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6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예배전쟁 6


• 본문: 열왕기상 12:25-33

• 제목: 벧엘과 단에서


서론

초대 왕 사울을 시작으로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이스라엘은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다윗은 가나안에 거하는 족속들을 평정함으로 명실 공히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대적들도 정리하여 평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삼하 7:1).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아브라함이 이삭을 예물로 바친 언약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대하 3:1). 지혜의 왕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성전을 건축하여 땅 위에 하늘나라를 아로새겼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칠년 동안 건축했고, 이후 십 삼년 동안 왕궁을 건축했습니다(왕상 6:38, 9:10). 왕의 지혜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초석이며, 그 나라의 영광스러움을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 왕은 각각 사십 년을 통치했습니다. 세 왕의 통치 백 이십 년, 특히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팔십 년은 하늘과 땅이 하나 되고, 땅 위에 하늘의 왕국이 건설되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습니다. 그 절정의 시기에 사단은 가만히 왕국 안에 범죄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찬란한 시기에 중요한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왕의 제도를 가르쳤습니다.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친 왕과 관련된 제도를 기억하며, 그 규례를 따라 왕을 세워야 했습니다. 이방인은 결코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합니다(신 17:15). 왕은 말(馬)을 많이 두거나, 은금을 의지해도 안 되며, 많은 아내를 두어 마음이 미혹되어도 안 됩니다(신 17:14-17).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복사하여 항상 옆에 두고, 그 율법을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신 17:18-20).

솔로몬은 많은 아내를 두었는데, 대부분 이방 여자들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후궁이 칠백 명, 첩이 삼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결국 왕은 여인들에게 마음이 빼앗겨 아스다롯과 밀곰을 좇는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왕상 11:1-8). 솔로몬의 우상숭배를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경고하셨지만 왕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왕상 11:9-10).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분열시킬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솔로몬 왕의 통치 시기에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고, 왕의 아들 때에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를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명료하게 하나님은 계시하셨습니다. 아히야는 자신의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 중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면서 이스라엘 열 지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왕상 11:26-40).

솔로몬이 죽자 이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지만 유다 지파를 다스리게 되었고, 여로보암은 나머지 열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나뉜 북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여로보암의 행적에 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여로보암의 행적을 통해 예배와 직분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예배의 파괴가 교회 타락의 주범임을 배우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와 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제: 우리는 예배와 직분을 파수해야 합니다.

1. 예배를 파괴한 여로보암의 범죄

2. 직분을 파괴한 여로보암의 범죄


본론

1. 예배를 파괴한 여로보암의 범죄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열 지파를 다스리는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왕상 12:20). 그는 이십 이년 동안 왕 위에 앉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왕상 14:20). 왕이 되자 그는 세겜을 건축하여 수도로 사용하다가 후에 요단 강 근처 부느엘을 건축하여 그곳에서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여로보암은 능력 있는 왕이었고 정치적 감각도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왕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려고 세겜과 부느엘이라는 두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사실 세겜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 즉위식을 행한 곳으로(왕상 12:1),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 위치한 역사적 장소입니다. 여로보암은 유다 왕 르호보암이 왕위 즉위식을 행한 도시를 자신의 수도로 삼음으로 이 지역의 왕이 자신임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이곳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장소입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선언한 곳이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최초로 제사를 드린 곳입니다(창 12:6-7). 야곱은 이곳에 모든 우상을 묻기도 했습니다(창 35:1-4). 또한 이곳은 모세를 통하여 언약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소로 지정된 곳입니다(신 27장). 무엇보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며 마지막 고별 설교를 행한 곳입니다(수 24:1).

여로보암은 우선 세겜을 통해 왕국을 다스리면서 다시 요단 강 동편, 얍복 강 가까이에 부느엘을 건축하여 통치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요단 강 동편의 통치를 강화함으로 동쪽에 있는 다른 국가들의 공격에 대한 대비와 동시에 영토를 확장하려는 의도로도 이해됩니다.

이렇게 여로보암은 준비된 왕처럼 보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이스라엘 열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잘 이해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함과(왕상 11:37)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나라를 다스릴 때 받을 복이 무엇인지도 여로보암은 알았습니다(왕상 11:38-39).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으로 왕이 되었고, 어떻게 왕국을 다스려야 될지도 이미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렸습니다. 그의 마음은 염려와 걱정으로 온통 가득했습니다. 믿음으로 채워져야 할 마음이 갑자기 의심으로 바뀌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왕상 12:26-27).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임을 여로보암은 망각했습니다. 처음 왕이 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였지 그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서 열 지파를 분리시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인데, 여로보암은 그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이렇게 됩니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시며, 영광스러운 직분을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잊지 않은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실합니다. 그러나 직분을 주신 분이, 혹은 나에게 직책을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환경을 따라갑니다.


