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경계주일 설교문(참고) 이단대책위원회
고린도전서 15:1-8
받은 것을 지키는 교회
전하는 것을 받고, 또 받는 것을 전하는 것, 이것은 기독교의 특성이다. 기독교는 전하는 것을 받고, 받은 것을 전하는 종교다. 사도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다고 말한다(3절). 여기에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전하는 것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이다. 이 둘은 기독교가 어떤 종교임을 잘 보여준다. 교회와 성도가 하는 일 중에서 전하는 것을 받고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는 곧 믿음의 연속성과 교회의 연속성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연 믿음이 계속 이어질까? 교회가 계속 이어질까? 성도의 믿음과 교회는 받고 전하는 일을 생각할 때 온갖 위협과 위험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의 영향이 크다. 날이 갈수록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우리 가까이에서 득세하고 있다. 다르게 받고 다르게 전하도록 한다. 받은 것을 사람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 전하기까지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경의 실례를 보자. 디모데전서 1장을 보면 믿음에 파선한 알렉산더와 후메내오,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딤전 1:19-20).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는 믿음에서 떠나 귀신의 가르침과 미혹케 하는 영을 좇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딤후 4:1).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을 기쁘게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시 믿다가 믿음을 배반하는 자를 말씀하셨다(눅 8:11-13). 여호수아 24장을 보면 가나안을 정복한 다음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로 언약하고 맹세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사는 동안 하나님을 섬겼다. 이들이 죽은 뒤에는 언약과 맹세를 다 깨뜨렸다. 그래서 신앙의 대와 교회의 대가 이어지지 못하였다(수 24:31). 사사기는 그 이후의 생활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받은 것을 전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와 과정을 거친다. 먼저 받은 것을 알아야 하고 확신해야 한다. 받은 것을 잘 모르고서 전하는 것만 강조하면 안 된다. 또 받은 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 전하면 거기에 힘과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 받은 것은 우리 입술과 우리 생활에서 고백 되어야 한다. 또 받은 것에 굳게 서지도 않고 잘 지키지 않으면서 받은 것을 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을 보면 받은 것을 전하고자 하는 열심과 열정은 있는데 위 단계가 다소 미흡하다. 그래서 이단에 쉽게 흔들리고 미혹을 받는다. 어떻게 해야 받은 것을 잘 전할 수 있을까?
1. 받은 것을 알고 그 가운데 굳게 서는 교회(1절)
받고 전하는 그 내용은 한마디로 ‘복음’이다. 성경은 우리가 받은 것을 ‘복음’이라고 말한다. 1절에 보니 ‘내가 전하는 복음’이라고 했다. 복음의 핵심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를 ‘믿음의 도’(유다서 1:3)라고 말한다. 또 ‘유전’이라고도 한다. 이는 헬라어로 ‘파라도시스’인데 ‘건네다’ ‘건네주다’는 동사에서 나왔다(살후 2:15). 또 교훈(딤전 1:10; 6:3; 딤후 1:13; 딛 1:9)으로 말한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처음에는 낙원에서 계시하시고 족장과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시고 제사와 의식을 통해 예표하시며 마지막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다. 구약의 성도들은 이 복음을 받고 전하였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사도들도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교회와 성도는 시대마다 전해진 복음을 받고 받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위해서 힘을 썼다.
바울은 바로 이 복음, 이미 받고 그 가운데 굳게 선 것이지만 다시 알게 한다고 한다(1절). 교회는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끊임없이 복음을 알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복음을 확신하고 그 가운데 설 수 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한다(딤후 3:15).
받은 것을 잘 전하기 위해서 먼저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워야 한다. 고신교회의 교리표준인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을 통해 바른 교훈과 믿음의 도를 배워야 한다.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고신교회는 진리운동으로 시작했다. 고신총회는 일찍이 표준문서(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교리문답, 소교리문답, 교회정치, 예배모범, 권징조례)를 채택하고(1969년), 교단이념을 확정했다(1976년): “신구약성경과 장로회표준서들에 의한 개혁주의 신학을 따라 믿고 전하고 생활한다.”
2. 받은 것을 믿고 고백하고 축하하는 교회
받은 것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또 받은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성례를 통해 축하해야 한다. 기독교는 신비 종교가 아니다. 신비 종교는 신앙을 비밀히 전수한다. 기독교는 그렇지 않다. 공개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고 전하고 공개적으로 고백한다. 신자는 말과 행위를 통해서 신자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야 한다. 신자는 고백자이고 증인이다.
본문을 보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을 다양하게 행동으로 표현하며 고백한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30절)고 하며,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는 이들에게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34절) 고백한다. 또 사망에 대해서도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5절)고 고백한다.
세례와 성찬은 우리가 함께 받은 것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이 세례와 성찬이 지금보다 더 자주 시행되어야 한다.
3. 받은 것을 지키는 교회
받은 것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받은 것을 굳게 지켜야 한다(2절). 물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지키신다(딤후 1:14). 그렇다고 우리 책임을 핑계할 수 없다. 받은 것을 지키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받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독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서 특히 목사와 장로가 부름을 받았다. 목사와 장로는 ‘감독’이라고 불린다(딤전 3:1). 건축 분야에서 감리, 감독은 중요하다.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지다. 직분자, 특히 목사와 장로가 감독자가 되어야 한다. 나쁜 뜻에서 감시자가 아니다. 교인들이 받은 것을 신앙과 생활에서 잘 지키고 있는지, 자녀를 공예배와 교육에 잘 보내는지, 유아 때 세례받은 자녀가 입교하도록 하는지,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하게 하는지 등을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당회가 영적 감독의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 감독의 일보다는 교회행정과 재정의 일에 치우쳐서 하고 있다. 받은 것을 잘 지키기 위해 목회자와 함께 장로와 장립 집사와 권사는 정기적으로 교인을 돌아보며 감독해야 한다.
고신교회 지난 70년은 받은 것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거스르는 이단과 싸웠다. 받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가르치는 것과 함께 이를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책망하는 일을 병행하는 것이 성경의 교훈이다(디도서 1:9).
4. 받은 것을 가르치고 전할 사람을 세우는 교회
받은 것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받은 것을 전할 충성스러운 사람을 세워야 한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후서 2:2). 즉 목사 후보생과 교사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들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충성스런 사람들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5. 결론
족장과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교회가 전한 것을 우리가 받았는가? 그 가운데 서 있는가? 받은 것을 배우고 확신하는가? 받은 것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믿고 굳게 지키고 있는가? 또 전하고 있는가?
받고 전하는 것은 온 교회가 하는 일이다. 몇몇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전한 것을 잘 받고 받은 것을 잘 전하므로 우리 믿음과 우리 교회가 이어지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