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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전쟁 3


• 본문: 출애굽기 32:1-29

• 제목: 하나님의 군대가 금송아지를 섬기다


서론

출애굽은 언약 백성으로 하여금 죄로부터의 승리를 직접 경험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바로의 압제와 폭정은 사단의 권세 아래 있는 인간의 죄와 비참을 알리는 본보기입니다. 그러니 애굽에서의 탈출은 사단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요, 하늘나라 백성들의 영광스러움을 알려주는 교과서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밤에 애굽의 장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복수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출 12:41).

그렇게 군대를 준비시킨 하나님께서는 그 군대에게 무기를 제공합니다. 시내 산에 이른 백성들을 만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 맺음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언약을 맺으면 그 언약으로 인해 쌍방 간에 언약적 책무가 주어집니다. 특히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언약을 맺으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도움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책임을 집니다(창 14:13, 수 9:15, 10:6-14 삼상 11:1-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음으로 이 책임을 자발적으로 기꺼이 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가장 강력한 능력과 힘을 가지신 여호와의 도움과 돌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언약 맺음은 하나님의 군대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서로 교제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언약 맺음을 예배라 부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언약 재현의 현장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 예배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광야교회가 예배를 바르게, 풍성하게 드리면 드릴수록 강력해집니다. 반대로 교회가 예배를 소홀히 하고, 타락시키면 군대로서의 힘은 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이릅니다. 예배는 교회의 무기이며 생명입니다.

모세는 완고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했습니다. 광야를 지나 시내 산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백성을 대표하여 구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40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은 친히 증거의 두 돌 판에 계명을 쓰셨습니다(출 31:18, 32:15-16). 모세는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의 집을 어떻게 건축할지도 들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법과 성막 건축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동안 교회는 죄인의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자리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타락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가 파괴한 예배에 대해 듣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제와 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 하나님께서는 예배 파괴자들을 심판하심으로 자신의 군대를 회복시켰습니다.

1. 변질된 예배 대상

2. 중보자의 청원

3. 예배회복의 길


본론

1. 변질된 예배 대상

모세가 시내 산에 오르면서 장로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출 24:14). 백성들은 모세의 권면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다리지 못했고, 결국 아론을 앞세워 죄를 지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아론 역시 인내하지 못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는 구속역사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백성이 흩어지자 ‘기다리라’는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제사를 드림으로 망령되이 행하였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삼상 13:5-14). 백성들도 모세의 옴이 더디게 되자 기다리지 못하고 아론을 앞세워 죄를 짓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을 가집시다. 바로 그 신앙이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백성들의 요구에 아론은 적극적으로 호응합니다. 금귀고리를 가져오라 하였고, 그것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으며,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았고, 여호와의 절일을 선언했습니다. 다음 날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더욱이 그 금송아지를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을 대체했습니다. 그냥 대체한 것이 아니라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한 “신”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신”은 엘로힘, 곧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백성들은 송아지를 만들고 그 송아지를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쌓았고, 절기를 지켰으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곧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경고하길, 광야교회가 우상숭배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시 106:19-20)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행 7:41)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7)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린 후에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 놀더라”고 했습니다(6절). 먹고 마신다는 말씀은 두 언약 당사자 간의 언약이 온전히 맺어졌다는 일종의 인준행위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언약서를 백성 앞에서 낭독한 후에 모세와 아론,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장로 70명이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출 24:9-11). 이는 신약의 관점에서 일종의 성찬과 같습니다. 그러니 금송아지를 섬긴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 부르며,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 했고,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심으로 새로운 언약 맺음을 확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새로운 예배 대상을 스스로 만들고 그와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서로 한 몸이 되었다는 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한 몸이었던 백성들이 이제 금송아지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은 먹고 마시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일어나서 뛰 놀았습니다”. 뛰 놀다는 말씀은 아주 독특한 용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춤을 추다 정도의 이미지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용어가 다른 성경에서 쓰인 사례를 보면, 모세가 왜 이들의 행위를 이런 용어로 기록했는지 쉽게 납득이 됩니다. 창세기 17:17, 18:12,13, 19:14, 21:9, 26:8, 39:14절은 이 용어를 “웃다”, “농담으로 여기다”, “껴안다”, “희롱하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성찬을 나누며), 금송아지를 껴안고, 웃으며 희롱함으로 그들 스스로 즐기는 것입니다. 곧 교회는 우상에게 예배하면서 그 행위를 즐깁니다.