여로보암은 왕의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에 다른 존재가 자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여로보암의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사람, 곧 백성들이 앉았습니다. 여로보암은 급기야 백성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형편을 성경은 말하길,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백성들이 두려워졌습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할 왕이 백성들이 두려워졌습니다. 신명기 17장에 의하면, 왕은 여호와의 율법을 복사해서 옆에 두고, 그 율법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아야 된다는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며 두려워해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로보암은 이러한 신명기 말씀을 잊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에게서 백성에게로 옮겨가자 근심과 걱정이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결국 왕은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마음의 염려가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죄가 싹이 나서 열매를 맺습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경배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하는 가짜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비교되는 가짜 제단도 만들었습니다. 산당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시내 산에서 아론을 중심으로 금송아지를 만든 것과 같은 우상숭배의 죄에 빠졌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그 금송아지를 애굽에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 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후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어 아내를 선지자에게 보냈을 때, 선지자 아히야가 그 여자에게 여로보암의 잘못이 무엇인지 낱낱이 알려줍니다. “네 이전 사람들보다도 더 악을 행하고 가서 너를 위하여 다른 신을 만들며 우상을 부어 만들어 나를 노엽게 하고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도다”(왕상 14:9) 여로보암이 지은 범죄의 성격이 여기에 모두 다 나왔습니다. “우상을 부어 만들었다”고 했고, “나를 노엽게 했다”고도 했으며, “나를 네 등 뒤에 버렸다”라고도 했습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범죄의 본질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의 작품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주신 성막처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역시 하나님께서 내신 작품입니다. 설계도는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습니다(출 25:9, 대상 28:19). 성전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이 땅에는 없습니다. 성전은 유일한 집입니다. 전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성전의 구조와 기구들도 유일합니다. 이 땅에 성전을 대체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전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만나시며, 성전을 통하여 죄 사함이 선포되며, 성전에서 모든 절기와 제사가 드려집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최고의 예배 장소이며, 최상의 예배 처소이고, 가장 영광스럽고 유일한 예배 장소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

여로보암은 예배를 파괴했습니다. 예배를 교묘하게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대로 불려지고, 제단도 그럴듯하게 갖추어졌고, 짐승도 늘 드려집니다.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명료해 졌다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벧엘과 단에서 금송아지를 통해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니 여로보암은 백성들에게 신학이 발전했다고, 예배가 더 풍성해졌다고 말장난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백성들을 유혹하는 사단의 속삭임이 되었습니다. 마치 에덴의 동산에서 여자를 유혹하던 뱀의 목소리처럼 말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며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에서도 오지만 때로는 내부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성도들이 가장 익숙하게 여기는 예배를 무너뜨림으로 시작됩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도의 삶의 가장 핵심인 예배를 바꿈으로 교회를 무너뜨립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며, 어떤 자세로 예배합니까? 예배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과 즐거움의 현장입니까? 하나님과 맺은 약속에 신실하기 위해 힘써 평일을 살며, 그리하여 주의 날에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 자의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납니까? 예배 순서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며 누리는 예배 자입니까?


한국 장로교회는 미국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늘 미국 장로교회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로부터 종교개혁자들이 정리한 예전을 전수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미국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집회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 예배의 형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한국 장로교회는 예전에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거의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에게 예전을 풍성히 전해주지 못한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노고와 눈물과 땀에 감사를 표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종교개혁자들이 전수해준 예전을 연구하고, 그 예전의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합니다.

공예배와 경건회가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성도들이 모이기만 하면 무조건 예배라 부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공예배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예배를 언약 갱신의 현장으로 이해함으로 직분적 봉사, 모든 언약 백성들이 함께 하는 예배(유아세례를 받은 자녀들이 반드시 공예배에 참석해야 함), 언제나 성례가 베풀어지는 예배, 하나님과 자기 백성의 풍성한 만남이 행해지는 예배를 공예배라 부르며 참 예배로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예배 속에 가만히 들어온 것들은 없는지 살펴봅시다. 그리하여 참 예배를 파수하는 교회가 됩시다. 예배를 파괴한 여로보암의 범죄가 우리의 예배 가운데 어느덧 들어와 있지는 않은지 경계합시다. 참 예배자는 예배전쟁을 위해 기꺼이 헌신합니다. 예배를 파수하는 성도들과 교회가 됩시다.


