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오직 믿음인가?
본문: 갈 2:16; 빌 3:9
손재익 목사 (남서울노회 한길교회)
서론
“예수님 믿으세요” 우리가 복음 전할 때 흔히 하는 말이죠. 왜 이렇게 전합니까? “예수님 믿으세요” 이 짧은 말 속에는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핵심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핵심적인 말 속에 담긴 구체적이고 자세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의 답은 “왜 예수님입니까?” “왜 믿으세요 입니까?”에 대한 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지, “자기 자신을 믿으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처를 믿으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세요 라고 하지 “열심히 사십시오”라고 전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사십시오”라고 전하지 않습니다. 그저 짧게 “예수님 믿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서 “예수님”은 곧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입니다. “믿으세요”는 오직 믿음(Sola Fide)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가지 중에 오직 믿음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직 믿음,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요,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중요한 원리로서,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자주 하는 말이요, 우리가 아주 쉽게 생각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믿는 게 중요하니까 그렇지” 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왜 믿는 것이 중요합니까? 왜 믿음이라는 말 앞에 ‘오직’을 붙입니까?
본론
본문 설명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말을 길게 풀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빌립보서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갈라디아서 2:16의 설명
첫 번째 본문인 갈라디아서 2:16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 말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의롭다면 의롭게 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의롭지 않기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갈라디아서 2:16은 사람이 의롭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사람이 의로워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의롭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의롭게 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을 친절하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여기에서 “~는 안 되고, …은 된다”라고 말합니다. 안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행위입니다.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갈라디아서는 행위는 안 되고 믿음은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행위와 믿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행위로는 안 되고, 믿음으로만 됩니까? 이에 대해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행위를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기에 믿음으로만 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람이 의롭게 된다고 말한 갈라디아서의 저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빌립보서 3:9의 설명
또 다른 본문 빌립보서 3:9를 봅시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본문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바울은 의롭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갖게 된 의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그가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바울이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할 때도 역시 “행위로는 안 되고, 믿음으로만 된다”라고 말함으로써 행위와 믿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오늘 읽은 갈라디아서 2:16과 빌립보서 3:9 모두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합니다.
왜 믿음으로만 인가?
그렇다면 여러분~! 성경은 도대체 왜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합니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율법을 행함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는 안 되기 때문
첫째, 율법을 행함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오직 믿음으로만 사람이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이유는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왜 행함으로는 안 됩니까? 갈라디아서 2:16 마지막 부분인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그 누구도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행위를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의를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지킨다 하더라도 죄성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10-11을 봅시다.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이 말씀에 의하면 율법 중 하나라도 범하면 모든 율법을 다 범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는 분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를 완전히 이루시는 분 혹시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 가운데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 가운데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지 않는 죄, 하나님과 교제하기보다는 세상의 즐거움을 더 기뻐하는 죄,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는 죄,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삶을 사는 죄, 주일날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함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세상 이야기와 남편 자랑과 자녀 자랑으로 시간을 보내는 죄,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와 권위를 존중하지 아니하고 뒤에서 교회의 직분자를 욕하며 교회의 질서에 불순종하는 죄, 말로는 복음을 말하지만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는 복음의 비밀을 체험하고 복음에 관한 지식을 갖추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 죄, 모든 일에 있어서 지나치게 이기적인 죄, 나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정죄하며 판단하기에 급급했던 죄, 다른 사람의 결점이나 실수를 보고도 염려하고 걱정해 주기보다는 그것을 오히려 자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해 사용한 죄, 남들 앞에서 보이기 위해 봉사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웃을 욕하는 죄 등등. 우리는 행함에 있어서 절대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행함으로는 안 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지 못함은 성경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오늘 언급된 갈라디아서, 로마서, 빌립보서, 디도서에서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바울은 원래 율법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바울은 오늘 본문 빌립보서 3:9에서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말하기 직전에 빌립보서 3:5-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바울과 같이 자기 스스로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6)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조차도 행함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 2:16에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라고 말했습니다. 율법을 행함에 있어서 바울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우리들은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이기 때문
둘째,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오직 믿음 외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의 타락한 본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대신할 다른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완전히 거룩하시고, 의롭다 칭하시는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 주신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마련해 주셨으니 우리는 이 방법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도 허락해 주셨다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의롭다 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방법은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의 방법,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방법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믿음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였으니, 오늘 본문 두 군데에는 모두 다 ‘오직’이라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빌립보서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특별히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오직 믿음으로”라는 말에서의 “오직”은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루터는 로마서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말씀을 자기 나라 말인 독일어로 번역할 때 “오직”(독일어로 allein)이라는 단어를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는 말씀을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루터가 부사 하나를 덧붙인 것은 번역을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본문의 의미를 더 분명히 살리기 위한 의역(意譯)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오직 믿음”(Sola Fide)이라는 표현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루터와 오직 믿음
마르틴 루터가 이렇게 “믿음으로”라고만 말하기보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한 것은 그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진리를 깨닫기 전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울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당시 로마가톨릭의 가르침을 따라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고, 금식하면서 로마의 성 베드로 교회의 계단을 손과 무릎으로 오름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또한 수도원 생활, 경건 훈련, 고해성사, 미사, 고행, 선행 등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쳤기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영혼의 평안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죄의식은 여전히 깊어만 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해서는 구원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행함으로는 도무지 완전한 의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행함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 루터는 자신이 그 이전에 행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사실을 기억하면서 단지 “믿음으로”라고 말하기보다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하는 것이 필요함을 잘 깨달았습니다.