아론을 필두로 언약 백성들은 겉으로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상을 예배했습니다. 금송아지만 제하고 가만히 살피면, 마치 신실한 예배 자들처럼 보입니다. 그곳에는 절기도 있으며, 단에서의 제사도 있고, 성찬도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즐거워합니다. 가짜 예배를 즐깁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본질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찬을 행하고, 기도와 찬송을 하고, 예배를 즐기는데, 예배의 대상이 계시된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는 바로 그 하나님이 맞습니까? 혹 우리 마음으로, 경험으로, 종교적 열정으로 만들어 놓은 다른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단은 예배를 공격함으로 교회를 타락시킵니다.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구원과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부자 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성공시켜 주시는 하나님, 좋은 직장과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시는 하나님, 사업을 성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1계명과 2계명을 어긴 예배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파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중보자의 청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산 위에서 모세에게 율법의 두 돌 판을 친히 기록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막 건축의 설계도도 주셨습니다(출 25:9, 31:18). 하나님과 모세의 40일은 영광스럽고 복된 나날이었습니다. 그 기간은 하늘나라가 땅 위에 아로새겨지는 역사의 전환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광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땅 위에 펼쳐졌습니다. 하늘나라를 건설해야 될 백성들이 냄새나는 인간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 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 사실을 상세히 알려줍니다.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7절) 백성이 부패했다는 말씀은 창세기 6:12절과 17절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창세기 6:12절에서는 땅이 “부패했다”고 했으며, 17절에서는 “멸절하다”는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곧 금송아지를 만든 백성들의 부패가 노아시대의 사람들의 부패와 같으며, 또한 노아시대 사람들이 홍수로 멸절되었듯이, 시내 산 앞에 있는 이 백성들도 결국 부패하여 ‘멸절’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의 죄악을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라고 했습니다. 실로 광야교회는 참된 예배를 파괴시켰습니다. 하나님만을 예배해야 될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만들고 그것을 예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들이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도 했습니다.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는 말씀은 다른 성경에서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도 했습니다(신 9:13, 31:27).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표현은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백성들에게 붙여진 판결문과도 같습니다(대하 30:8, 렘 17:23, 행 7:51).

결국 여호와께서는 이 백성을 진멸하고 모세로 큰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10절).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모세의 간청은 크게 세 가지 내용입니다. 첫째, 주님의 백성에게 진노하지 말라는 청원입니다(11절). 둘째,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것이라 합니다(12절). 셋째, 조상들과 맺으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13절).

세 가지 모세의 청원은 하나님의 영광과 사역과 관련됩니다. 내용은 세 가지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 한 가지입니다.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지켜달라는 청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 큰 민족을 이루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며,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겠다던 바로 그 약속. 백성은 불충하고 불순종하며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영광스럽고 불변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약속을 지켜달라는 청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언약의 중요한 한 가지 성격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이 맺은 언약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언약은 쌍방 간에 맺어졌지만 결코 백성들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언약을 지킵니다. 그래서 언약을 하나님의 맹세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신 4:31, 29:10-13, 겔 20:1-5).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에게 맹세하였으니 그 약속은 결코 취소되는 법이 없습니다. 언약은 삼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모세는 바로 이 하나님의 언약에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청원을 듣고 뜻을 돌이켜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14절). 모세의 중보사역이 백성들의 죄를 덮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중보사역은 이 사건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중보사역은 자기 동족을 압제하는 애굽 사람을 죽일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출 2:11, 행 7:20-25).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릴 때에도, 홍해를 건널 때에도(출 14:15),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할 때에도(출 15:25), 르비딤에서도(출 17:4),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출 17:11) 모세는 항상 하나님과 백성의 중보적 사역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의 중보적 사역을 통해 오실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의 신비를 깨닫습니다.

예배의 대상을 바꾸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 하며 찬송하며, 제사하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신 백성들의 죄악을 모세는 기도함으로 사라지게 했습니다. 진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 2:6-7). 그렇게 사람과 같이 대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언자이십니다(요일 2:1). 그 대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여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 교회입니다(롬 3:24). 주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위해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십니다(요 17:9). 그러므로 예배를 파괴시키는 자들이 다시 돌이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면, 그들의 예배를 회복시키시고, 그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즐거이 교제하십니다. 교회는 매 주일마다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영광스러운 예배를 회복하며 맛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1계명을 어기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2계명도 어기는 자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주일 공예배 시간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있어 공예배를 결석하는 이들이 있다면, 우리는 1계명을 어긴 자들입니다. 동시에 예배는 드리지만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며, 세상의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하다면, 우리는 2계명을 어긴 자들입니다.