2. 직분을 파괴한 여로보암의 범죄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만든 여로보암은 절기도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대표적인 세 절기 곧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없애고 팔월 십오일 하루를 절기로 만들었습니다. 절기를 하루로 단축하면서, 그 날짜도 바꾸어 버린 여로보암의 행위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핵심적 사역과 깊이 연관됩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애굽의 장자와 초태생은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았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뿌려졌고, 그 피는 표가 되어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유월절은 대속의 도리를 가르치는 가장 강력한 절기입니다.

칠칠절 혹은 오순절은 첫 열매를 얻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또한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도 바로 이 절기 기간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기에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그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러니 오순절은 왕국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곧 초막절은 임마누엘의 표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늘나라 백성들을 추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광야 같은 여정을 살아가는데, 홀로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초막절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은 언약 백성들의 삶이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는지를 가르치는 살아있는 모델입니다.

여로보암은 이러한 절기들을 없앴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절기를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몇 개의 기념일을 지키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과 사명을 아예 생각지도 못하게 만드는 악랄한 범죄입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국에서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우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왕국에서 거룩한 도리를 제거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른 절기를 도입했습니다. 팔월 십오일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입니다. 그러나 왕은 그 날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참 절기를 제거하고 가짜 절기를 만듦으로 가짜 예배를 완결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벧엘과 단에서 예배하게 함으로 우상숭배의 길로 빠졌습니다. 그에 더하여 참 절기를 제거하고 가짜 절기를 도입하여 예배의 날짜와 의미까지 변개시켰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의 다양한 도리를 가르치고 드러내는 은혜의 현장이어야 하는데 여로보암은 하나님 대신 금송아지를,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로움 대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짓된 은혜를 송축하는 현장으로 바꿨습니다.


왕은 레위 인 제사장들을 갈아치웠습니다. 많은 제사장들이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렇게 북 이스라엘에서 밀려난 많은 제사장들은 남쪽 예루살렘으로 내려왔고, 그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따라 하나님을 온전히 섬겼습니다. 그 결과 남쪽 유다 왕국의 르호보암은 강성해 졌습니다(대하 11:13-17).

여로보암은 레위 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 중에서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여로보암은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바치기만 하면 아무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왕상 13:33, 대하 13:9). 하나님께서 세우신 직분 제도를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새로운 직분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을 사단의 집으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성전은 여호와의 집입니다. 그런데 그 성전 대신에 벧엘과 단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과 레위 인들의 사역은 하나님의 왕국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언약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의 사역과 성전의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들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지도 깨닫습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와 솔로몬의 지혜와 성전, 그리고 그 왕국의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전과 그 안에서 봉사하는 이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여로보암은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러니 왕이 마음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그들을 직분 자로 인정하는 것은 이 왕국이 하나님의 왕국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단의 계략입니다. 직분의 파괴는 단순히 직분의 타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직분 자체의 타락에서 멈추지 않고 예배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자격 없는 직분 자들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봉사가 교회 안에 가득하게 만들며, 교회의 생명인 예배까지 망치는 주범이 됩니다. 예배야말로 직분의 봉사가 가장 요긴하게 적용되는 현장이지 않습니까.

목사는 말씀을 잘 준비하여 선포함으로 예배에서 봉사합니다. 장로는 누가 예배 자인지를 결정하는 합법적인 권한을 가졌습니다. 당회에 교회 회원권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데, 그 당회의 구성원이 바로 장로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교회의 회원권을 결정한다는 것은 누가 예배 자인가를 결정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장로는 예배의 여러 영역에서 큰 봉사를 합니다. 특별히 성찬의 상에서 장로의 봉사는 보이는 말씀에 대한 직접적인 섬김입니다.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성도를 돌보고 도움으로 그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의 어려움을 잊고 예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또한 헌금을 정리하고 집행함으로 예배에 직접적으로 봉사합니다.

이러한 직분 자들을 아무나 자격 없는 사람으로 채운다면, 그 교회의 예배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여로보암의 범죄를 살피면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교회,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직분 자들의 봉사가 예배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직분 자들의 봉사가 예배를 굳건히 세우며, 은혜로운 예배가 되게 만듭니까? 아니면, 직분 자들의 봉사가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고, 예배를 무너뜨리며, 원래 예배의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않습니까?

