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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전쟁 4


• 본문: 여호수아 6:1-21

• 제목: 예배와 정복전쟁


서론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에 도착한 언약 백성들은 드디어 가나안 점령을 시작합니다. 여리고로 두 정탐꾼을 보내 그 땅을 살피게 했습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은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출발해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 강 가에 진을 쳤습니다. 삼일 후 언약 백성들은 요단 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했습니다. 백성들은 길갈에서 두 가지 거룩한 예식을 행했습니다. 할례와 유월절입니다.

두 가지 예식을 행한 후 드디어 여리고 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언약 백성들의 여리고 성 진격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전쟁의 모습이 아닙니다. 전쟁을 하려면 무기를 들고 군사들이 작전을 세워 성을 공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순례자들처럼 보입니다. 비록 무장한 이들이 대열의 앞과 뒤에 위치했지만 누가보아도 그 행렬은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의 대열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러한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곧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대 원리를 배우겠습니다. 특별히 예배가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며, 하나님 나라 건설의 기초임을 살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와 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제: 교회는 예배의 능력으로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1. 앞서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2. 예배를 통해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본론

1. 앞서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성도들이 살아가면서 가장 불안할 때가 언제일까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부지런히 살던 성도가 갑자기 두려움과 초조감에 휩싸이고 불안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난이나 핍박으로 인해 찾아오는 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실까? 나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해하시고 도움의 손길을 베푸실까?”라는 의심이 들 때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의심에 괴로워합니다. 신앙이 굳건한 이도, 그렇지 못한 이도,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때때로 의심에 사로잡힙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풀리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며 도우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계획한 일이 실패하고 뭔가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경건생활이 스스로 만족할 정도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며 지켜주신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경건생활이 스스로의 기준에 한참 모자라면 마치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 같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난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의 오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함을 따라 생각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 모두를 사랑하시고 아끼시며 늘 동행하십니다. 자녀이기에 사랑하며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떠난 것처럼, 나와 동행하시지 않으시고 멀리계신 것처럼 생각하는 성도들에게 오늘 말씀은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여리고 앞에 다다른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 고무적인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먼저는 여리고 성의 모습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 곧 언약 백성들 때문에 여리고의 성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고, 아무도 왕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는 말씀은 공포에 싸인 여리고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으르렁 거리는 사자 앞의 사슴처럼 부들부들 떠는 여리고입니다.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덫에 걸린 짐승 같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읍이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문을 잠그고 꼼짝하지 않는 모습은 기이하게 보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 신납니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2절) 하나님께서 이미 여리고를 자기 백성에게 주시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보다 더 감동적인 말씀은 없습니다. 성을 정복하기 위해 준비하여 먼 길을 달려온 장수에게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을 네 손에 주겠다고 말씀하시니 얼마나 큰 힘이 되며 용기를 얻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보이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보다 더 많은 일을 자기 백성들을 위해 이미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벌써 자기 백성들보다 앞서서 무언가를 하셨습니다. 그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여리고로 두 정탐꾼을 보냈을 때 라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기 백성보다 앞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시고, 아모리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제거하고 그 백성들을 전멸시킨 소문이 여리고 사람들의 간담을 녹게 했습니다(수 2:9-11). 능력의 하나님에 대한 소식은 라합으로 하여금 자기 성을 배반하고 언약 백성으로 돌아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보다 먼저 여리고 성을 공략하셨습니다.

요단을 건너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의 물도 마르게 하셨습니다(수 3:14-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단 강이 마르고 자기 백성이강을 안전하게 건너는 일도 하나의 표라고 여호수아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언약 백성들 앞에서 반드시 쫓겨날 징표입니다(수 3:10). 실제로 요단 강 물이 마른 소식은 가나안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갔습니다(수 5:1). 미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이것이 모두가 아닙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칼을 들고 여호수아를 만났습니다(수 5:13-15).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 싸우시겠다는 표입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칼을 빼어 들었다는 말씀은 여리고 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자기 백성들 보다 앞서서 일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공격전에 자기 백성들의 신앙을 확고하게 하셨습니다. 언약 백성들은 길갈에서 두 가지 큰 성례를 행했습니다. 하나는 할례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할례는 약속을 믿는다는 표입니다(창 17:11). 유월절은 승리의 표입니다(출 12:12-14). 여리고 성 공격을 목전에 두고 약속을 굳게 잡으며, 승리의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의 신앙을 견고히 하셨습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보다 앞서서 일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강하게 하셔서 정복전쟁을 능히 감당하도록 하십니다. 정복전쟁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여리고 성처럼 난공불락의 요새가 많습니다. 교회를 공격하는 외부적인 요인부터 내부적인 요인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교회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하는 무리들. 복음의 정신을 희석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세상의 온갖 사상들. 곧 물질 만능주의, 성공주의, 과학과 이성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상들,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허무는 페미니즘, 예술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메스미디어를 장악한 폭력과 성적 타락 등등.