우리는 종종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예배해야 하는데 세상의 좋은 것들을 섬기고, 하나님보다 땅의 것을 더 높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닌 것을 마치 하나님인양 예배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맙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셔서 우리의 범죄를 간과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된 현장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한 우리를 불러 다시 언약 관계를 회복시키는 치료의 현장입니다. 예배는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독수리처럼 새롭게 비상할 힘을 얻는 능력의 현장입니다. 이 모든 예배에 우리의 영원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롬 8:26). 삼위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가 회복되는 복을 누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3. 예배회복의 길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한 백성들을 진멸하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듣고 모세는 간청했습니다. 모세의 중보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모세는 백성들의 형편을 보기 위해 산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려 있었습니다. 백성들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여호수아가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노래하는 소리라고 교정했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와 그 앞에서 춤추며 뛰노는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두 돌판을 던져 깨드렸습니다.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물에 뿌려 그 백성들이 마시도록 명했습니다. 아론을 다그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들었습니다. 아론이 백성들을 방자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수의 조롱꺼리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편에선 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때, 레위지파 사람들이 모세 앞에 섰습니다. 모세는 레위 자손에게 칼로 범죄한 자들을 죽이라 명했습니다. 그날 삼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대신하여 금송아지에게 예배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진멸 대신에 그나마 3천명의 목숨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금송아지 가루를 탄 물을 마심으로 죄 용서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두 돌판은 깨뜨려졌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행동에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발견하며, 동시에 회복의 길을 깨닫습니다.

모세가 시행한 몇 가지 행동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우리에게 회복의 길을 보여줍니다. 첫째, 모세는 언약의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는 언약의 파기를 선언한 행위입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기 백성들이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선언하는 행동입니다. 계명의 돌판이 깨진 것은 마치 계약서를 찢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가 깨어졌음을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현재의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어떤 형편에 놓였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요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온전한 예배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예배회복의 지름길입니다.

둘째로 모세는 금송아지를 간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먹입니다. 이 모습은 너무나 이상한 행동입니다. 모세의 처방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먼저는 너희가 금송아지 우상과 연합되어 우상숭배자들이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무엇인가를 먹는 행위는 그 먹는 것과 먹는 이가 서로 하나가 되었다는 표입니다. 레위기에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가르침이 바로 이것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먹는 문제를 매우 자세히 가르칩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저 금송아지를 예배했으니 너희 모두가 금송아지와 같이 되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하나님과 언약이 깨어지고, 우상과 한 몸이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두 번째로 모세의 이 명령은 의심을 해결하는 법과도 관계 됩니다. 민수기 5:11이하에는 아내의 부정에 대한 남편의 의심을 해결하는 법을 소개합니다. 그중 한 절차가 그릇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물에 타고, 이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씁니다. 그리고 그 글자를 물에 빨아 넣고 아내에게 마시게 합니다. 만약 아내가 범죄 했으면 죽을 것이지만 정결하다면 오히려 임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의심을 해결하는 법이라 합니다. 모세가 금송아지를 간 가루를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먹인 이유는 바로 이 의심을 해결하는 법의 시행입니다. 곧 금송아지 숭배에 참여한 자들은 죽을 것이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살 것입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거짓 예배를 참 예배인양 타락시킨 자들의 면면이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을 호출합니다. 레위 자손들이 나왔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칼을 들고 진을 왕래하면서 권징을 시행하라 합니다. 결국 3천명이 그날 죽었습니다. 죄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거짓예배의 범죄는 치료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들을 회복시키기 위해 몇 가지 절차를 제시하셨습니다. 먼저 돌판을 깨뜨림으로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유형의 범죄인지 알려줍니다. 이는 은혜입니다. 교회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의 판단을 정확하게 듣는 것이야말로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다음으로 그 범죄의 성격을 명확히 합니다. 금송아지를 간 가루를 물에 타서 먹음으로 그 백성이 지은 범죄가 우상과 하나가 되었으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공동체 가운데 누가 범죄한 백성인지 가려냅니다. 의심을 해결하는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가 바로 그러합니다. 교회가 예배를 타락시키는 일에는 반드시 그 일에 앞장 선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죄의 종이 되어 교회로 하여금 죄를 짓는 일에 빨리 이르도록 한 이들을 가려내시는 것이 회복의 다음 단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죄를 지은 자들을 죽임으로 죄 자체를 수술합니다. 환부를 잘라내어 몸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곪아 있는 종기를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갑니다.

예배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를 타락시키는 일은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 예배를 파수하는 일에 얼마나 힘을 쏟아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제시하는 회복의 길을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걸어가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예배와 관련하여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맞는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면서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의 욕망을 섬기고 있는지 않은지? 우리의 예배생활을 살펴봅시다.

