을 받아 도시와 궁궐에 잡초가 우거지고 거기에는 오직 짐승들만 불러 여호와의 영이 모으는데 그 짐승이 짝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으리라고 되어 있다. 16절“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기서 짝은 짐승의 짝이다. 말씀의 짝이 아니다. 에돔이 황폐화되고 오직 짐승들만 짝을 이루고 알을 낳아 새끼를 까서 그 땅을 차지하고 살것이라(17절)는 말씀이다. 김성수목사는 너무 담대히 말하고 있다. 말씀의 짝이라고, 여호와의 신이 말씀의 짝을 이룬다고 큰소리친다. 여호와의 신이 말씀의 짝을 모으시는 것이 아니라 짐승의 짝을 모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말씀의 짝은 이단들과 성경으로 사기 치는 종교 사기꾼들의 주장이다.
3)단어중심 비유풀이 성경 해석의 문제점
그의 설교 녹취부분 소개
누가복음11장8절 강청기도의 내용 「그러니까 세 친구와 떡 세덩이의 비유는 절대로 거부될 수 없는 어떤 당연한 요청에 대한 당연한 그림으로 제시가 된거라 말입니다. 그 떡이라는 예수가 성도의 기도로 안주어 줄 수 없다라는 뜻이예요. 지성이면 감천이고 조르면 주게 되어 있다는 그런 유치한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뒤에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어떤 요구가 붙어 있는지 보세요 본문 9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절 너희 중에 아비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세 친구의 비유 아래에 그 유명한 구하라, 찾으라 , 두드리라, 라는 권고가 붙어 있어요. 그러니까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두드려서 무엇을 얻어내라는 거예요? 떡, 그 떡은 뭐라고 그랬어요. 바로 위에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 떡 알토스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예요. 그런데 주기도문에 의하면 그 떡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어요. 맞습니까?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써 있다고 했잖아요. 이미 주어졌어요.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하늘의 양식인 예수를 열심히 찾고 구하고 두드려서 얻어낸다는 것은 무슨 망일까요? 예수라는 하늘의 만나를 먹은 자로서」 (1)그의 주장 요약
김성수 목사는 단어중심 비유풀이를 하고 있다. 앞 부분의 주기도문 일용할 양식도 그는 예수라고 주장한다. 후에 강청기도의 떡 세 덩이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라고 해석하며 주장한다.
(2)단어중심의 비유풀이에 대한 반증
문장 내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문맥으로 해석해야 한다. 여기서 떡은 실제로 떡이다. 친구의 간절한 강청함이 떡을 주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며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고 찾아지고 열리게 될 것을 말한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도 예수님을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일의 양식을 말한다.
여기서 말한 떡을 실제로 떡이라 말하면 김성수목사는 육신의 것을 구하는 기복주의 논리라고 매도한다. 그러니 세상 것을 구하는 기도는 모두 마귀를 구하는 것이요, 물질의 지배를 받고 물질이 우상이 되는 우상숭배자가 되어 버린다. 단어중심의 비유풀이는 이단들이 성경으로 미혹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김성수는 그럴싸한 논리로 다른 이단들처럼 비유풀이를 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 사기꾼들의 해석 방법이다.
4)상급에 대하여 부인하는 문제점
그의 설교 녹취 부분 소개
누가복음17장7-10절 내용 「9절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 하겠느냐 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니라 할지니라”그것도 종 얘기예요, 에수님이 하신 얘기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존재지 자기가 해놓은 일을 근거로 주인에게 사례를 받거나 상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예요. 그리고 상급이라는 개념을 잘 생각해 보세요. 상이라는게 뭡니까? 여러분, 다른 이들 보다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소유, 너 나은 평가, 더 풍성한 잉여를 얻어내어서 비교 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즐기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게 상이예요, 그게 상이예요. 그게 아니면 뭐하러 상을 받아요. 상을 왜 원합니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우위를 즐기기 누리기 위해 상을 요구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만일 천국에도 그러한 상급의 개념이 여전이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천국이라는 곳은 그곳에 사는 모든 백성이 각자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 속에서 사는 곳이예요. 그런데 우열과 비교와 차이 격차가 있는 곳에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격차와 차이와 우열이 있는데 절대 만족이 절대 행복이라는 것이 그곳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자체로 모순 아닙니까?
우열이 있고 격차가 있는 곳에 어떻게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 가능해요, 천국이 그렇게 누구나 다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 거하는 곳이라면 거기에서 상이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예요. 그런 상급의 개념은 기복주의와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매한 신학자들이 내놓은 쓰레기같은 교리인거예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여려분.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고 선행을 쌓아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다른 사람보다 큰 상을 받자. 이게 바로 개혁주의의 한계예요, 사람들은 요즘 너 나할 것 없이 개혁주의 개혁주의 하는데 개혁주의는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고 너무 많이 타락했어요. 저는 오늘날의 개혁주의가 펠라기우스주의와 알미니안 주의를 배격하는듯 하면서도 스스로 알미니안 주의에 빠져드는 것처럼 보여요. 작금의 개혁주의는 박형룡, 김홍전, 박영선, 로이드 죤스, 조나단 에드워드, 아브라함 카이퍼, 벌콥, 클라우니, 보스, 메이천, 안토니 후크마등 이런 사람들의 신학에 꽉 에게 갖혀있어요. 더 이상 은혜와 긍휼 속에 나가지 못하고 개혁주의 울타리 속에 갖혀 있어요」
(1)김성수목사의 주장 요약
김성수 목사는 천국에서 상급대한 성경의 주장을 부인한다.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복의 계획을 쓰레기 같은 신학자들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천국에서는 절대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상이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개혁주의는 너무 타락했다. 상은 영생이며 구원이 곧 상급이라는 것이다.