교회 내부로부터 불어오는 공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다고 말하는 혼합주의. 물질적 축복만을 강조하는 성공 복음.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은 무시하고 오직 수적 성장만 추구하는 성장주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는 비평학적 이론들. 교회의 세속화 등등.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우뚝 서 있는 장벽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천연의 요새 여리고 성을 오직 자기 백성을 위해 미리 무너뜨리기 위해 작업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시다. 특별히 예배를 무너뜨리는 온갖 세력으로부터 교회를 지키시는 삼위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하나님은 우리 앞서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십니다.


2. 예배를 통해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 점령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그 방법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매우 이상합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성을 하루에 한 번, 일곱 번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고 하셨습니다. 언약궤를 매고 행진하라고도 했습니다. 백성의 이러한 모습은 전쟁을 하자는 것인지 시위를 하자는 것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는 정복전쟁의 원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우리 신앙의 신비도 알려줍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달된 명령은 간단합니다. 성을 하루에 한 번,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는 것입니다. 성을 돌되 무장한 군인이 앞과 뒤에 서고, 중앙에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매고, 언약궤 앞에서 일곱 제사장이 각각 양각 나팔을 불면서 행진합니다. 백성들은 육일 동안 침묵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곱 째 날에는 나팔을 잡은 제사장들이 일곱 번째 돌고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크게 소리쳐야 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입니다(출 25:22). 그 안에는 언약의 말씀을 새긴 돌 판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언약궤의 행진은 여호와 하나님의 행차입니다. 왕의 행차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궤가 떠날 때에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외쳤고, 궤가 멈출 때에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민 10:33-36). 언약궤의 행차는 대적들을 흩으시는 하늘 군대의 질주입니다. 동시에 언약궤는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강림하셔서 자기 백성과 교제하시는 현장입니다. 여리고 성 앞에 전능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재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과 교제하십니다. “걱정 말아라 내 백성들아! 너희 눈에 보이는 저 높고 두려운 성을 이제 내가 허물어 너희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언약궤가 중심이 된 행렬은 하나님과 자기 백성이 만나는 현장입니다. 원래 언약궤는 성막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일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막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짐승이나 곡식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성막 밖으로 나왔습니다. 누구나 어디서나 언약궤를 마주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 모두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의 예배에서 완성되었음을 압니다. 여리고 성 앞 평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예배현장이 되었습니다.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일주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의도적으로 일곱을 강조하셨습니다. 칠일 동안의 행진은 창조의 칠일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안식일이 생각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애굽에서의 탈출, 곧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된 일을 기념합니다(출 20:11, 신 5:15). 오늘 본문은 마지막 일곱 째 날이 안식일인지 아닌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칠일 중 하루는 틀림없이 안식일입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마지막 날이 안식일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왕국 건설입니다. 창조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안식하심으로 말씀으로 창조하신 왕국을 보고 즐겼습니다. 그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날은 왕이 스스로 왕국을 만드시고 왕의 자리에 앉으신 왕위 즉위식과도 같은 날입니다. 창조에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작정이 실현되었음을 확정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람이 땅 위에서 왕이 되어 이 하나님의 안식을 더욱 확대해야 될 책임을 졌습니다.

