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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전쟁 5


• 본문: 사무엘상 4:1-11

• 제목: 여호와여, 어디계십니까!


서론

암흑의 사사시대가 끝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삼백 년이 넘는 긴 어둠의 터널이 한 줄기 빛 앞에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한나의 간절하며 뜨거운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사무엘의 탄생은 여명의 신호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엘리의 눈은 어두웠고, 그 아들들의 범죄는 더욱 짙은 어둠을 드리웠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벨리알의 아들처럼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삼상 2:12).

수면 아래에서 움직이던 하나님의 역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찾아와 폭탄선언을 합니다. 그 집안에 노인이 사라지며, 자손들은 젊어서 죽을 것이며, 두 아들은 같은 날 죽을 것이요, 대대로 이어지는 제사장 직분도 끝날 것이라 합니다(삼상 2:27-36). 어린 사무엘을 부르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낱낱이 알려줍니다.

어두움의 사사시대와 제사장 집안의 타락과 범죄,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 사무엘이 등장하자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전쟁은 어두움의 시대와 새 시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겠습니다. 본문 말씀은 믿음의 실질이 없고 형식만 남은 예배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와 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제: 교회는 형식만 남은 예배를 개혁하여 온전한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1. 전쟁의 시작

2. 전쟁의 진행

3. 전쟁의 결과


본론

1. 전쟁의 시작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태생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족속이었습니다. 그들은 먼 옛날, 함의 아들 미스라임에게서 난 후예였습니다(창 10:14). 셈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함의 후손 블레셋과 적대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때에 잠시 언약을 맺기도 했지만 그들은 생명의 복음을 열열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창 21:22-34, 26장). 그러다가 블레셋은 성경 역사에 사라집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서 블레셋은 다시금 소환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을 치는 막대기로 사용했습니다(삿 3:1-6). 사사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습니다(삿 3:31). 블레셋이 다시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기는 바로 사사 삼손 때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불충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40년 동안 블레셋의 손에 던졌습니다(삿 13:1). 사사 삼손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된 대업은 다윗에 이르러 마무리 되었습니다(삿 13:5, 삼하 6:17-25, 8:1, 23:9-17).

사사시대가 끝날 무렵,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삼손이 활동시기와 사무엘이 활동하던 시기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아무튼 사사 삼손은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언약 백성들을 해방시켰고 이스라엘은 조금씩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 선지자로 인정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후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합니다(삼상 3:19-4:1).

여호와의 계시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주어지고, 특별히 선지자 사무엘이 실로에 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실로가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성막이 실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을 하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시작될 때의 형편은 이러했습니다.

어두운 사사시대가 끝나가고, 여호와의 빛이 사무엘을 통하여 비추는 때였습니다. 옛 시대의 인물인 엘리 집안에 하나님의 저주가 주어지고, 새 시대의 선지자 사무엘에게 풍성한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진 시기였습니다. 사사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바로 그때, 이스라엘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블레셋을 무찌를 수도 있다는 용기를 갖고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진을,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 비참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 사천 명이 죽었습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사천 명이나 죽은 이 전쟁의 패배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거하는 족속들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신 7:1-5). 그러니 블레셋을 정복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는 잘못이 아닙니다. 사사 삼갈, 삼손은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위대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이스라엘의 사명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정복을 통해 가나안 정복은 칼과 창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전쟁임을 가르쳤습니다.

전쟁으로 블레셋을 정복해야 된다는 당위는 옳습니다. 그러나 명분이 옳다고 해서 실제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리고를 정복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이 성을 정복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모든 실패에는 분명 그 원인이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제 그 실패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사무엘 상 1-3장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 주를 이룹니다. 에벤에셀 전투가 시작되기 전, 제사장 엘리 집안의 영적 상태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한나와 사무엘의 출생은 엘리 집안과 대조를 이룹니다. 어두운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서 언약에 신실한 삶을 산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열망하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두 가지 큰 흐름은 에벤에셀 전투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산 불순종의 백성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대적을 물리치는 승리는 무조건 전쟁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언약 백성들의 승리는 오직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 충실할 때 가능합니다. 곧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지 대적과의 전투력 문제가 아닙니다. 에벤에셀 전투에 임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지며, 그 자녀들의 타락한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가 더 이상 사라진 모습은 마치 이스라엘이 믿음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와 성도들은 날마다 죄와 사단의 권세와 싸우는 일상을 보냅니다. 우리가 죄와 더불어 싸울 때, 때로는 실패하며 때로는 승리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유하며 승리를 거두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며 그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응답할 때,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는 불충성하면서 죄와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고, 참 예배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승리하지 못합니다. 참 예배자가 되어 원수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성도들,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2. 전쟁의 진행