(2)상급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증
구원이 상급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는 무용지물이 된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고 삶의 가치가 의미가 없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삶의 거룩함을 상실하는 구원파적 파탄의 삶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해야 할 성도가 기계처럼 예수 믿고 기계처럼 살다 천국가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성도의 독립적 인격이 무시되어 비인격적 존재로 전락해 버린다. 우리는 상을 받는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니 하나님 편에서 은혜로 상급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단순히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다. 종은 상급이 없어도 자녀는 유산이 있으며 상이 있다.
천국에서도 크고 작음이 있다. 마태복음5장19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부활도 더 좋은 부활이 있다. 히브리서11장35절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상급은 일하는 대로 받는다. 계22장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다. 모든 말씀이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을 말한다. 그것은 차별을 통한 상대적 박탈감이 아니라 모두가 기뻐하고 감사하며 잘 한 자를 더욱 칭찬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슬픔과 절망이 없는 완전한 천국이다. 땅에서 하나님 기쁘시게 하고 상급을 받는 것이 천국에서 차별이라면 구원받고 악하게 살든지 악하게 살아도 된다는 것인가?
극히 일부 목회자들이 상급을 부정하는 것은 은혜와 충성을 통한 상급의 약속을 오해한데서 생긴 것이다. 천국은 불가능한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를 입은 자는 그의 백성으로 살고 승리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당연하다.
5)극단적으로 기복신앙(번영신학)비판하는 문제점
용어상 기복신앙이나 번영신앙은 일정부분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있는 목회자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성수 목사는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복과 형통하게 하심을 싸잡아 정죄하며 기복신앙, 번영신학으로 매도해 버린다.
(1)김성수목사의 주장
사도들은 복에 대하여 말한 것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복을 구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며 잘못된 신앙이다. 신약성경에는 육신적인 곧 재물이나 건강 등은 기록되지 않다고 주장한다. 육신적인 복을 구하는 것은 타락한 신앙이다. 오직 영적인 복만 구해야 한다. 상급에 대한 주장도 기복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2)김성수목사의 주장에 대한 반증
기복 신앙(번영신학)이란 복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을 말한다. 미신적 기복주의는 정통교회도 배격한다. 정통교회 곧 개혁주의 교회는 육신의 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성수목사는 육신적인 것은 모두가 잘못된 기복주의라고 매도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구하는 것은 기복 신앙이 아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부분에 복을 약속 하셨고 육신의 질병의 치료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되어 있다 예수님도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셨다. 구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약속
하시고 축복하게 하셨다. 복과 축복에 대한 기록이 1000회 이상이다. 구약이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구약은 육신의 복만 받고 죽음으로 모두 소멸되었는가? 구약에도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믿고 순종하는 자가 육신적 복을 받은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신28장의 복의 악속은 상상을 초월한다.7 말3:10에는 쌓을 곳이 없도록 주지 아니하나 시험하라고 하셨다. 잠3:9-10“네 재물과 네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다. 민6:23-27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신약 성경에도 재물의 복, 건강의 복 등이 사도들을 통해 얼마든지 약속 되었다.
고후9:6-11에 “이것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빌4:18-19에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갈4:6-9에도 그렇고 히브리서 6장14절에서도“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분명히 육신의 복을 약속하셨다.
육신의 질병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의 환자치료는 이미 언급한바 있고 사도들의 현장에도 많은 부분에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다. 약5:14-16에도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고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일으킨다고 했다.
6)극단적 기복신학의 비판자의 비극
인간은 하나님의 복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우리가 숨 쉬는 것도 하나님이 내리신 복이다. 육신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육신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단 말인가? 육의 의로운 삶은 하늘의 상급이 있다. 육신자체도 하나님의 복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복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환란을 당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복을 받는다. 순교도 복이다. 구원받아 천국가는 복 외에도 육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복으로 존재한다.
하나님의 복을 극단적으로 비판하다보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김성수 목사가 주장한대로 땅의 모든 복을 배격하면 땅에서 속히 떠나야 된다. 살 가치가 없지 않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 받았다. 김성수 목사는 자신이 파놓은 허무주의의 수렁에 바진 곳인지 수년 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살아왔다. 결국 2013년 3월 6일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다. (뉴스엔죠이2014.2.21기사).
공황장애는 극도의 두려움, 불안증, 죽음의 공포 등의 증상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받아야 할 병이 아닌가? 우리 주변에 그리스도인 우울증환자, 정신과적 질환자들이 말씀과 기도로 실제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많이 체험하고 있다.
결론
김성수목사의 설교는 거짓복음이다. 미혹의 음성이다. 많은 성도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서로 전하고 있으나 거짓복음에 속는 것이다. 2017년 9월 여기에 속은 어떤 교회 성도는 담임목사와 교회를 비방하며 대적하는 일로 목사님이 찾아와 만났다. 목사님이 심히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고백을 들었다.
상식이하의 말로 담임목사를 대적하고 있었다. 고 김성수목사의 사상에 미혹된 사람들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교회마다 바른 신앙의 정체성이 교육되어져야 한다.
삼위일체를 말하고 예수 구원을 말하는 것 같으나 잘못된 사람과 단체는 얼마든지 있다. 복음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이름으로 다른 길을 인도하면 악한 것이다.
그의 설교의 내용은 이단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다. 이 설교를 계속 들으면 혼란에 빠지고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또다른 성도를 미혹하는 일을 한다. 김성수목사의 계속 들으면 잘못된 교훈에 세뇌되어 영혼이 병들게 된다. 최소한 개체 교회는 김성수목사의 존재와 사상을 한마디라도 가르치고 교육하면 방어의 영향이 있다. 수많은 이단들이 활개는 치고 또 생겨나는 불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는 새로운 거짓 사상으로 계속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을 속히 간파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마태복음24장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