출애굽은 사람의 범죄로 중단된 하나님의 왕국 건설의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증거의 노래가 바로 이 면을 잘 드러냅니다. 모세는 창세기 1:2절에 사용된 바로 그 “혼돈”과 성령님의 “운행”을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적용하여 사용했습니다(신 32:10-11). “황무지”와 독수리의 “너풀거림”이 “혼돈”과 “운행”이라는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성을 칠일 동안, 일곱 사람의 제사장이,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을 돌게 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보좌인 언약궤에 앉으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교제함으로 대적을 흩으시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 건설의 목표인 영원한 안식을 향하여, 우레 같은 소리로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팔을 부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의도를 가장 멋지고 적실하게 가르치는 표입니다. 안식일은 온 백성이 정기적으로 하나님을 뵈는 날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를 통하여 또다시 예배를 강조합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대표적인 표입니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나팔 소리로 강림하셨습니다(출 19:16-19). 시내 산에서 나팔 소리와 함께 임재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언약 맺음은 예배의 원형입니다. 또한 나팔을 부는 행위는 절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매년 7월 1일은 이스라엘의 나팔절입니다(레 23:23-25). 그날은 안식일인데 나팔을 불어 기념합니다. 특히 희년에는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이 이 절기를 기념하게 합니다. 희년은 자유의 날입니다(레 25:8-17).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인데, 이 단어는 숫양의 뿔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팔소리는 전쟁 신호입니다. 실제로 미디안 다섯 왕을 죽일 때에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팔을 불고 전쟁을 시작하며, 바로 그 전쟁에서 거짓 선지자 발람도 죽였습니다(민 31:1-12). 이렇듯 나팔소리는 대적들을 진멸하고 백성들이 언약을 성취하도록 독려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현장입니다. 예배는 전쟁에서의 승리의 근원입니다.

이렇듯 나팔을 부는 행위와 관련된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이것이 하나님과 자기 백성 사이에 긴밀한 교제 곧 예배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표요, 실행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모든 내용을 한꺼번에 알려주는 본문이 민수기 10장입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백성을 모으고, 행진하고, 대적을 공격합니다. 또한 절기와 월삭을 지킬 때에 번제물과 화목제물 위에 나팔을 붑니다(민 10:1-10).

그러므로 여리고 성 앞에서 언약궤가 행진 대형의 중심에 자리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중에 계신다는 정도가 아니라 언약을 이루겠다는 선언이요 확증입니다. 일곱 제사장, 칠일 동안의 성 돌기,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번 돌기, 매번 나팔 소리와 함께 행진하는 일. 이 모든 행위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이 맺은 언약을 즐김이며 누림이요, 자기 백성들만이 누리는 풍성한 교제입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이 독특한 행렬을 예배로 이해하고 나면 육일 동안의 침묵과 마지막 날의 함성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여호와께서는 육일 동안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십니다. 언약궤, 일곱 제사장, 일곱 나팔, 칠일, 일곱 번 돌기.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듣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째 날(우리는 이날이 안식일을 상징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감격해 하며 화답합니다. 그것이 백성들의 함성 곧 화답 찬양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는 교회가 힘을 갖는 원천이요 능력의 동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3가지 은혜의 방편, 곧 말씀, 성례, 기도를 허락하셨습니다. 예배에는 바로 이 은혜의 방편들이 한꺼번에 주어집니다. 비록 오늘 본문인 여리고 성 앞에서의 독특한 행진이 구약적 예배 모습을 담고 있지만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격려, 그리고 예배의 역동성을 깨닫게 합니다.

예배 시간은 지루한 시간이 아닙니다. 잠시 하나님께 인사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눈도장을 찢고 돌아가는 시간도 아닙니다. 더구나 목사님과 장로님에게 ‘저 예배 참석 했어요’라고 확인 받는 시간도 아닙니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기억나게 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는 언약이 재연되게 합니다. 예배는 그 약속을 이룰 능력을 베푸시는 현장입니다. 예배는 대적을 흩으시는 말씀의 검과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의의 흉배와 진리의 띠를 두르게 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이런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고, 복음을 힘 있게 전파하려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려고 수고하며 땀 흘리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 편안한 환경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리고 같은 거대한 장벽이 우리를 가로 막고 기다립니다. 그때,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안개처럼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안개 속으로 한걸음 내딛읍시다.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내딛은 만큼 보일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고 낙망 될 때 예배에 집중합시다. 결코 예배만큼은 양보하지 맙시다. 주님의 날에 온 교회가 함께 예배하는 바로 그곳에 언약주 하나님은 강림하시고, 원수를 흩으시며, 자기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이룰 힘을 주십니다. 예배하는 성도들이야말로 가장 복된 이들입니다. 이 복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아멘-



•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보다 앞서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서 역사하신 내용을 정리해 보세요.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보다 앞서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통해 현재 우리 교회와 나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3.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한 여리고 성 점령 방법을 간략하게 정리해 봅시다.


4. 언약궤는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언약궤는 예배와 어떻게 연결됩니까?


5. 일곱이라는 숫자가 특별히 많이 언급된 이유를 창조와 출애굽과 연결하여 생각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6. 나팔은 어떤 경우에 불며, 각각의 경우에 나팔을 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것이 오늘날 예배와 어떻게 연결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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