사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장로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했습니다. 패배의 원인을 궁리해 보았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장로들은 드디어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오자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장로들의 의견에 찬성했고, 급히 실로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왔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들도 언약궤와 함께 전쟁터로 왔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입니다.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오자 백성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얼마나 큰 함성이었든지 땅이 울릴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사기는 충천했고, 승리는 자신들의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블레셋 진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블레셋 군사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말대로 이루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알듯이 이스라엘은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장로들의 해법은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해법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실이 살아 숨 쉽니다. 언약궤를 가져오겠다는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성찰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장로들의 생각을 따라 가 볼 필요는 있습니다. 백성들도 장로들의 의견에 찬성했는데, 그들의 찬성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 재앙으로 애굽을 파멸시킨 여호와 하나님을 떠 올렸습니다. 애굽에서의 마지막 밤에 뿌려진 죽음의 그림자와 그 아침에 애굽 전역에 처절히 울려 퍼진 울음소리들. 바다에 길이 열리고 바로의 전차들이 맥없이 죽어간 순간들. 시내 산꼭대기에서 으르렁 거리던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 언약궤가 없어도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기 백성들에게 승리를 선물했다는 생각. 장로들과 백성들은 바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모세가 힘주어 외치던 소리도 기억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떠올라 움직이기 시작하고, 여호와의 궤가 서서히 이동할 때, 모세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우렁차게 선포했습니다(민10:35). 그 당당하고 우렁찬 포효에 백성들은 전율했습니다.

그 어떤 성읍이나 강력한 군대도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라 백성들은 기억의 저편을 더듬었습니다. 다름 아닌, 미디안 다섯 왕의 목을 끊고 발람을 죽일 때에 성소의 기구와 제사장 비느하스의 나팔 소리를 생각해 냈습니다. 요단 동편에 거하던 아모리 족의 왕 시혼과 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여호와의 능력도 기억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40년 만에 드디어 광야를 통과하여 요단 강을 건널 때에 제사장들의 어께 위에 앉은 하나님의 보좌, 바로 그 언약궤의 행진을 어찌 그들이 잊겠습니까. 난공불락의 여리고를 무너뜨린 일주일간의 행렬에 핵심적 역할을 한 황금 빛 언약궤는 어떻습니까. 조상들의 함성과 함께 무너진 여리고가 지금도 폐허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드디어 300여년 기나긴 시간 잊혀 사라진 것처럼 취급 받은 실로의 언약궤를 떠 올렸습니다. 그 황금 빛 언약궤가 블레셋을 무참히 무너뜨릴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의 기억은 정확했고, 백성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언약궤를 가져왔습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도 전쟁을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삼백 여년의 사사시대를 흐른 사상.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언약궤가 무슨 큰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삼백 여년 사사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언약 백성들의 능력과 대적을 물리치는 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충실함으로 생깁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그 마음으로는 결코 승리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여기에서 넘어졌습니다. 마치 중세의 교회가 세례의 물이나 성찬의 포도주 자체가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양 여긴 것과 같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누리지는 않으면서 예배 시간만 채우면 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형식주의.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실로의 언약궤를 가져와야 될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실로의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회복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임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바로 사무엘을 통해 확인합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우상을 버리고 미스바에서 언약을 갱신했습니다(삼상 7:3-11).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멈추고, 회개하며, 금식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곧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는 것이야말로 전쟁 승리의 비결입니다. 예배는 언약 갱신이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먼저 지키지 않으면서 복을 먼저 받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행동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본문은 언약궤를 아주 의도적으로 “여호와의 언약궤”,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 “하나님의 언약궤”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두 돌 판이 들어 있고, 하나님의 보좌인 궤를 철저하게 “언약”의 관점에서 호칭합니다. 심지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라는 긴 호칭은 이토록 풍성히 언약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강력합니다.

“그룹”과 “만군”은 군사용어입니다. 강국과 약소국이 서로 언약을 맺은 후에 약소국이 어려움을 당하면 강국은 그 약소국을 군사적으로 반드시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언약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기꺼이 자기 백성들을 도와야 합니다. 여호와의 도움은 ‘천사들’과 ‘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의 힘찬 공격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언약궤 자체가 이미 무엇이 중요한지를 가르칩니다. “언약”그리고 “궤”. 약속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입니다(롬 4:19-22). 그 믿음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민 10:35)라고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으며,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민 10:36)라고 간청한들 어찌 하나님께서 응답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약궤는 하나님이 앉으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만나시는 도구입니다. 언약궤 앞에 백성이 선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늘 예배합니다. 그 일은 잘하는 것이요,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예배가 형식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 것이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인 언약궤가 우리에게 있다고 모두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 먼저입니다. 예배에 참여했다고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전에 예배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드려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려도 그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일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를 마음에 새깁시다. 우리의 예배를 다시 한 번 돌아봅시다. 그리하여 진리의 성령 안에서 예배하는 예배 자들이 됩시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 1:13-17)