이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 깊은 교제를 나우어야 할 시간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과 연합한 일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의심을 해결하는 법처럼, 우리 안에 잘못된 예배 관행과 습관을 찾아냅시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잘못들을 성령의 검으로 잘라냅시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공격합니다. 교회 밖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우리 예배를 공격합니다. 최근 코로나로 세상의 기준이 교회의 예배 안으로 들어온 이상한 용어가 있습니다. 곧 “비대면 예배”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공예배는 결코 “비대면 예배”일 수 없습니다. 공예배는 비대면, 대면으로 나눌 수 없습니다. 공예배는 오직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나는 것뿐입니다. 세상이 사용한다고 교회가 따라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다만, 우리가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각 당회가 공예배를 모든 성도들이 모여 드리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공예배를 소수의 성도들만 모여 드리자고 결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코로나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기억합시다. 이로 인해 우리는 공예배에 엄청난 결핍을 체험하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공예배의 결핍을 허용하셨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의 귀중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그동안 우리가 예배를 경홀히 여긴 일에 회개하며 눈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와 성도들이 해야 될 첫 번째 일입니다. 형제들을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야 될 일이 아닙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사단이 우리의 예배를 여러 방면에서, 여러 모양으로 타락시키고 공격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합시다. 지금도 예배전쟁은 계속 중입니다. 이 예배전쟁에서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됩시다. - 아멘 -



•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군대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입니까?


2.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딤을 보고 아론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겼습니다. 다음 세 본문(시 106:19-20, 행 7:41, 고전 10:7)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3.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 뛰 놀았습니다. “먹고 마시며 뛰 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금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한 이스라엘을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다음 성경구절과 연결하여 생각할 때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대하 30:8, 렘 17:23, 행 7:51).


5. 범죄한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중보 합니다. 이 면에서 모세는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은 어떠합니까?


6. 모세가 언약의 돌판을 깨뜨린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7. 모세가 예배를 타락시킨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행한 세 가지 조치는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8.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교회와 나의 예배가 어떠한지 살펴보고, 연약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그리고 그 해결점이 무엇인지 서로 의논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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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1년 전체 설교문) file kosin 2021.04.27 766
공지 십계명을 통해 본 합당한 예배(1년 전체설교문) file kosin 2021.01.04 838
공지 제70회 총회(2021년) 공동기도문과 실천사항 file kosin 2021.01.04 574
공지 2021년 총회 주제 모범설교문(공지) kosin 2020.12.22 1133
21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3(나귀를 타시고 찬송을 받으신 그리스도 막 11장 1-11절) file kosin 2021.03.17 453
20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0(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예배, 창17:9-14 행2:43-47) file kosin 2021.03.05 473
19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9(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예배, 느8:1-6 딤후2:1-2) file kosin 2021.03.05 438
» 예배전쟁 3(하나님의 군대가 금송아지를 섬기다 출32장) file kosin 2021.02.25 451
17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3(옮겨다니는 하나님의 집, 민 10장 11-13, 28, 33-36절) file kosin 2021.02.18 461
16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8(감사가 향연처럼 올라가는 예배, 사56:6-8 딤전2:1-2) file kosin 2021.02.08 466
15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7(새 노래가 흘러 넘치는 예배, 출15:1-5, 고전14:26) file kosin 2021.02.08 487
14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6(고백과 율법이 살아있는 예배, 신 4:10-14, 롬 10:10-15) file kosin 2021.01.26 328
1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2(성막 건축 명령과 합당한 예배, 출 25:8-9) file kosin 2021.01.25 360
12 예배전쟁 2(니므롯의 반역, 창 11장) file kosin 2021.01.21 382
11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2(말씀이 회개와 회복을 일으킨다, 느8:1-12) file kosin 2021.01.18 338
10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5(죄고백과 사죄선언이 있는 예배, 요20:19-23, 약5:13-18) file kosin 2021.01.15 337
9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4(하나님의 임재가 넘쳐나는 예배시작 시124:1-8, 롬1:1-7) file kosin 2021.01.15 337
8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3(예배 직전에 있는 일들, 시22:22-31, 히10:19-25) file kosin 2021.01.08 347
7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2(예배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히12:18-24, 시122:1-9) file kosin 2021.01.08 359
6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 예배 1(예배하는 교회의 일상생활에서의 승리, 대하 20:1-30) file kosin 2020.12.22 657
5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품위있게 질서있게 그리고 덕스럽게, 고전 14:26-33, 롬 13:11-14) file kosin 2020.12.22 577
4 십계명을 통해 본 합당한 예배 1(십계명과 예배, 출 20:1-2, 신 7:5-8) file kosin 2020.12.22 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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