예배순서를 정하고, 예배의 여러 환경을 결정하는 권한은 당회가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회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목사와 장로들의 모임인 당회는 성경이 가르치는 예배를 위해 말씀을 공부하고, 성경대로 예배하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며, 무엇보다도 당회 원들 자신이 모범적인 예배 자들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교회 직분 자들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귀에 들리는 말씀인 설교와 눈에 보이는 말씀인 성례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과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멈추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적 봉사가 풍성한 예배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결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뜻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속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참 예배를 거부하고 거짓 예배를 왕국에 도입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인간 왕국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절기와 직분을 파괴하여 사단과의 예배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예배전쟁에서 승리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이스라엘의 왕이 지켜야 할 세 가지 규례는 무엇이며, 솔로몬 왕이 세 가지 규례 가운데 심각하게 어긴 것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참고, 신 17:14-20)


2. 왕이 된 여로보암이 세겜과 부느엘을 건축했습니다. 세겜과 부느엘 건축이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3.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웠습니다. 여로보암 자신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곧장 다른 길로 갑니다. 왕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 언약 백성은 항상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해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성전 대신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예배와 관련하여 어떤 교훈을 줍니까?


5. 여로보암은 북 왕국에서 절기도 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삼 대 절기는 각각 무엇이며, 그 절기 대신 여로보암이 제안한 절기는 언제입니까? 이러한 절기의 변화와 예배는 어떤 관련을 맺습니까?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 여로보암은 제사장들도 바꾸었습니다. 그가 세운 제사장의 자격은 어떠합니까?


7. 오늘날 직분 자들의 봉사가 예배 중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이러한 직분적 봉사가 풍성히 드러나는 예배가 되려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관은 어디이며, 성도들은 이 기관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1년 전체 설교문) file kosin 2021.04.27 766
공지 십계명을 통해 본 합당한 예배(1년 전체설교문) file kosin 2021.01.04 838
공지 제70회 총회(2021년) 공동기도문과 실천사항 file kosin 2021.01.04 574
공지 2021년 총회 주제 모범설교문(공지) kosin 2020.12.22 1133
42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9(성령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평강, 계시록 1장 3~6절) file kosin 2021.09.16 12
41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8(하나님께서 정하신 합당한 예배, 히브리서 9장 1~5절) file kosin 2021.09.16 7
40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7(기념 보석 호마노, 출애굽기 28장 9~12절) file kosin 2021.09.16 4
39 예배전쟁 9(생명과 바꾼 예배 단3장) file kosin 2021.08.25 83
38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8(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의 가정- 설교 두 편, 엡 5, 21-33 ) file kosin 2021.08.09 202
37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7(하나님의 종인 공직자에게 복종하라 롬 13,1-7 ) file kosin 2021.08.09 195
36 예배전쟁 8(재개된 예배의 능력 대하31장) file kosin 2021.08.09 191
35 예배전쟁 7(여호와의 응답이 넘치는 승리하는 예배 왕상18장) file kosin 2021.07.08 431
34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6(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출애굽기 25장 8-22절) file kosin 2021.06.10 454
3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5(동쪽 문, 민수기 3장 38절, 참고-창세기 3장 24절) file kosin 2021.06.10 462
32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6(성령충만한 스데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다 행 7장 54-60절) 삼위일체주일(5.30), 이단경계주일(6.6) file kosin 2021.06.01 493
» 예배전쟁 6(벧엘과 단에서 왕상12장) file kosin 2021.05.21 464
30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5(성령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심-성령강림절 행 2장 1-13, 41-47절) file kosin 2021.05.18 461
29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4(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과 경배 마 8장 18-27절) file kosin 2021.04.27 482
28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4(땅으로 내려온 하늘, 하늘에 앉은 우리 히 8장5절 엡 1장10절) file kosin 2021.04.27 476
27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2(동행을 약속해주시는 예배마침 민6:22-27 계22:18-21) file kosin 2021.04.20 414
26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1(하나님의 자비에 동참하는예배 대상29:14-17 고후9:10-15) file kosin 2021.04.20 412
25 예배전쟁 5(여호와여 어디계십니까 삼상 4장) file kosin 2021.04.20 430
24 예배전쟁 4(예배와 정복전쟁 수 6장) file kosin 2021.03.19 45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