3. 전쟁의 결과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오자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큰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블레셋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능력을 안 블레셋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이라 했습니다(본문 8절). 이 모습은 그동안의 블레셋과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블레셋은 대부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으로 오기 며칠 전에도 이스라엘 군사 사천 명이나 죽였습니다. 하지만 언약궤 때문에 분위기는 반전되었고, 전쟁은 끝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 진에서는 승리의 환호가 울려 퍼지고, 반대편 블레셋의 진영에서는 두려움의 공포가 드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시 힘을 내었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자고 외쳤습니다. 다시 전투는 시작되었고 결말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패배했습니다. 삼만 명의 보병이 죽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삼만 명이 칼에 죽으면 전투장은 피로 물듭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어떻게 눈을 뜨고 보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언약궤는 빼앗겼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 두 사람도 죽었습니다. 실로에 있던 엘리도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빼앗긴 것과 자식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의자에 앉았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해산을 하며 “이가봇”이라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엘리 집안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제사장 엘리에게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삼상 2:27-36). 사무엘에게 주어진 계시대로 되었습니다(삼상 3:10-14).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직분자의 범죄는 이렇듯 무섭고 두려운 결말을 보여줍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행하는 직분입니까?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제사는 오늘날 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입니다. 그 자신도, 그 아들들도 여호와를 예배하는 일을 타락시키고 파괴하니, 그들이 파괴되고 부서졌습니다. 이렇듯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누구든지 교회의 예배를 공격하고, 거룩한 예배를 타락케 만들면, 하나님은 반드시 보복하십니다.


끝으로 중요한 한 가지를 묵상하겠습니다. 언약궤를 빼앗겼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빼앗긴 일을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고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 그렇게 빼앗기도록 두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보좌인 언약궤가 다곤의 신전에서 행한 일과 블레셋의 도시들에 내린 재앙을 보십시오(삼상 5:1-9). 결코 여호와의 능력 없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 없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은 스스로 대적의 손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상과 한편이 되어 죄와 비참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원수의 포로가 되셨습니다(시 78:60-61). 긍휼과 은혜의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까? 예배를 파괴시키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불쌍한 자기 백성들, 죄의 종이 되어 허덕이는 가련한 영혼들을 위한 하나님의 희생을 보십시오.

우리는 스스로 포로가 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과 죽음을 떠 올립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기꺼이 사단의 권세인 죽음 아래 들어가셨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 예배의 근거요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이 은혜에 감격하며, 이 은혜를 찬송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결론

예배는 시대를 읽는 좌표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예배가 건강하면 교회가 힘 있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전진합니다. 그러나 예배가 파괴되고 타락하면 그 시대의 교회는 힘을 잃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고 세상의 포로가 됩니다. 교회는 형식만 남은 예배를 개혁하여 온전한 예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갖 핍박과 환난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능력 있는 공동체로 우뚝 서는 우리 고신교회가 됩시다. - 아멘 -.


• 설교 이해를 위한 질문

1. 사무엘서 1-3장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 배경입니다. 이 배경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2.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어떤 도구로 사용하였습니까?


3. 이스라엘은 첫 전투에서 사천 명이나 죽고 패배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이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4.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옵니다. 온 백성들이 언약궤를 가져온 이유를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설명해 보세요.


5.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가져와 앞세웠지만 결국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언약궤를 가져오겠다는 언약 백성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예배와 관련하여 우리가 교훈으로 받아야 할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6. 블레셋과의 전쟁은 패배로 끝났습니다. 전쟁의 결말을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고, 특별히 두 제사장의 죽음과 언약궤의 빼앗김이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7. 참된 예배는 교회가 추구해야 될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 교회와 내가 개혁해야 될 예배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것을 다른 성도들과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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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6(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출애굽기 25장 8-22절) file kosin 2021.06.10 454
33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 5(동쪽 문, 민수기 3장 38절, 참고-창세기 3장 24절) file kosin 2021.06.10 462
32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6(성령충만한 스데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다 행 7장 54-60절) 삼위일체주일(5.30), 이단경계주일(6.6) file kosin 2021.06.01 493
31 예배전쟁 6(벧엘과 단에서 왕상12장) file kosin 2021.05.21 464
30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5(성령님이 오셔서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심-성령강림절 행 2장 1-13, 41-47절) file kosin 2021.05.18 461
29 모여서 드리는 예배 삶으로서의 예배4(두려워 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과 경배 마 8장 18-27절) file kosin 2021.04.27 482
28 성막을 통해 정하신 합당한 예배4(땅으로 내려온 하늘, 하늘에 앉은 우리 히 8장5절 엡 1장10절) file kosin 2021.04.27 476
27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2(동행을 약속해주시는 예배마침 민6:22-27 계22:18-21) file kosin 2021.04.20 414
26 예배순서를 통해서 보는 합당한 예배 11(하나님의 자비에 동참하는예배 대상29:14-17 고후9:10-15) file kosin 2021.04.20 412
» 예배전쟁 5(여호와여 어디계십니까 삼상 4장) file kosin 2021.04.20 430
24 예배전쟁 4(예배와 정복전쟁 수 6장) file kosin 2021.03.19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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