행함으로 의로워지려고 하지 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습니까?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루터가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닫기 이전의 방식대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의로워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종교적 열심을 다해서 의로워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어려운 사람을 잘 도우면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시고, 그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약의 안식일인 주일을 열심히 지키면 구원받습니까? 부모를 열심히 공경하면 구원받습니까? 새벽기도를 열심히 하면 구원받습니까? 헌금을 많이 하면 구원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행위로는 그 누구도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법을 다 지킬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믿음,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믿음에 대한 오해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크게 세 가지 오해를 합니다.
첫째, ‘믿음으로’라는 말을 ‘믿음 덕분에’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구원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큰 오해입니다. ‘믿음으로’라는 말은 ‘by faith’입니다. 믿음을 통해서(through Faith)입니다. 즉 믿음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획득하신 의가 바로 구원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래서 믿음 덕분이 아니라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의를 나의 의가 되게 하는 도구입니다. 통로입니다. 수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가 있는데 그 의가 나의 의가 되려면 그렇게 만드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써 구원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propter fidem)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propter Chirstum)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믿으세요”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말합니다. 믿음 그 자체보다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으로’라는 말을 ‘내가 믿어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공로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오해와 같이 맞물려 있습니다. 믿음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가 되게 하는 방법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어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특별히 믿음이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 말씀처럼 믿음은 우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밖에서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습니다. ‘내가’ 믿어서가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나의 공로라고 생각한다면, 행함으로 구원 얻으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오해에 대한 염두는 우리 고신교회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칭의에 관하여 제1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칭의(稱義)-의롭다 하심-에 관하여
Of Justification
1. 하나님께서 효력 있게 부르신 자들을 값없이freely 의롭다 칭하시니justifieth1) 그들 속에 의righteousness를 주입함으로써가 아니라not by infusing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by pardoning 그들의 인격을 의로 간주하여 받아주심으로by accounting and accepting 하신다.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이나 그들이 행한 어떤 것으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인해 하셨다but for Christ’s sake alone. 믿음 자체faith itself나 믿는 행위the act of believing나 어떤 복음적인 순종을 그들의 의로 여겨 그들에게 전가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satisfaction를 그들에게 전가함으로써by imputing 하신다.2)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 의지하며, 이 믿음은 그들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3)
1) 롬 8:30; 3:24 2) 롬 4:5-8; 고후 5:19,21; 롬 3:22,24-25,27-28; 딛 3:5,7; 엡 1:7; 렘 23:6; 고전 1:30-31; 롬 5:17-19 3) 행 10:44; 갈 2:16; 빌 3:9; 행 13:38-39; 엡 2:7-8
셋째,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니 행함은 필요없다고 말하는 오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직 믿음과 관련해서 이런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성경적이지 않다”고까지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말은 “믿음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으니 행함은 필요없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믿음은 행함을 반드시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참된 믿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선한 행실을 하기 마련입니다. 단지, 믿음과 행함 중 믿음만이 구원에 기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오직 믿음”이지, 행함은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의 “오직 믿음”이 아닙니다.
이 세 번째 오해에 대한 염두도 우리 고신교회가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칭의에 관하여 제2절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칭의(稱義)-의롭다 하심-에 관하여
Of Justification
2. 그러므로 믿음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 의지하게 하는receiving and resting on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the alone instrument of justification.4) 그러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에게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모든 구원하는 은혜들을 수반하니,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한다.5)
4) 요 1:12; 롬 3:28; 5:1 5) 약 2:17,22,26; 갈 5: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제2절의 근거구절을 보면 야고보서 2:17,22,26이 언급되는데, 해당구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약 2:22)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이와 같이 성경은 행함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행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며, 행함이 우리의 구원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의 구원에 기여할 뿐입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행함은 필요 없다는 뜻이라는 오해는 종교개혁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사람들은 그 사실 때문에 율법을 소홀하게 생각하게 되거나 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여 결과적으로 신자의 삶이 오히려 방종에 빠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이신칭의 교리 자체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하거나 종교개혁자들이 행위의 필수성을 강조하는 성경구절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을 넘어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오해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수반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4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64문답). 다만 행함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닐 뿐입니다.
행함이 아닌 믿음, 믿음이 아닌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행함이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것, 믿음 때문에가 아닌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다 하시는 것.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은혜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함을 수단으로 의롭다 하신다면 우리는 정말로 비참할 것입니다. 우리가 절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근거로 의롭다 하신다고 해도 우리를 비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은 항상 불완전하며, 믿음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부여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함을 수단으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수단으로 하시길 원하셨고,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을 통해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에 근거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
“예수님 믿으세요” 이 짧은 말 속에는 복음의 핵심이 잘 담겨 있습니다. “오직 믿음”(Sola Fide)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얻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복음을 믿고, 이 복음을 소유하고, 이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세요.” “딱딱한 바닥에서 잠을 자세요.” “율법을 다 지키세요.” “그래야만 구원 받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믿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믿으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이 말에서 놀라운 일이란 자녀가 복 받고,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성취하신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전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일입니다.
설교를 이해하기 위한 질문
1.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에서 “예수”는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으세요”는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2. 갈라디아서 2:16에 나오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이라는 말의 전제는 무엇입니까?
3. 갈라디아서 2:16과 빌립보서 3:9은 “OO으로는 안 되고, OO으로 된다”라고 말합니다. OO에 들어갈 말은 각각 무엇입니까?
4.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 2가지는 무엇입니까?
5. 루터가 “오직”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오직 믿음으로”라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 가지는 3가지 오해는 무엇이며, 그에 대한 답은 무엇입니까?